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9일 (일) 상도선원 팔정도법회에서 하신 법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원래 초청법사로 헝가리 원각사의 청안 스님을 모시고 하려던 법회였는데, 갑자기 헝가리 대통령의 방한 일정 때문에 청안 스님이 오늘 경주 불국사 방문에 동행하셔야 해서 다음 주(12월 6일)로 미뤄졌습니다. 그래서 12월 첫째주 법문을 오늘로 앞당겨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팔정도법회에서 자애관(자애명상)을 얼마 전부터 하지 않았지요? 시간이 모자라 안 할 때도 있었고, 자애명상의 완전한 프로그램이 준비가 안 되어서 그런 점도 있었습니다. 그간 해왔던 것은 전통적 자애관인데, 이것저것 조합해서 하였습니다.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등 상좌부 불교 국가에서는 자애경을 중심으로 자애관을 합니다. 이것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로 전해지면서 유명 여자 가수가 자애송을 노래로 재구성하고 영어로도 번역하여 부르기도 했습니다. 잘 알려진 노래입니다. 다음에는 이 자애송을 들려드리면서 명상을 해보겠습니다.
자애관의 중요성과 방법, 의미를 연결해서 여러분과 나누고, 법회 때 정식으로 자애관을 할 것입니다. 분명한 이해를 하고 집에서도, 일상에서도 바탕이 되는 수행으로 삼기 위한 저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자애관이 무엇인지, 그리고 불교 교리 체계 안에서 자비의 위치는 어떤 것인지 말씀드리고 제가 정리한 자애미소명상(자애관+미소명상)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자애미소명상은 첫째, 몸 전체를 정화하고, 둘째 정화된 몸을 통해 자애 에너지를 보내 더 깊이 순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화, 순화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가족과 이웃에게, 우주 가득한 중생에게 방사하고 회향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명상을 하면서 자애 에너지를 보내는 것이었다면, 이번엔 좀더 구체적으로, 몸의 중요 부분을 상기시켜 관하면서 하도록 해보았습니다.
요가에서는 인체에 차크라가 일곱 개 있다고 합니다. 도교 쪽에서도 인체에 경락과 기운이 도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효과적으로 명상이 되려면, 그런 부분을 좀더 집중해서 관해야 합니다. 서양에서도 '스마일 메디테이션(smile meditation)'이 개발되었습니다. 제가 옥스퍼드에 유학중에 그런 자료를 많이 모아서 보았습니다. 요즘도 인터넷에 자료가 많이 있지요. 그런 것을 종합해서 재구성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비의 의미를 알고 바탕을 튼튼히 해 응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현대적 언어로 바꾸는 작업도 해야 합니다. 계속 더 다듬고 적절한 음악을 선택해 씨디로 녹음할 생각입니다. 이 씨디는 선원에서 수행용으로만 쓰는 것으로 하고 외부 배포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교 안에서 자애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를 두 축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종교’라는 말이 ‘최상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서, 능가경에서는 불교를 아예 종교라 칭했습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깨닫고자 불교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연기법을 체득하신 부처님은 너와 나는 둘이 아니라는 궁극적 깨달음, 즉 동체대비를 설하셨습니다.
지혜 수행은 통찰(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이 범주에 들어가는 수행이 많습니다. 포괄적 의미에서 보면 대승불교의 거의 모든 수행이 이 통찰 수행을 축으로 합니다. 집중 수행은 사마타 수행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비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사무량심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자애관은 사마타 수행에 속합니다. 마음이 차분해졌을 때 이 수행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사무량심 중에서 자(慈)는 Loving kindness, 메따(metta)입니다. 자무량심 수행은 사랑과 친절이 내 몸에서 발산되어 우주 전체에 가득하게 하는 삼매 수행입니다.
비(悲, karuna)무량심 수행은 자기를 비롯한 모든 존재에게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연민’이라 할 때의 연민이란 일반적으로 슬픔에 빠진다는 뜻으로 쓰이는 그러한 연민이 아닙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어루만지고 받아주는 자기공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공감’이라 번역해도 되지만 ‘empathy'가 이미 그렇게 번역되고 있으므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자기연민’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희(喜 mudita)무량심 수행은 기쁜 마음을 함께 나누는 수행입니다. 기쁨은 나누면 무한대로 확장됩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하려는 자애미소명상이 이와 연관됩니다. 미소짓는 것은 기쁨이라는 심소와 직결되거든요.
