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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다구의 역사

[도자기 상식]43.조선 백자의 종류(2)

작성자아란도|작성시간07.10.09|조회수488 목록 댓글 0

조선백자의 종류


조선백자에는 순백자, 상감백자, 철화백자, 청화백자, 진사백자 기타 등의 종류가 있는데, 이러한 분류는 전체를 백자라는 개념으로 붂고 그 위에 어떤 안료로 그릇 표면에 그림을 그렸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로 구분한것이다.

① 순백자 또는 백자


순백자 또는 백자라고 하는 것은 청화백자니, 철화백자니 하는 것과 구별하여 그릇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도 높은 순백의 태토와 잡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석회유를 씌워 고화도에서 구운 경질의 백자를 말한다.

그리하여 순백자는 조선시대 말까지 조선도자기의 중심을 이룬다. 사실상 요즈음에도 백자에 대한 선호도는 어느 종류의 그릇보다 높아 순백에 대한 한국인의 미적 감각은 상당히 뛰어난 듯하다.

순백자의 발생 시기는 명확히 밝힐 수 없으나 앞서 고려시대 도자를 다루면서 이미 언급했듯이 1391년 제작품인 홍무24년명백자발(도 254)의 조선적인 볼륨이 있는 기형이라든지. 질감·색감 등에서 고려백자와는 현저히 다르다.

따라서 조선백자의 태동기는 1391년경 전후로 볼수 있겠으나 그 이상의 단언은 하기 어렵다.

15세기 전반경에는 순백자가 분청사기 가마에서 함께 번조되었던듯하며 이때에 백자만은 특히 갑발에 넣어 정교하게 제작하고 있다. 문헌 기록에서는 1425년 세종 7년에 명 인종의 요구에 의해 10탁분 210개의 백자를 정세 번조하여 바친 기록이 있다.

② 상감백자


상감백자는 백자의 표면에 음각으로 무늬를 파고 여기에 자토를 넣어 검은색의 무늬를 나타낸 그릇을 말한다.

상감백자는 담청색 경질백자와 함께 약간 미색을 띤 연질백자 종류가 있다. 상감 기법은 고려 12세기 청자에서 발생하여 내려온 도자기 장식 기법의 하나로서 청자에서 응용된 상감 기법이 15세기 백자에까지 이용된 것이며 대체로 15세기 후반에는 그 명백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청화백자에 대한 욕구가 강렬하여 청화백자 제작에 정부의 관심이 특별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음각으로 무늬를 넣는 방법은 쇠퇴해지고 반면에 붓으로 표면무늬를 그리게 됨으로써 고급품으로는 수입 청화안료로 그린 청화백자와 국내산 철사로 그린 철화백자가 만들어진다. 상감백자의 무늬는 명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아 덩굴진 연당초무늬가 새겨진 예(도 390)도 있고 또 분청사기의 무늬와도 매우 유사한 치졸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도 있다.

③ 청화백자


백자에 무늬를 나타낼 때 코발트 안료인희청을 써서 그림을 그린 것을 청화백자라고 한다. 청화백자는 한자로 표기할 때는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청화백자는 중국 명 청화백자의 영향으로 발전한다.

중국의 경우 청화백자의 발생 문제는 학자들간에 많은 이론이 있어, 9·10세기 만당으로부터 송대 발생설과 14세기 전반 발생설이 있지만 대체로 후자의 14세기 전반설이 유력하며 보다 신빙성이 있다.

한 가지 예로 1976∼1982년 사이에 전남 신안 앞바다 해저 침몰선에서 발견된 원대 도자기들은 그 제작 시대가 지대통보 전에 의한 1310년의 상한과 지치3년명목간에 의한 1323년의 하한년이 밝혀졌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국 청화백자가 한 점도 없다는 점을 들구 있고 그로 인해 청화백자의 본격적인 제작 시기는 14세기 중기 이후 라고 보게 된 것이다.

④ 철화백자


철화백자는 철사로 무늬를 그려 다갈색으로 발색한 백자를 말한다. 그릇 위에 철사안료로 그림을 그린 예는 꽤 이른 시기부터라고 생각되나 확실한 예는 알 수 없으며 고려시대 철화백자와 철화청자에서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로 이어지면서 조선 말기까지 오래도록 널리 이용된다.

조선백자에 철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지 않으나 대개 청화 안료가 사용되던 때를 전후한 15세기 중·후반 이후라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많이 제작된 것은 임진란, 호란 이후 청화안료의 구입난으로 17세기에 들어와서부터이고 17세기의 철화백자는 독자적인 위치로 발전하여 한국적인 정취의 해학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⑤ 진사백자


진사백자는 붉은 색으로 발생하는 산화동으로 그림을 기린 백자를 말한다. 진사의 사용은 12세기의 상감청자에 이미 부분적으로 사용하였고 조선조에서는 18∼19세기에 걸쳐 크게 유행 하며 이러한 현상은 일종의 시대사조로 생각된다.

무늬에는 연꽃, 승려와 같은 인물 등이 있다. 이처럼 진사백자의 무늬는 불교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18세기 불교의 진홍과 진사백자와의 상관관계를 시사하지 않을까 싶다. 제작상 발색이 까다로와 무늬가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다.

제작량이 다른 것에 비해 적은 것과 제작상의 문제와 붉은 색에 대한 선호도가 일반적으로 낮았기 때문일 것이다.

⑥ 조선청자


조선청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청자를 말한다. 이것은 백자 태토에 철분이 함유된 유약을 시유한 것으로 녹색을 띤 청자이다. 그러므로 고려청자에 비래 형태, 색, 문양 등 서로 다른점이 있으며 제작량은 소량이다.

15세기 분청사기에는 고려상감청자와 구별할 수 없는 맑고 투명한 유약을 시유한 것이 있어 사실상 분청사기라기보다는 청자라고 해야할 것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조선청자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종년간에는 분청사기 유약과 태토가 매우 밝아져서 다시금 고려상감청자로 환원해 가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조선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는 15세기 중·후반경이 되면 진정한 의미의 조선청자가 백자와 한께 생산된다.

이러한 조선청자는 배자 태토에 유약만이 청자유이고 무늬는 없고 형태는 조선백자와 거의 같다.

대체로 17세기까지 이러한 청자가 만들어지는데 광해군 8년 기록에 의하면, "사옹원 사기는 대전에서는 백사기를 사용하고 동궁은 청자기를 사용한다. 내자 내섬 예빈시는 구례를 따라 청홍아리화를 사용한다." 라는 기록에서 보듯이 공궁에서는 청자를 썼음을 알 수 있다.

⑦기타


기타에는 석간주, 잡유, 흑유, 토기들이있다. 특히 석간주 그릇에는 면각을 내어 항아리를 만든 것이 주목되는데 대체로 이들 석간주는 조선 말기의 그릇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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