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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일꾼

파멜라 크리베와의 인터뷰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22.08.25|조회수70 목록 댓글 0

파멜라 크리베와의 인터뷰

 

이 인터뷰 기사는 콜린 휘트비(Colin Whitby)에 의해, www.themagicofbeing.com에 처음으로 게제 되었음.

 

우리는 이번 달에, 내가 금년에 읽었던 메시지 중에서 나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었던 채널링 메시지를 책으로 발간한 파멜라 크리베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저술한 내용은 그녀의 웹 사이트에서 무료로 활용할 수가 있으며, 아니면 “예수아 채널링”이라는 책을 구입하여, 한가할 때(내가 선호하는 방법),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이 인터뷰가 여러분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영적인 각성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해서, 자기표현(self expression‎)과 가슴에 초점이 맞추어진 방식으로 삶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나요?

 

애정 문제로 내가 비탄에 빠져 있을 때, 나의 영적인 각성은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26살 때, 나는 학자가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었으며, 현대의 과학론(modern philosophy of science)과 관련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나는 삶에 아주 이성(理性)적인 방식으로 접근했으며, 어느 과학자와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떤 철학자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 사람과 형이상학(metaphysics)과 영성에 대해 경이로운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영성과 비전(秘傳:esoteric)에 대해, 나는 항상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업을 위해 그러한 관심을 상당기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과 나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 사람이 내 인생의 사랑(love: 전부)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습니다.

 

형이상학(metaphysics) : 세상의 궁극적인 근거를 연구하는 학문. 경험세계인 현실세계를 초월하여 그 뒤에 숨은 본질, 존재의 근본원리를 체계적으로 탐구하려는 학문으로서 영역적·부분적인 지식이 아니라 보편적·전체적인 지식을 추구한다.

 

나는 이혼을 했지만, 그 남자는 자신의 여자 친구한테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체험으로 인해, 내 가슴은 갈가리 찢기게 되었으며, 내가 철학에 대해 느꼈던 매력도 어느 한 순간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감정적으로 아주 황폐해 있었으며, 따라서 “가슴에게 말을 거는” 일종의 진정한 앎을 간절하게 갈망하고 있었으므로, 그동안 내가 지니고 있던 이지(理知)주의 (이지를 중요시하고, 다른 일체의 인성<人性>을 경시하는 경향)도 결국 끝내게 되고 말았습니다. 논문은 1997년에 끝냈지만, 대학에 계속 남아, 나는 영적 및 비전의 문헌들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2000년에 영적인 교사이며, 또한, 심령술사(psychic reader)였던, 어느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내면적으로 깊은 변형이 이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감정적으로 오래된 고통들을 지니고 있으며,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당시에 내가 기억해내기 시작했던 과거의 여러 전생으로부터 유래된 아픔들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고통스러웠던 그러한 감정들을 다시 체험함으로써, 나는 그러한 체험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해방감을 느꼈으며, 내 생에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죽었다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도 같았지만, 동시에 내가 비로소 나 자신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화(淨化: catharsis)와 해방의 시기를 거치고 난 후, 뒤이어 곧 나는 2001년도에 게릿 (내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영성과 환생에 대한 그의 웹 사이트를 보게 되었으며, 그 후 그와 활발하게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게릿과 연결된 것은 마치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족과 같은 아주 친숙한 연대감이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던 과거의 애정 관계와는 달리, 우리가 함께하게 된 것은 격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깊은 기쁨과 말 없는 앎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게릿은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하고 있는 비전(秘傳)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영적인 치유사로서 우리가 함께 일하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2002년에 딸이 태어나고 난 후, 우리는 직접 해야 할 일을 만들어내게 되었으며, 나는 그동안 내가 가장 하고 싶어 했던 일, 즉 에너지를 읽고(read), 영적인 교사로서의 일을 하며, 삶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들을 의미 있고, 실질적인 방식으로 탐구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채널링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언제 처음으로 채널링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나요?

