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과 “변병”
주방현(朱邦賢)
병이 있으면 증이 있게 되고, 변병(辨病)함으로써 만이 증을 인식[識證]할 수 있으며, 그 병증(病證)을 인식함으로써 만이 이후에 치료할 수 있으므로 병은 증과 더불어 밀접하여 분리할 수 없으니 양자는 일체인 것이다. 병은 본(本)이 되고 체(體)가 되며, 증은 말(末)이 되고 상(象)이 된다.; 병은 항상 변하지는 않으나 증은 다변(多變)하며, 병에는 정해진 몫[定分]이 있으나 증은 정해진 것이 없다. 의사가 그 병을 변별하여 알 수 있고 질병의 본질과 그 전변 규율을 파악하면 사람에 따라 다름과 제반 변화의 증상을 통찰할 수 있어 치료에 절차가 있고 태세를 문란하게 하지 않는다. 만일 그 병을 밝히지 않거나 병을 버리고 변 “증(證)”한다면 일정한 주견 없이 대세를 따르게 되고 막연하여 일정한 견해가 없다. 그 칭하는 바 “변증론치(辨證論治)”는 역시 격을 낮추어 “대증치료(對症治療)”가 됨을 면할 수 없을 뿐이다. 이것은 필자가 조석무(趙錫武) 원로분으로부터 배울 때에, 작고하신 스승께서는 오늘날 사람들이 변증을 공허히 말하고 한의학 변병의 특색을 경시하며 마음대로 병증의 관계를 분리하는 시대적 폐단을 겨냥하여 우리들에게 간곡하게 경계하셨다.
조 선생님께서는 인식하셨다.: 사람의 장부, 조직, 기관은 각각 상응하는 생리 기능을 맡고 있으며, 일단 병이 걸리면 그 정상 기능이 실조되어 반드시 일정한 형징(形徵)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병이 위(胃)에 있으면 소화에 관련된 여러 증을 나타내고; 폐에 병들면 호흡의 형징을 나타내며; 본병(本病)이 다른 곳으로 전해지면 또한 상응하는 형징을 고려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조 선생님은 질병 초기의 형징을 “원증(原證)”으로 이름하고, 여기에서 다른 곳으로 파급된 것을 “부수증(附隨證)”이라고 칭하였으며, 양자를 통칭하면 “정증(定證)”이 된다. 임상에서 그 정증을 종합하여 관찰하면 어떤 병이 되어야 하고, 병위(病位)는 어디인지를 변별하여 알 수 있으므로 서로 마땅한 치법을 추구하고 확정할 수 있다. 정증(定證)에서 정형적으로 만나는 것을 “정증(正證)”이라고 하며, 변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기증(奇證)”이라고 한다. 진찰 시에 정증(正證)을 얻으면 변병은 자연히 어렵지 않고; 다만 기증을 보면 원증(原證)이 왕왕 선명하지 않아 의사의 병을 진찰하는 능력의 우열이 바로 판정된다. 예를 들어 만약 의사가 초진 시에 실수하여 괴증(壞證), 역증(逆證)이 시작하게 되고, 이은 진료에서 다시 잘못하거나 그 치료에 실패하면 매번 위증(危證)이 잇따르거나 심하면 치료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병의 원증을 변별하여 알 수 있으면 그 미발현된 부수증을 미리 알 수 있으며; 다만 그 정증(正證)을 단정할 수 있으면 반드시 그 미발현된 기증을 예방할 수 있고; 기증의 진면목을 통찰할 수 있으면 은닉된 정증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어서 질병의 표본 완급 변환의 여러 상(象)에 미혹되지 않게 된다. 병을 변별하고 증을 아는것(辨病識證)은 바야흐로 중경의 규거가 되어 떼어놓고 방치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으로 조 선생님은 일찍이 우리 여러 제자들과 함께 원인 불명의 고열이 4개월여 된 한 병례를 회진하셨는데, 그 환자는 비록 한의학의 청영량혈해독(淸營凉血解毒) 치료 및 각종의 항생제로 양약의 치료를 거쳤으나 체온은 여전히 39.5~40.5℃간을 오르내렸고 당시에는 낮에는 덜하다가 저녁에는 더해지며 밤에는 심해지는 특징을 나타내고 매번 40℃ 이상을 넘었다. 조 선생님은 그 날짜가 이미 60일을 넘었고, 비록 연속하여 고열이 낫지 않으나 정신은 아직 맑고, 면색이 바른 적색이고, 미한출(微汗出)하면서 오한(惡寒)하지 않고 구갈(口渴)하지 않으며, 열이 심하면 심번하고, 설태가 백(白)하면서 맥은 부현(浮弦)한 것들의 형징에 근거하고 또한 발병의 초기에 일찍이 계지탕을 복용하였으나 땀이 없이 고한청설(苦寒淸泄)하는 방제로 바꾸었으나 효과가 없었던 병력을 결합하여, 단호하게 계지마황각반탕(桂枝麻黃各半湯)을 투여하시면서 계지탕의 경우 따뜻하게 덮고 죽을 먹는 치료법으로 땀을 조금 내는데 땀이 나지 않으면 방을 바꾸지 않는다고 덧붙이셨다. 두 첩을 복용한 후에 온몸에 땀이 났으며 체온은 37.5℃까지 내려갔고, 다시 귀기건중탕(歸芪建中湯)으로 그 후를 개선하였다. 조 선생님이 이 병안을 분석한 요점은 다음과 같다.: 질병의 초기에 계지의 법으로 투여하였으나 태양병 중풍의 증에 유감스럽게도 법에 따라 기다리지 못하여 미처 치료를 완성하지 못했다. 재진 시에 치료법을 바꾸어 잘못 치료하게 되면서 장열(壯熱)이 물러가지 않고 면적(面赤), 심번(心煩)하여 증상이 온열이 영혈(營血)에 들어간 증과 같으나, 그 사람이 불갈(不渴), 불구(不嘔)하니 양명, 소양의 증이 없고; 병이 4개월이 지났으나 역시 하리, 단욕매(但欲寐), 궐역의 여러 증이 없으므로 확연히 삼음병증이 아니며; 여러 맥증을 합하여 보면 마땅히 태양병을 잘못 치료한 괴증(壞證)에 속한다. 그 면색이 붉고 미한출하면서 병이 풀리지 않으며, 열이 나면 번하는 것은 바로 사(邪)가 울체하여 외달(外達)하지 못하고 양기(陽氣)가 펴지지 못하는 증이다. 만약 원증을 간파할 수 있으면 중경의 변병맥증병치(辨病脈證幷治)의 치법 처치로부터 스스로 치료에 적중할 수 있어 바로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대로 병을 버리고 증을 얘기하는 것은 비유컨대 피부가 있지 않으면 모발이 장차 어디에 붙어 있으리요?
역자 신상우 / 교정 여진주
원 저 : 상해중의약잡지 1990년 5기(95133019)
“辨證”與“辨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