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 송전탑 아래 흐리고 안개 낀 날 작은 오촉 전구등을 가지고 손을 위로 하늘 위로 치켜 올리면
대기 중 전하가 흐르기에 간혹 꼬마 전구 등에 불이 들어 오기도 합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류와 전압, 전기장 같은 작용을 두 사람이 알아내었는데 그 모든 작용성을
통칭하여 한 사람은 '전기'라고 부르고, 또 한 사람은 이런 형상 없고 이름 없는 작용에는
뭔가 있으리라 이를 '일렉트라'의 존재라고 불렀습니다.
그게 뭐든, 뭐라고 부르든, 어떤 전기적 상태, 작용, 현상은 있는 것이지요.
그게 뭔지를 잘 모르는 사람도 수도물 처럼 이런 에너지를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상하게 과거쩍부터 숲 속의 새 백 마리 보다 내가 키우는 새 한 마리를 더 애지중지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 수 백명 사고로 몰살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안됐구나'하고
금새 망각하지만, 옆집 할머니가 어제밤 돌아가셨다면 심쿵 하고, 밤에 골목길을 지날 때
왠지 '감을 시골에서 가져 왔는데 좀 먹구 가수' 하고 말을 거는 것 같아 오싹하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특이하게도 사물과 현상에 말을 걸고 이를 의인화하여 자기 감정을 얹습니다. 또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기와의 각별한 관계성을 만들어요. 꽃에도 자기 자식처럼
말을 건네고, 꽃들이 기쁘다, 아프다 라는 말을 듣는다는 아줌마를 몇 달 전 본 적이 있습니다.
뭐 과학적으로 보면 생기론이나 물활론 같은 것은 없죠. 그게 뭐든 어쨌든 사람은 관계와 의미를
찾아내어 자신과의 연관성을 드리웁니다.
일단 아상을 벗어나면 형상에 그리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본래 형상 없음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형상 없음에도 고개를 숙일줄 알아요. 아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형상 없이 사물을
본다거나 살아간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형상있음을 섬기게끔 되는 것입니다.
많이 닦은 이는 형상 없는 法에 귀의하고, 아직 제 몸덩어리와 마음에 연연해 하는 사람은
형상있음에 순응하여 그걸 통하여 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뭐가 고차원이다 저차원이다.
심오하다, 단순하다 같은 것은 공부인에게 없습니다. // 일단 테스트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