 

세스(Seth)의 채널러였던 재인 로버츠(Jane Roberts)의 책을 읽게 됨으로써, 1995년 경에 나는 처음으로 채널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내 학위논문을 연구하면서, 나는 미국의 하바드 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학문적인 철학에 대해서는 심한 환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옆에 있던 조그만 책방에서, 나는 세스의 책들을 보게 되었으며, 이 “금단의 열매”(학문적인 기준에 따른 금단)라는 책에 곧바로 매료되었습니다. 이러한 책들이 철학적으로도 심오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사랑스럽고,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책들이라고 나는 느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읽게 됨으로써, 나는 깊은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우주 혹은 내 영혼이 나를 일깨워, 삶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나에게 제시해주었다고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년 동안, 나는 다른 저자들이 쓴 채널링과 관련된 많은 서적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스가 가장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나에게는 그 책이 전혀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채널링과 관련된 서적은 더 이상 읽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아가 당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었으며, 그의 에너지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나요?

 

2002년 어느 날 저녁, 나는 내 남편 게릿과 개인적인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때, 나는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내 주위에서 종종 느끼곤 했던, 가이드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익숙해 있었으며, 이 가이드들은 애정 어린 암시와 쾌활함으로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곤 했었습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가이드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예수아의 존재를 느꼈을 때는, 그때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그 존재는 근엄하고, 깊은 자각을 지닌 에너지체로 느껴졌으며, 내가 이전에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주 안정적이고, 선명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놀랐습니다. 나는 그 에너지체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으며, 그러자 내 내면의 눈앞에 “예수아 밴 요셉”이라는 이름이 아주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즉시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곧바로 내 마음속에는 회의적인 거부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전에, 내 영혼은 예수아를 아주 친숙한 존재로 순식간에 인식했습니다. 내 마음은 예수아가 내가 앉아 있는 방에 내 옆에 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그러한 생각은 주제넘은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내 가슴은 예수아가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켜주었습니다.

 

예수아는 정말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우리 위에 높은 곳에 존재하는 권위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친구이며, 우리를 결코,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뢰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예수아를 알고 있는 동안에도, 비록 그가 아주 직선적이고, 솔직하기는 해도, 나를 결코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수아는 정말로 내가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내가 지닌 두려움을 직시해야 하며, 이기적인 논리로 그러한 두려움들을 덮으려고 하거나, 정당화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나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수아가 단호하지만, 그것은 아주 애정 어린 단호함입니다. 그러한 단호함으로 인해, 여러분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꼭 만족스럽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랑은 편안함에서 벗어나, 종종 용기 있고, 취약해지도록 요구하기도 합니다.

 

내 경우에는, 예수아를 채널링할 때, 공개적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게 됨으로써, 내 내면에는 이겨내기 아주 어려웠던 많은 두려움과 불안들이 일어났었습니다. 내 본능(혹은 생존의 메커니즘)은 내가 아주 무서운 장소라고 생각했던, 이 세상을 등지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아는 내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안전하다고 느끼며,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동안에도, 두려워하거나, 분열되는(fragmented) 것이 아니라, 자의식을 지닌 채, 중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나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렇게 하는 방법을 여전히 배우고 있으며,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아 채널링을 통해, 나는 아주 많은 것을 받았으며, 전 세계에 존재하는 내 영혼의 가족들과도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아의 메시지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는 소감의 편지를 나에게 보내주었습니다. 나는 지구에서 예전보다 더 많은 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여기 지구에서 내 영혼이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따르는, 깊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메시지는 아주 현실적이고, 복잡한 개념들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아로부터 메시지를 어떻게 받으며, 그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해석(translate)”하게 되나요?

