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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채씨(平康蔡氏)와 함양박씨의 緣

작성자벽초(풀꽃)|작성시간11.09.20|조회수613 목록 댓글 0

       평강채씨(平康蔡氏)와 함양박씨의 緣은 있을까?

 

                                                         碧草/朴魯鶴

 

 

 

  우리 先祖의 비 중에는  평강 채씨 성을 가진 분이 계신다.

 

   "평강 채씨"

 오늘날 양반이 아니라고 하는 성씨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리 흔하지 않은 희성이라하여 과소평가할 성씨는 절대 아니다.

 정조 때에 남인을 이끌었던 영수로도 활약할만큼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 명문가라는 점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자는 평강채씨 중에 채제공이라는 분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다. 그의 벼슬이 높다하여 존경하는 인물로 여기는 것도 아니요  그 분이 남긴 역사적 자취와 그의 인성을 엿볼 수 있는 기록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려는 진정성이 담긴 행동과 업적을 통해  필자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평가되는 것임을 말하고 싶다.

 

 

 채제공, 그 분이 누구이며 어떤 분이기에 벽초가 존경하는 인물로 평가받는 것일까?

 

    채제공 1720(숙종 46)∼1799(정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채제공의 자는 백규(伯規),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본관

은 평강(平康)으로 채응일의 아들로 태어으며 그의 5대조가 효종(1649 ~ 1659)때

대제학(정2품)을 지낸 채유후(1599 ~1660) 이다. 

채제공은 1758년 당시 영조(1724 ~ 1776)가 사도세자를 폐하려고 할때 목숨을 걸

고 이를 저지할만큼 강직한 사람이었다 이때에 영조는 채제공이 당색을 떠나 원칙

에 충실한 충신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가 악화되어 세자 폐위의 비망기가 내려지자 죽음을 무릅

쓰고 막아 이를 철회시켰는데, 이 사건으로 하여 후일 영조는 채제공을 지적하며

 "진실로 나의 사심없는 신하이고 너의 충신이다."

라고 정조에게 말한 것으로도 짐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1735년(영조 11) 15세로 향시에 급제한 뒤 1743년 문과정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채제공이 정조와 정식으

로 인연을 맺게된건 1767년 세손우빈객.공시당상이 되면서부터이다.

다시말해서 세손(훗날의 정조)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 정조의 스승이 된 것이다.

 

 1776년 3월에 영조가 죽자 국장도감제조에 임명되어 행장·시장·어제·어필의 편찬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어 사도세자 죽음에 대한 책임자들을 처단할 때 형조판서 겸 판의금부사로서 옥사를 처결하였다. 또한 영조 승하이후 정조 치세에서 채제공

을 빼놓고는 논할수 없을만큼 채제공의 역할은 컸음을 알게되는 것이다.


 정조 4년 홍국영(洪國榮)의 세도가 무너지고 소론계 공신인 서명선(徐命善)을 영의정으로 하는 정권이 들어서자, 홍국영(1748 ~ 1781)과의 친분, 사도세자의 신원에 대한 과격한 주장으로 정조 원년에 역적으로 처단된 인물들과의 연관, 그들과 동일한 흉언을 했다는 죄목으로 집중 공격을 받아 이후 8년 간 서울근교에서 칩거 생활을 하게되며 채제공이 다시금 조정에 출사하게된건 1788년 정조가 채제공을 우의정(정1품)에 제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때에 채제공은 '6조진언'을 올린다. 이후 1790년 좌의정으로서 행정 수반이 되었고, 3년 간에 걸치는 독상(獨相)으로서 정사를 오로지 하기도 하였다.

 

 노론이라는 집단에게 수없이 암살의 위협을 안고 살아온 정조, 그를 보필하여 이

룩한 정치발전과 학문연구 등은 채제공과 진취적인 기상을 지닌 정약용 같은 남인

의 인재를 발탁하여 기용한 정조의 안목과 맞물려 빛나는 정치문화가 이룩된 것으

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정조는 노론의 앞잡이요 정적이었던 왕대비에 의해 독살을 당하게되는 비극(정사에서는  확증이 없어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나  야사에서는

독살설을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을 안게 되는 아쉬움을 남긴다.

 

  당파로 얼룩진 조선의 역사에서  특히 권력을 잡기 위하여 많은 임금까지도 독살

는 노론들의 행위는 이나라 조선을 팔아먹는 친일 앞잡이로 전락해 가는 것이다.

 다음에는 노론에 대하여 심층분석하고자 한다.

  

 

평강채씨(平康蔡氏)  : 검색자료임을 밝힌다.

 

【시조】채송년(蔡松年)

【인구】69,256명 (2000년 현재)

【주요파】▲정선공파 ▲돈령공파 ▲소감공파 ▲어사공파 ▲판서공파 ▲목사공파 ▲생원공파 ▲고성군파 ▲중암공파

 

 시조 채송년은 고려 고종 때 추밀승선을 지냈다.

그는 홍주에서 일어난 최향의 난을 평정했으며 몽고병이 침입을 막아내 대장군이 된다.

시조 채송년의 묘소가 강원도 평강군 유진면에 있다 그래서 후손들이 평강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두 아들과 손자. 증손 등이 모두 재상에 올라 "8정승"을 배출했다.

채씨는 조선시대 채세영. 채유후. 채제공 등 명신. 명상을 낳아 더욱 빛난다.

채세영은 여말의 정승 채종린의 7대손으로 중종~명종 때 벼슬하여 호조판서. 좌참찬을 지냈다.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채제공은 영조19년(1743년) 문과에 급제,

정조초에 이르기까지 도승지와 육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한다.

남인의 영수였던 그는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재상의 자리를 지켰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두루 업적을 남겼다.

특히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천주교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취한 분이

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평깅채씨는 명문가로서 손색이 없는 가문이며 이

가문에서 우리 가문으로 출가해온 훌륭한 선대 할머니가 계시니 바로 병백당

할뱀의 비이신 평강채씨이다.

 

필자의 14대조 증 이조참판 병백당 (박운) 할뱀의 비 평강채씨 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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