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인 줄 알았잖아! (동상이몽 편)
며칠 전 목요일 밤이었어요.
침대에 누워서 폰 보고 있는데 남친한테 카톡이 오더라고요.
"자기야, 이번 토요일 저녁 7시에 청담동
OO 레스토랑 예약해 뒀어. 꼭 정장 예쁘게 입고 나와!"
청담동? 거기에 정장까지?!
보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준비하면서 언제 프로포즈하나
은근히 눈치 게임 중이었는데,
이건 누가 봐도 100% 타이밍이잖아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죠.
토요일 당일,
제 방은 그야말로 폭탄 맞은 전쟁터가 됐습니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프로포즈 날인데
대충 나갈 순 없잖아요?
옷장 문 다 열어제끼고 옷을 수십 벌씩
입었다 벗었다 난리를 쳤네요.
미용실급으로 정성 들여 머리 말리고,
평소엔 귀찮아서 쓰지도 않던 풀메이크업에
팩트까지 팡팡 두드리면서 완벽 세팅 완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지만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주인공이 되겠다는 집념 하나로
준비했습니다.
드디어 약속한 청담동 레스토랑에 도착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조명도 은은하고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특히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친을 본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평소에는 맨날 편한 후드티만 입던 인간이,
어디서 아주 칼같이 재단된 블랙 정장을 빼입고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더라고요.
주변에 막 자체 필터로 반짝반짝 후광이 비치는 느낌이랄까?
그 모습을 보는데 속으로
'아, 오늘 내가 진짜 반지 받는구나'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남친이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자켓 안주머니에 쓱 손을 집어넣는 겁니다!!!
제가 그 순간 침을 꼴깍 삼키면서
남친 손끝만 초집중해서 쳐다봤거든요?
머릿속으로는 이미 장미 꽃잎이 날아다니고
티파니 반지 상자가 아른거렸는데...
.
제 심장은 마하의 속도로 뛰고 있었고,
드디어 남친의 자켓 안주머니에서 손이 쓱 빠져나왔습니다.
짜잔! 하면서 남친이 아주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미소로 제 눈앞에 들이민 것은...
반지 상자가 아니라,
웬 꼬깃꼬깃한 ‘모바일 주유 쿠폰 5만 원권’이 켜진
스마트폰 화면이었습니다.
"자기야! 나 이번에 당근마켓에서
청담동 레스토랑 가성비 할인 쿠폰 완전 득템했잖아!
대박이지?
그리고 다음 달에 사촌 형 결혼식 가야 하는데,
이 정장 핏 어떤지 자기가 좀 봐달라고
입고 오라 한 거야! 어때, 멋있어?"
...네? 정장... 핏이요...? 주유... 쿠폰이요...?
그 순간 머릿속에서 쿠구구궁- 하고
천둥 번개가 치면서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피어오르던 붉은 장미꽃들이 실시간으로 시들어 바스라지더라고요.
프로포즈인 줄 알고 전날 밤부터 설레서 잠도 못 자고,
아침부터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풀메이크업에
네일아트까지 풀세팅하고 온 제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이 눈치 밥 말아먹은 예랑이는
제 속도 모르고 분위기 파악 전혀 못한 채,
신나서 스테이크를 와구와구 입에 넣으며 엄지를 척 들어 올리더라고요.
"와, 여기 고기 진짜 살살 녹는다!
자기도 얼른 먹어봐!
근데 자기 오늘 화장 왜 이렇게 진해? 어디 면접 보고 왔어? ㅋㅋㅋ"
그 면접, 너랑 파혼할지 말지 결정하는 면접이다 이 인간아...
영혼이 탈탈 털린 저는 포크만 쥔 채 멍하니 허공만 바라봤습니다.
고기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식당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옷이고 뭐고 남친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흔들어버렸네요.
"이 눈치 없는 인간아!!!!
오늘 고기가 입으로 넘어가냐!!!
내가 오늘 왜 이러고 나왔겠냐고!!!"
남친은 멱살이 잡힌 채 "왜, 왜 그래 자기야?
주유 쿠폰 싫어?!" 하면서 억울하다는 듯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데...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
혹시 예비 신부님들도 결혼 준비하면서 이런 황당한 '김칫국 프러포즈' 경험 있으신가요?
눈치 제로 예랑이 둔 동지분들, 댓글로 저랑 같이 뒷목 잡았던 잔혹사 썰 좀 풀어주세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