사(捨 uppekkha)무량심 수행은 평정심 수행입니다. 좋고 나쁨의 분별이 사라진 상태의 평정심, 마음 깊은 곳에 전혀 동요되지 않는 평정심이 마련되어 있어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진정한 자애관을 할 수 있습니다.
청정도론에 나오듯이, 자․비․희․사 중에 앞의 세 가지는 3선에 해당하고, ‘사’는 4선에 해당합니다. 4선은 색계 수행 중 가장 깊은 삼매로서 자애 수행의 바탕이 되고 다른 행법과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이웃 종교들도 봉사를 많이 하지만, 이것이 자기수행과 겸해 진전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고갈되어 버립니다.
지난 주 법회 때 거머 교수의 이야기(주1)에도 나왔지요. 그분이 수련의로 있을 때 상담을 통한 자기정화-이를 전문용어로는 ‘supervision’이라 합니다-를 할 때 자기의 슬픈 과거를 이야기하니 듣는 상담자 교수가 울었다고 했습니다. 동화 상태에서 연민을 나눈 것입니다. 그래서 교수가 자기의 옛날 슬픔을 생각하나보군, 이라고 얕잡아보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후 단계가 진전되면서 1주일에 1번 만날 때는 완전히 반전이 되어 그 교수는 평정심에서 이끌어주고 우는 것은 자신이었다고 했지요. 연민을 나누고 나서 바로 평정심 상태로 들어가 평정심에서 이끌어준 것입니다. 이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정심이 안 된 상태에서는 남을 지도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수행의 바탕은 평정심 수행입니다. 자애관을 계속하면서 지혜 수행도 동반되어야 합니다. 탐진치를 무탐무진무치로 전환하는 평정심 수행은 일상 속에서 가장 잘 할 수 있습니다. 역경계가 왔을 때 제일 잘 알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움직이지 않고 고요한 상태로 있으면 평정심에 이른 것이고, 그렇지 못하고 온 몸 전체가 화에 휩쓸려가면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이 평정심 수행은 평생 동안 해야 할 수행입니다.
3선과 4선의 삼매를 완성해 사무량심을 충족했을 때 자기 그릇(근기)에 따라 이것을 쓸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과 가족에만 한정해서 자비심을 쓰면 그건 ‘애자비’라고 합니다. 이것도 안 쓰는 것보다는 한결 낫습니다. 이것도 안 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서 사회가 힘든 쪽으로 가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한 단계 나아가 이웃을 보살피려 하는 것을 ‘유한자비’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이웃뿐 아니라 모든 존재들에게 자비를 보내는 것을 ‘무한자비’라 합니다. 대상과 ‘나’의 구분조차 사라져버리고 하나 되어 자비가 충만한 상태를 ‘동체자비(동체대비)’라 합니다. 이런 것을 행법으로 만든 것이 바로 자애관법입니다. 자애경을 중심으로 하여 행법이 구체화되었습니다.
주석서에는 자애관을 할 때 제일 먼저 자신에게 자애를 보내고, 그 다음에 존경하는 사람, 도반, 가까운 이, 가족에게 자애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이때 정말 많이 애착하거나 많이 미워하는 사람은 빼야 합니다. 막연히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떠올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웃, 존재계의 모든 중생에게 자애를 보내고, 그 다음으로는 미워하고 원한이 맺힌 대상에게 자애를 보냅니다. 우리 법회에서는 이 맨 뒤의 대상은 뺍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짧기 때문이지요. 자애명상을 가지고 3박4일쯤 수행하는 경우에는 이것도 들어갑니다.
