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띠(마음챙김)은 사띠와 삼빠잔나(알아차림)과 아따빠(정진)을 포함한다.
붓다는 여러 초기경전에서 직접 제자들에게 사띠(마음챙김 念) 삼빠잔나(알아차림 正知)할 것을 간곡하게 반복하여 당부하였다. 붓다가 간곡하게 반복하여 당부한 것인 만큼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띠이다. 사띠는 불교수행 전부를 포함하는 것이다. 사띠속에는 삼빠잔나가 반드시 포함된다. 그래서 사띠삼빠잔나(正念正知)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붓다가 깨달은 존재(覺者)인 붓다인 이유도 붓다는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일상 생활에서 항상 깨어있는 사띠삼빠잔나(正念正知)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사띠경(S47;44)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마음챙기면서[사띠하면서] 머믈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러면 수행자는 어떻게 마음챙김하는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몸에서 몸을(느낌에서는 느낌을,
마음에서는 마음을, 법에서는 법을) 놓치지 않고 관찰한다.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극복하면서
전심전력으로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자 되어(ātāpī sampajāno satimā) 머믄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ātāpī sampajāno satimā는 열심히(전심전력으로) 알아차림과 사띠를 지니고의 뜻이며
결국 사띠한다는 것은 사띠 삼빠잔나[正念 正知]를 아따빠(열심히) 한다는 뜻이다.
초기 경전에서 잘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삼빠잔나는 일상의 행주좌와나 모든행위 심지어
먹을때나 대소변볼때나 잠을 깨거나 잘때까지도 언제나 알아차리고 깨어있는 상태를 말한다.
2.아따빠의 의미
열심히 정진한다는 뜻의 아따빠를 경전에서 보면
근면 경(A3;49)[Atappa sutta]
"수행자들이여, 세 가지 경우에 근면해야한다. 어떤 것이 셋인가?
1.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근면해야한다.
2.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근면해야 한다.
3.이미 일어난 몸의 느낌, 즉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앗아가는 그런 느낌을 견디기 위해 근면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경우에 근면해야 한다.
수행자가 이 세 가지에 근면할 때
그를 일러 근면하고 슬기롭고 괴로움을 종식시키기 위해 마음챙기는 수행자라 한다.”
보통 정진의 뜻은 나쁘고 해로운 법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유익한 법들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아따빠는
여기에다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 참혹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그런 도져히 견딜수 없는 느낌까지 견디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게 할 때 슬기롭고 괴로움을 종식시키기 위해 마음챙기는 수행자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에서 슬기롭게 괴로움을 종식시키기 위한 마음챙김의 수행속에는 격심한 고통을 견디어 내는 것이 반드시
포함된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챙김은 불안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불안이나 고통을 받아들이고 견디어내고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다.
최근에 새롭게 밝혀지는 신경과학적 연구에서도 스트레스나 고통의 경험을 피하려 하지말고
받아들이고 견디어 내는 것이 우리를 더욱 강하고 건강하게 한다는 많은 보고가 있다.
연구에 의하면 명상수행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명상을 편안한 이완상태라고 생각하여 핵심불안에 직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불안이나 고통을을 완전하게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안이나 고통을
받아들이고 허용하고 견디고 알아차림하는 능력을 길러 불안과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마음챙김이다.
(물론 감당할 수 있는 것부터 서서히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병 경(S52:10)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어 머물 때, 이미 일어난 몸의 괴로운 느낌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한다."
3.극심한 고통을 正念 正知하여 흔들림없이 감내하는 것
붓다의 경우는 어떠하였는지 초기 경전을 보자
돌조각 경(S1:38) Sakali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맛다꿋치의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돌조각에 부딪혀 발에 상처를 입으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심한 고통을 느끼셨는데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셨다.”
그리고 깊은 밤이 되자 많은 천신들이 나타나 격심한 고통을 흔들림없이 감내하면서 正念 正知하는 위대한 영웅인
붓다를 번갈아 가면서 찬양하는 내용이 나온다.
아따빠(근면)경의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는 관용구가 똑같이
그대로 나온다. 그러나 붓다의 심한 고통에는 아따빠경의 관용구의 마지막에 나와 있는 “생명을 앗아가는 그런 느낌”
이라는 말은 빠져 있다. 그러니까 아따빠경에 정념정지하여 마음챙김할 때는 격심한 고통속에 참혹하게 죽어가는
느낌까지도 견디어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병경(S47;9)Gilana sutta
"세존께서는 거기 벨루와가마에서 안거를 하셨다. 세존께서는 안거를 하시는 도중에 혹독한 병에 걸려서 죽음에
다다르는 극심한 고통이 생기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림하시면서[正念正知]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셨다."
여기에서는 붓다가 죽음에 다다르는 극심한 고통을 흔들림없이 감내하여 正念正知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