 

사실, 메시지들이 아주 형이상학적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분명하고, 현실적입니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몇 가지의 요인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내가 예수아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진술할 때, 아주 직선적이고, 분명합니다. 그는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우리의 지성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에게 말을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내 본성과는 다소 맞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학문적인 철학자가 되도록 훈련을 받았으며, 한때는 일반 사람(normal folk)들이 잘 읽지 않는 기사를 쓰기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기사들은 지적인 면에서 아주 복잡하고, 추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아는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일을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복잡한 개념들을 단순한 용어들로 세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내가 받았던 철학적인 훈련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훈련들이 내가 채널러로서 일을 하는 데 아주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 덕분에, 예수아가 왜 그런 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영적인 스승들이나, “상승한 마스터들”(이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이 격식을 갖춰, 위엄 있게 자기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단지 인간의 생각일 뿐이라고 나는 종종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우리가 지닌 이미지, 즉 지혜롭고, 존경받는 스승이라는 이미지와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아는 우리의 가슴에 다가가려고 하며, 거리를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채널링에는 언제나 일종의 해석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성장과정, 문화적인 배경, 특정한 이해관계 그리고 재능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든 채널링 메시지는 채널러에 의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과학론(philosophy of science)를 공부하면서, 내가 철저하게 깨닫게 된 것은 주관적인 요소들에 의해 물들지 않고, 현실을 순수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인식, 즉 인식하는 사람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객관적인 인식이라는 이상(理想)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양자 역학이 출현하게 됨으로써, 문제가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채널링의 메시지도 채널러의 개성 및 문화적인 배경에 의해 언제나 걸러지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메시지를 들을 때, 분별력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채널링을 하는 동안, 당신과 예수아와는 어떤 관계가 이루어지나요?

 

채널링을 하기 위해 앉으면, 나는 가벼운 몽롱한 상태(trance)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말은 내가 내면에 관심을 집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몸의 긴장감을 풀고, 가능한,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지도록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예수아가 내 에너지의 장(場) 속으로 들어오게 되며, 우리가 연결되면서, 나는 척추를 따라 아래쪽으로 약간의 충격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에너지가 서로 섞이는데 약 1분 남짓의 시간 소요되며, 그런 다음에는, 내면에서 “진행하라(Go ahead)”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인식하지만, 나를 통해 에너지의 흐름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며, 이러한 에너지의 흐름이 말하자면, 내가 말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랑스럽고, 자애로운 흐름에 휩싸이게 되며, 일상의 평범한 의식 위로 내가 들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커다란 평화를 느끼게 되며, 따라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보다, 삶에는 훨씬 더 큰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또한, 나는 반대편(천상)으로부터 엄청난 사랑과 연민의 에너지가 나를 통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되며, 이것을 말로 표현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채널링할 때, 말 때문에 내가 종종 제약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채널링을 하는 동안, 나와 예수아와의 관계에서, 나는 말하자면 적극적인 수신자가 됩니다. 한편으로는, 어떤 것이든, 들어오는 메시지에 가능한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민첩하고, 정신이 초롱초롱해야 하며, 나는 메시지를 인간의 개념과 언어로 전달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번역을 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나의 개인적인 의지나 믿음 체계가 개입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채널링은 섬세한 과정이며, 그렇다고 내가 그 과정에 완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확실한 것은 예수아의 에너지를 인간의 말로 번역할 때, 나도 어느 정도는 메시지를 여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그러한 메시지들 속에 어떠한 필터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입니다. 없애기 가장 어려운 필터들은 사각지대, 즉 여러분이 당연시하고 있는 가정(假定)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가정들이 필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참된 실체를 키우고, 마음의 문을 더 많이 열면 열수록, 우리가 지닌 필터들도 더 많이 버리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 경험으로는, 이것은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우리의 인식이 여과된다는 사실을 애석해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필터가 떨어져 나가게 될 거라고 고대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울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채널링이 인간사(人間事)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기 위해, 그리고 인간으로서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깨달음을 한껏 즐기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빛의 일꾼 시리즈가 내 체험을 쉽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당신에게는 삶과 영적인 성장에 물질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영향을 주었습니다. 빛의 일꾼 시리즈는 내가 예수아로부터 받았던 첫 번째 시리즈의 채널링 메시지였습니다. 예수아는 그 메시지가 특히 빛의 일꾼들을 위한 메시지라고 말했습니다. 예수아의 말에 따르면, 빛의 일꾼들은 가슴에 기초한 새로운 의식을 지구에서 최초로 받아들였던 존재들이라 합니다. 물질은 빛의 일꾼들이 깨어날 수 있도록 돕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빛의 일꾼들이 밖으로 나가, 자신들을 따르는 존재들에게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경우, 이 시리즈로 인해, 나는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빛의 일꾼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빛의 일꾼들에 대해, 나는 여러 가지의 책들과 인터넷상에서 많은 이야기를 읽게 되었으며, 그것들이 말하고 있는 것에 깊이 공감했지만, 한 가지 내용만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빛의 일꾼들은 지구에 빛과 의식을 가져오는 사명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타고난 교사 및 치유사들로서, 여기에 존재하고, 자신들이 맡은 일을 수행하는데, 많은 것을 희생해 왔다고 합니다.

