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
“꾀가 많은”이라고 하면 어떤 동물 이 떠오르시나요?
르나르 라는 이름의 빨간 여우가 주인공인 프랑스 중세 우화가 있습니다.
힘은 별로 강하지 않지만 특기인 꾀를 이용해서 자기보다
힘있는 늑대 이장그랭을 번번히 속이고 골려 먹습니다.
죽은 척 하고는 생선장수의 생선을 훔쳐먹고 사람의 위협을 피해
유유히 사라지는가 하면 숲 속에서의 여러 가지 위기를 오직 번쩍이는 잔꾀로 해쳐 나갑니다.
그러나 어느 날 멍청하기만 한 늑대
이장그랭이 복수의 칼을 갈고 목숨을 건 체스 게임을 제의합니다.
그러나 결코 질 수 없는 이 게임에서 패배한 르나르는 죽음의 공포와 졌다는
상실감 속에서 심장마비로 죽고 맙니다.
지혜롭다기 보다는 꾀가 많은 사람에 대한 우화인 이런 유형의 이야기 들은
당장은 꾀가 많은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는 속담을 확인시켜주고 끝납니다.
성경에서“꾀 많은”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은 야곱입니다.
그러나 그의 꾀는 결코 그의 삶을 성공시키지 못했습니다.
자기 꾀를 의지하던 야곱은 말년에 바로 앞에서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유용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꾀로 일을 이루여 하다가는 중요한 순간에 벽을 만나게 됩니다.
꾀, 방법, 요령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섭리에 순종함이 중요합니다
출처 강재춘목사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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