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마음
2023. 11. 26
생각과 마음은 무엇입니까?
생각과 마음은 있는 것일까요?
그럼 그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레무리아와 아틀란티스 시절 ‘생각과 마음’이란 관념은 없었습니다.
당시 모든 대화는 “너와 나”라는 직접적인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6,000년경부터 ‘생각과 마음’의 관념이
종교와 사상에 주입되어 갑자기 퍼졌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이 관념들에 중독되며 다양한 표현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들은 이러한 고정관념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하며,
의도적 목적으로 사용된 종교프로그램의 관념들에 대해 분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생활 중에 ‘생각과 마음’의 단어를 쓰지 않고
대화가 거의 어려울 정도이며, 이들 관념에 의존하여 살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본질(4가지체 : 육체, 감정체, 정신체, 영체)을
생각과 마음으로 대체함으로써,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가리고 그들 관념 뒤에 숨었습니다.
이는 현실을 회피하는 행위이며,
과정들을 합리화하는 데 유용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들 관념을 반복적으로 사용할수록
중독성은 점점 더 커질 것이며,
결국 자신의 본질을 더욱 감추고,
체험을 깊게 할 수 없도록 할 것입니다.
더구나 책임감 없는 체험으로 얻어야 할 교훈을 희석시키며
인간들을 평범하고 단순화시켜 신적 특성을 감추게 했습니다.
결국 이는 인간의 본질인
에고(육체와 감정체)와 영혼(정신체와 영체)을
생각과 마음으로 가리우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혼란을 일으켰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에고와 영혼이 있는 것조차 잊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생각과 마음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자는 매우 드물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관념을 인간들에게 주입한 자들은 누구이며,
자연스럽게 관념들이 주입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각과 마음의 관념은 지금 여러분의
네 가지 DNA에 데이터로 단단히 저장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가슴에 있고,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것이라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머리와 가슴에 대하여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현실체험 중인 에고와 영혼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기억해 낼 수 있는 특정한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영혼은 그곳을 심장을 감싸고 있는 가슴 부위로 그리고
에고는 많은 감각기관이 몰려 있는 머리를 선택했습니다.
정복자들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머리에서의 선택 주체를 ‘생각’이라 정의했으며,
가슴에서의 선택 주체를 ‘마음’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과 마음의 관념은 점점 세분화되었고,
그들 관념들이 실재하며, 선택의 주체처럼 착각하도록 했습니다.
이들 관념은 많은 종교와 문학 그리고 생활 속으로 급속히 퍼졌으며,
인간들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편안하고 자신을 합리화하여
보호하는 데 사용하며 익숙해졌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이 결정한다.”
그러므로 생각과 마음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관념입니다.
여러분이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실제로 선택하고 결정하여 움직이게 하는 주체는
여러분의 네 가지체(육체 감정체, 정신체, 영체)란 사실입니다.
무엇인가 체험하기 위해 먼저 관념을 선택적으로 가져온다 했습니다.
그렇게 선택하여 가져오는 주체는 바로 여러분 자신인 것입니다.
결코 생각과 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생각은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관념이며,
이를 오해하여 생각과 마음에 선택과 결정을 넘기어
결과에 대한 책임을 희석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생각과 마음은 마치 실재 존재하는
나의 무엇으로 착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결정과 선택을 맡겨버리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땐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바타를 만들어 나 대신 무엇인가 결정한다는
구조로 변형시킴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축소시키고 전개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이러한 매커니즘으로 체험을 깊게 할 수 없으며,
체험 이후 그에 따른 교훈 역시 감소되고,
책임감이 줄어든 만큼 교훈의 깊이로 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마음’이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결정했다”로 바꾸어야 합니다.
자 그런데, 아무리 사실이 그렇다해도
여전히 그 말이 그 말처럼 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지만 이는 매우 다른 체험인 것입니다.
또한 이를 바꾸고자 하면 아마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은 단단한 고정관념으로 여러분 현실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성회복을 위해
이러한 관념들을 바꾸어 승화시켜야 합니다.
다음 문명에서는 생각과 마음의 관념을
‘나 또는 너’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 가방이 마음에 듭니다.”가 아니라
“나는 이 가방을 선택하겠습니다.”로 바뀌어야 합니다.
많은 가방 중에서 그 가방을 선택한 것은 나의 마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 선택에 따른 책임도
내게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주는 마음 안에 있으며, 마음은 영적인 심장이다.”
이 말이 얼마나 자신을 모르고 하는 말일까요?
그러므로 자신의 현실 체험을 책임지지 않고
마음으로 전가시키는 것은 바르지 못한 태도입니다.
이는 진정한 교훈을 얻는데 지장만 줄 것입니다.
모든 선택은 마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관념은 편리하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는 자신의 선택을 희석시켜 체험의 교훈을 더디게 합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생각이나 마음’에 전가시키는 것은
창조자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수많은 관념을 만들어 현실체험에 사용했습니다.
‘생각과 마음’ 역시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사용할 때,
많은 오해의 하부 관념들을 만들며 점점 사실과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이는 어떤 실체에 대하여 정확히 모르고 사용할 때
그 관념들을 이해하기 위해 더욱 많은 하부 관념들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음 자세, 흉악한 마음, 선한 마음,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질투심, 용맹심, 투쟁심, 의심, 호기심, 투기심, 평온한 마음, 마음의 평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생각하는 자, 생각이 창조한다. 생각해서 행동해야 한다.
생각의 힘, 흉악한 생각, 음란한 생각, 치밀한 생각,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생각을 멈추어라, 등등. 이처럼 생각과 마음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도록 은유적으로
선택의 주체를 감추며 본질로부터 조금씩 분리시킵니다.
마음자세, ‘영혼의 자세’.
생각이 창조한다. “내가 창조한다.”
선한 마음, ‘선한 영혼’.
생각해서 행동해야 한다. “분별해서 행동해야 한다.”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영혼으로 세상을 본다”.
생각의 힘, ‘분별의 힘’.
질투심, ‘질투하는 감정체’.
음란한 생각, ‘음란한 감정체’.
용맹심, ‘용맹한 영혼’.
치밀한 생각, ‘치밀한 에고’.
투기심, ‘투기하는 감정체’,
평온한 마음, ‘평온한 영혼’.
생각을 버려야 한다. “판단을 버려야 한다.”
생각해서 행동한다. “분별하여 행동한다.”
생각을 멈추어라, “판단을 멈추어라.”
이제 우리는 이야기를 마쳐야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생각과 마음’을 대체할 수 있는
관념들을 동원하여 최대한 바꾸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를 갑자기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저항하고 반발할 것이며,
오히려 여러분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 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주 천천히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교훈의 깊이가 깊지 않으면,
정신적 영적 발전 속도는 더디게 됩니다.
진화하는 여러분의 다음 문명은 정신문명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https://youtu.be/x_-_tEQ6m4k?si=40nN2ckCPUMFJ7N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