 

빛의 일꾼들은 아주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거의 순교자들처럼, 다시 말해 언제나 자기 자신들을 내어주고, 자신들의 어깨에 세상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나에게는 빛의 일꾼이라는 말이 아주 성스럽게 들였습니다.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내면에 오래된 많은 슬픔과 분노를 지니고 있었으며,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큰 저항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러한 저항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내 삶의 목적이 정말로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예수아가 말하는 빛의 일꾼 시리즈 (“예수아 채널링” 책 참조)에 따르면, 우리는 사실 이전의 생들에서 아주 어두운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러한 역할들 가운데 일부는 아틀란티스 시대에, 그리고 또 일부는 우리가 지구에 육화하기 이전의 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한 고대의 시대에, 우리는 에고에 기초한 의식을 철저하게 탐구했었습니다. 우리/나의 역사의 어두운 부분들을 알고, 이해하게 됨으로써, 나는 정의감, 균형감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나는 겸손해지는 것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수아가 빛의 일꾼 시리즈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또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닌 어두운 측면과 대면하여, 우리가 지닌 감정적인 상처들을 이해하고, 사랑과 연민으로 치유하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가 계몽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슴에 기초한 의식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타인들에게 방사하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어떠한 일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참된 자신이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내가 받은 예수아의 메시지에 따르면, 빛의 일이라는 개념이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빛의 일이란 세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 관한 것이며, 그것은 하는 행위라기보다, 존재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내 몸 속에 깊이 배어있던, 빛의 일꾼들이 해야 하는 일이 “타인들을 구하는 것”이라는 압박감을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심을 더 잘 유지하면서, 내면에 더 잘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예수아는 자기 자신, 즉 지구에서 예수아로서 살았던 삶을 성경에서 묘사하고 있는 예수와 아주 분명하게 분리하고 있는데, 이 둘 간의 핵심적인 차이를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가장 큰 차이는 교회의 전통이 예수를 묘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는 예수아가 행하고, 말했던 실제의 진짜 이야기들이 자신들만의 문화 및 심리적인 배경을 가졌던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러한 실제의 이야기들이 이들에 의해 해석되어졌던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아를 신격화된 인물, 즉 우리보다 신과 더 가까우며, 더 신 같은 존재로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아의 특별한 신분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나에게 직접 설명해주고 있는 것처럼, 예수아는 우리도 자기만큼 신에게 가까우며, 우리처럼 자신도 인간이었으며, 우리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죽었던 것이 아니라, 전 역사를 통틀어서 자유로운 사상가 및 가슴의 스승들(teachers of the heart)을 반대했던 것처럼, 단지 권력을 쥐고 있는 권위자들이 예수아를 반대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사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그것들은 죄가 아니라, 인간이 되는 체험의 일부로서, 오히려 무지와 두려움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한 무지와 두려움을 적절하게 초월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만끽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아는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것은 교회가 가르쳐온 많은 것과 모순되는 것입니다.

 

파멜라, 오늘 우리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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