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유씨(江陵 劉氏)에 대(對)하여
1. 강릉 유씨(江陵 劉氏) 시조(始祖) : 유승비(劉承備)
2. 강릉 유씨(江陵 劉氏) 유래(由來) :
유씨(劉氏)는 원래(元來) 중국(中國) 제요의 후손(後孫)이 유(劉)땅에 봉(封)해지면서 유씨(劉氏)로 성(性)을 받은 것이다.
그후 수천년을 지나 초한 시대(時代)에 이르러 유방(한고조)이 중원을 통일(統一)하고 한 제국을 창건(創建)하면서 유씨(劉氏)가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우리나라 유씨(劉氏)의 도시조(都始祖)인 유전(劉筌, 시호(諡號)는 문양)은 한고조의 41세손(世孫)으로 도학(圖學)과 문장(文章)이 뛰어났고 송(宋)나라에서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다.
그는 1082년(고려(高麗) 문종(文宗) 36) 8학사(學士)의 일원(一員)으로 고려(高麗)에 들어온 후(後) 경북(慶北) 영일군에 정착(定着)하여 살았으며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에 이르러 특명(特命)으로 그를 위한 사우가 건립(建立)되고 고려(高麗) 태조(太祖)와 함께 7왕(王)을 모신 숭의전에 배향(配享)되고 있다.
3. 강릉 유씨(江陵 劉氏) 본관(本貫) 연혁(沿革)
본관소재지 : 강원도(江原道) 강릉(江陵)
강릉(江陵)은 기원전(紀元前)부터 성읍국가인 예맥족(濊貊族)의 예국(濊國)이 있던 지역으로 127년 이후에는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하였다. 313년(고구려 미천왕 14)에 하서랑(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 불리었다. 550년(신라 진흥왕 11) 신라(新羅)의 영토(領土)로 편입(編入)되었고, 639년(선덕여왕 8) 2월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고, 658년(무열왕 5) 말갈족(靺鞨族)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理由)로 소경을 폐지(廢地)하고 하서주(河西州)로 개편(改編)하여 도독(都督)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 명주(溟州)로 개편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를 두었고 9군 25현을 관할(管轄)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는 동원경(東原京)이라 칭(稱)하고 임영관(臨瀛館)을 두었다. 그 후(後) 우계(羽谿)·연곡(連谷)의 두 현(縣)을 두었다가, 1260년(원종 1) 공신(功臣) 김홍취의 고향(故鄕)이라하여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389년(공양왕 1)에는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가 설치(設置)되었다. 1789년(정조 12)에 강릉부(江陵府)가 되었다. 1896년(고종 33) 강릉군(江陵郡)으로 개칭(改稱)하였다. 1931년 강릉면(江陵面)이 강릉읍(江陵邑)으로 승격(昇格)되었고, 1955년 강릉읍(江陵邑)·성덕면·경포면을 통폐합(統廢合)하여 강릉시(江陵市)로 昇格하면서 명주군을 분리(分離)시켰다가 1995년 강릉시(江陵市)와 명주군을 강릉시(江陵市)로 통합(統合)하였다.
강릉 유씨(江陵 劉氏)는 거창유씨(巨昌劉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系統)으로 도시조(都始祖) 유전(筌)의 9세손 유승비(承備)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고려말(高麗末)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했던 그는 벼슬이 누진(累進)하여 좌복야(左僕射)로 치사(致仕)했고, 그의 증손(曾孫) 유창(敞)이 조선개국(朝鮮開國) 2등공신(二等功臣)에 책록되어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封)해져서 후손(後孫)들이 본관(本貫)을 강릉(江陵)으로 삼게 되었다.
거창유씨 - 유전의 첫째 아들 유견규(堅規)가 거타군(居陀君, 현 거창)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거창으로 했다.
강릉유씨 - 유전의 12세손인 유창이 조선개국공신(朝鮮開國) 2등공신(二等功臣)으로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현 강릉)에 봉(封)해져서 본관(本貫)을 강릉(江陵)으로 하였다.
배천유씨 - 유전의 8세손 유국추(國樞)가 백천군(白川君)에 봉해져서 본관을 백천으로 하였다.