자 그럼 제가 자애경을 독송하겠습니다 (스님이 직접 빨리어와 한국어로 독송하심) (주2)
이 자애경은 ‘숫따 니빠따’에 있는 경인데, 이를 중심으로 많은 주석서와 이를 재구성한 행법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럼 제가 이번에 새로 만든 ‘자애미소명상(inner-smile-loving- kindness-meditation)’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눈에 자애와 미소를 먼저 보냅니다. 눈은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신체 기관입니다. 편안하게 지그시 눈을 감고 이마의 긴장을 풉니다. 주름은 삶의 흔적이지요. 이마의 주름을 마음으로 펴줍니다. 그런 다음 두 눈에 마음을 보냅니다. 밝고 훈훈한 기운이 미간으로 흘러 콧속에 느껴지도록 합니다. 입가에 미소 가득한 기운을 느끼며 입꼬리를 위로 치켜올립니다. 편안하고 아름다움이 느껴질 때 이 상태로 명상을 지속합니다. 얼굴이 이완되는 것을 느껴봅니다.
자애로운 미소의 기운을 목의 앞부분으로 보냅니다. 목에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갑상선이 있고 성대도 있습니다. 목이 부드럽게 트이며 생명의 말(옴)이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해봅니다. 흉선을 진동시키며 에너지를 주면 성대가 활성화됩니다. 충만한 생명의 진동을 가슴으로 느껴봅니다.
그 다음에 자애로운 미소의 기운을 심장으로 보냅니다. 눈 감고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생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이 박동을 들어봅니다.
그 다음에는 폐에 이 기운을 보냅니다. 웃음으로 가득 차면서 폐 세포가 살아납니다. 우울함이 씻겨 나가는 것을 느끼며 하얀색 눈을 느껴봅니다.
다음엔 간에 기운을 보냅니다. 화내고 근심하고 우울할 때 손상되는 부위가 간입니다. 자애 에너지를 보내며 분노가 사라지게 합니다. 이때는 초록빛 바다를 생각합니다.
다음에 위장, 비장, 대장, 소장에 보냅니다. 황금빛 들녘을 상상합니다. 뱃속을 편안하게 하고 온전히 느끼며 어루만지고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다음에 신장으로 기운을 보내며, 맑고 푸른 하늘을 상상합니다. 그 빛으로 가득 채웁니다.
이어 단전으로 기운을 보내고 다시 눈으로 돌아갑니다. 긴장이 남은 곳은 없는지 점검합니다. 긴장이 느껴지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집중적으로 자애 에너지를 보냅니다.
선도(仙道)의 용어로 우리 몸에 기혈순환 통로로 임맥과 독맥이 있다고 보는데, 이 과정을 통해 임맥을 정화하고 눈->두뇌-> 경추, 척추, 요추(독맥)를 정화합니다. 간뇌의 시상하부는 모든 호르몬 계통의 바탕을 마련하는 곳으로, 여기가 정화되어야 정신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집니다.
좌뇌와 우뇌로 에너지를 보내며 양쪽 뇌가 서로 잘 조화되게 시선을 보내고 앞뒤로 돌려줍니다. 그리고 뒷골, 숨골 통해 몸, 등, 허리로 기운을 내려보냅니다. 이때도 정화가 중요합니다. 이어 흉추와 장기들로 자애 에너지를 내려보냅니다. 요추와 생식기관을 지나 머리, 정수리, 목 경추, 등 경추, 허리를 통해 관세음보살의 자애 에너지가 전신으로 흘러내리게 하여 발끝까지 보냅니다.
이렇게 정화된 상태의 심신에 경전을 바탕으로 한 자애관법을 시작합니다. 전적으로 수용하는 마음이 모든 수행의 근본이 됩니다.
“내가 욕심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지이다
내가 화냄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지이다
내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지이다”
이렇게 이어갑니다.
그리고 끝에는 다음과 같은 회향게를 합니다. 함께 독송하겠습니다.
바와뚜 삽바 망갈람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게 하소서)
락칸뚜 삽바 데와따 (모든 선신들이 우리를 보호해주소서)
삽바 붓다/담마/상가 누바웨나 (모든 부처님/법/승가의 공덕으로)
사다 수끼 바완뚜 떼 (늘 평안하게 하소서)
사두 사두 사두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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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11.22. 팔정도법회 초청연사 크리스토퍼 거머 교수의 강연 ‘마음챙김과 심리치료’ (담마게시판-신행이야기 참조)
2) 카페에서 '자애경' 혹은 '자비경'으로 검색하면 경 전문이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