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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김씨

작성자벽초|작성시간14.01.29|조회수58 목록 댓글 0

김녕 김씨(金寧金氏)

김녕은 지금 김해(金海)의 옛 이름으로 일찍부터 가락국의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오다가 서기 532년 신라 법흥왕 19년에 신라에 병합 되었다. 김녕 김씨의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7세손으로 경북 의성에서 출생하여 서기 1135년 고려 인종 13년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금주군(金州君)에 봉해 졌다. 금주는 지금 김해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을 김녕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오다가 고려말 지명이 김해로 개칭되어 본관을 김해로 개칭 하였다가, 김수로왕 계통의 김해 김씨와 혼돈이 되므로 김해 김씨를 선김(先金)으로, 김녕 김씨를 후김(後金)으로 칭하다가 1884년 고종 21년 김녕 후손들이 탄원하여 예조(禮曹)의 비준을 받아 왕명으로 관햐을 김녕으로 확정 하였으며,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 김녕 김씨는 남한에 총 162,204가구에 513,01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김제 김씨(金堤金氏)

김제 김씨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12세손 김천서(金天瑞)가 고려 때 김제에 정착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이 7세손 김정걸(金正傑)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김제군에 봉해져 그 후손들이 김정걸을 1세조로 관향을 김제로 하였다. 2000년 인구 통계 조사시 남한에 1,594가구 5,22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포 김씨(金浦金氏)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경순왕의 넷재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11세손 김 규(金珪)를 시조로하며, 그가 고려조에 나라에 공을 세워 김포군(金浦君)에 봉해져 관향을 김포로 하였다 하나 문헌이 실전되어 중간게대는 상고할 수 없고, 다만 1930년도 국세 조사에 의하면 평북 영변 지방과 전남 목포 그리고 경기 양주와 인천, 서울 등지에 살고 있었으며, 2000년 통계청 인구 조사시에는 남한에 6가구 26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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