4. 강릉 유씨(江陵 劉氏) 계파(系派)
병사공파(兵使公派)
경력공파(經歷公派)
좌랑공파(佐郞公派)
군수공파(郡守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어사공파(御使公派)
호판공파(戶判公派)
병판공파(兵判公派)
부사공파(府使公派)
금성공파(金城公派)
5. 강릉 유씨(江陵 劉氏) 대표적(代表的) 인물(人物)
유창(敞) : 대제학(大提學)·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등(等)을 역임(歷任)하였다.
유계주 : 이조 좌랑
유한량(漢良) : 유계주의 아들, 유창의 증손,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무장 현감(茂長縣監)으로 창의(倡義)하여 진주성(晉州城) 방어에 참전했다.
유세분(世 ) : 유창의 현손(玄孫), 진원 현령(珍原縣令)으로 나가 청백(淸白)한 정사(政事)로 소문났었다.
유선보(善寶) : 참판(參判)
유호인(好仁) : 유선보의 아들,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했다.
유덕문(德文) : 임진왜란 때 백의(白衣)로 의병(義兵)을 일으켜 전투에 나갔다.
유경달(景達) : 전주(全州)에서 "유효자(劉孝子)"로 유명했던
유기원(基源) : 유경달의 아들, 가뭄 때 기민(飢民) 구휼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유동원(東源) : 유경달의 아들, 효(孝)와 충(忠)으로 사림(士林)의 추앙을 받았다
유병관(秉瓘) : 유동원의 아들, "효도삼대(孝道三代)"의 정맥(旌脈)을 이였다.
6. 강릉 유씨(江陵 劉氏) 집성촌(集姓村)
- 전북 고창군 부안면 상등리
- 전남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
- 전남 승주군 월등면 일원
- 전남 장흥군 부산면 구룡리
- 전남 신안군 비금면 구림리, 신원리
- 경북 영풍군 이산면 용상리
-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걸포리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
-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추학리
- 충북 제원군 수산면 고명리
- 충남 공주군 계룡면 봉명리
1. 강릉 유씨(江陵 劉氏) 시조(始祖) : 유승비(劉承備)
2. 강릉 유씨(江陵 劉氏) 유래(由來) :
유씨(劉氏)는 원래(元來) 중국(中國) 제요의 후손(後孫)이 유(劉)땅에 봉(封)해지면서 유씨(劉氏)로 성(性)을 받은 것이다.
그후 수천년을 지나 초한 시대(時代)에 이르러 유방(한고조)이 중원을 통일(統一)하고 한 제국을 창건(創建)하면서 유씨(劉氏)가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우리나라 유씨(劉氏)의 도시조(都始祖)인 유전(劉筌, 시호(諡號)는 문양)은 한고조의 41세손(世孫)으로 도학(圖學)과 문장(文章)이 뛰어났고 송(宋)나라에서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다.
그는 1082년(고려(高麗) 문종(文宗) 36) 8학사(學士)의 일원(一員)으로 고려(高麗)에 들어온 후(後) 경북(慶北) 영일군에 정착(定着)하여 살았으며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에 이르러 특명(特命)으로 그를 위한 사우가 건립(建立)되고 고려(高麗) 태조(太祖)와 함께 7왕(王)을 모신 숭의전에 배향(配享)되고 있다.
