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1-46편...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아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시인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라’고 고백합니다.
‘피한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비빌 언덕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피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삶의 모습에서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피하지 않고 세상의 문화와 가치에 피합니다.
요즈음 가장 많은 유혹은 내 마음, 내 생각에 피하고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인인데, 주님과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고백할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이 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 또 다른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게 될 때 하나님께 피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때부터 새롭게 믿음의 길을 가게 됩니다.
제대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행적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전쟁 중에 하나님의 행하심을 봅니다.
위험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행적을 보게 됩니다.
그 상황 속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알지어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피합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고백하며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날마다 보며 찬양하는 삶을 갈망합니다.
출처 백병권목사님 칼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