3. 강릉 유씨(江陵 劉氏) 본관(本貫) 연혁(沿革)
본관소재지 : 강원도(江原道) 강릉(江陵)
강릉(江陵)은 기원전(紀元前)부터 성읍국가인 예맥족(濊貊族)의 예국(濊國)이 있던 지역으로 127년 이후에는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하였다. 313년(고구려 미천왕 14)에 하서랑(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 불리었다. 550년(신라 진흥왕 11) 신라(新羅)의 영토(領土)로 편입(編入)되었고, 639년(선덕여왕 8) 2월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고, 658년(무열왕 5) 말갈족(靺鞨族)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理由)로 소경을 폐지(廢地)하고 하서주(河西州)로 개편(改編)하여 도독(都督)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 명주(溟州)로 개편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를 두었고 9군 25현을 관할(管轄)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는 동원경(東原京)이라 칭(稱)하고 임영관(臨瀛館)을 두었다. 그 후(後) 우계(羽谿)·연곡(連谷)의 두 현(縣)을 두었다가, 1260년(원종 1) 공신(功臣) 김홍취의 고향(故鄕)이라하여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389년(공양왕 1)에는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가 설치(設置)되었다. 1789년(정조 12)에 강릉부(江陵府)가 되었다. 1896년(고종 33) 강릉군(江陵郡)으로 개칭(改稱)하였다. 1931년 강릉면(江陵面)이 강릉읍(江陵邑)으로 승격(昇格)되었고, 1955년 강릉읍(江陵邑)·성덕면·경포면을 통폐합(統廢合)하여 강릉시(江陵市)로 昇格하면서 명주군을 분리(分離)시켰다가 1995년 강릉시(江陵市)와 명주군을 강릉시(江陵市)로 통합(統合)하였다.
강릉 유씨(江陵 劉氏)는 거창유씨(巨昌劉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系統)으로 도시조(都始祖) 유전(筌)의 9세손 유승비(承備)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고려말(高麗末)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했던 그는 벼슬이 누진(累進)하여 좌복야(左僕射)로 치사(致仕)했고, 그의 증손(曾孫) 유창(敞)이 조선개국(朝鮮開國) 2등공신(二等功臣)에 책록되어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封)해져서 후손(後孫)들이 본관(本貫)을 강릉(江陵)으로 삼게 되었다.
거창유씨 - 유전의 첫째 아들 유견규(堅規)가 거타군(居陀君, 현 거창)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거창으로 했다.
강릉유씨 - 유전의 12세손인 유창이 조선개국공신(朝鮮開國) 2등공신(二等功臣)으로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현 강릉)에 봉(封)해져서 본관(本貫)을 강릉(江陵)으로 하였다.
배천유씨 - 유전의 8세손 유국추(國樞)가 백천군(白川君)에 봉해져서 본관을 백천으로 하였다.
4. 강릉 유씨(江陵 劉氏) 계파(系派)
병사공파(兵使公派)
경력공파(經歷公派)
좌랑공파(佐郞公派)
군수공파(郡守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어사공파(御使公派)
호판공파(戶判公派)
병판공파(兵判公派)
부사공파(府使公派)
금성공파(金城公派)
5. 강릉 유씨(江陵 劉氏) 대표적(代表的) 인물(人物)
유창(敞) : 대제학(大提學)·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등(等)을 역임(歷任)하였다.
유계주 : 이조 좌랑
유한량(漢良) : 유계주의 아들, 유창의 증손,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무장 현감(茂長縣監)으로 창의(倡義)하여 진주성(晉州城) 방어에 참전했다.
유세분(世 ) : 유창의 현손(玄孫), 진원 현령(珍原縣令)으로 나가 청백(淸白)한 정사(政事)로 소문났었다.
유선보(善寶) : 참판(參判)
유호인(好仁) : 유선보의 아들,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했다.
유덕문(德文) : 임진왜란 때 백의(白衣)로 의병(義兵)을 일으켜 전투에 나갔다.
유경달(景達) : 전주(全州)에서 "유효자(劉孝子)"로 유명했던
유기원(基源) : 유경달의 아들, 가뭄 때 기민(飢民) 구휼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유동원(東源) : 유경달의 아들, 효(孝)와 충(忠)으로 사림(士林)의 추앙을 받았다
유병관(秉瓘) : 유동원의 아들, "효도삼대(孝道三代)"의 정맥(旌脈)을 이였다.
6. 강릉 유씨(江陵 劉氏) 집성촌(集姓村)
- 전북 고창군 부안면 상등리
- 전남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
- 전남 승주군 월등면 일원
- 전남 장흥군 부산면 구룡리
- 전남 신안군 비금면 구림리, 신원리
- 경북 영풍군 이산면 용상리
-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걸포리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
-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추학리
- 충북 제원군 수산면 고명리
- 충남 공주군 계룡면 봉명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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