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진주(眞主) 우주 만들기
정동재
화성이라 이름 붙이니 화성이 되었다
수성이라 이름 붙이니 수성이 되었다
화성이라 이름 붙이기 전에 이미 화성이었다
수성이라 이름 붙이기 전에 이미 수성이었다
목성, 금성, 토성이라 이름 붙이기 전에 이미 목성, 금성, 토성이었다
1은 수(水) 북, 2는 화(火) 남, 3은 목(木) 동, 4는 금(金) 서, 5는 토(土) 중앙에
6은 수(水) 북, 7은 화(火) 남, 8은 목(木) 동, 9는 금(金) 서, 0은 토(土) 중앙에
십진법으로 천지 사방 진을 짜니
월화수목금토일(月火水木金土日) 운행이
좌 청룡(Left 靑龍), 우 백호(Right 白虎), 남 주작(South 朱雀), 북 현무(North 玄武)의 보우를 받아
천체의 행진 가로막을 자 없다
가로 세로 이리 합해도 저리 합해도
일월 품은 밝을 명(明) 15진주(眞珠)의 마방진이 분명하니
상현, 하현, 한 달 달력 만들기 충분하고
해와 달의 밀당(인력 비율 5 : 2.35), 일 년 열두 달을 엮어도
누구 한쪽을 편들어 천체가 쏠리지 않는다
칠산 바다 조기 한 마리도 먹을 사람을 정해 놓고 잡힌다더니
오늘밤 간간히 유성우가 내린다
내일모레 보름날 서둘러 그물 걸어놓으면
아이들 도시락 걱정 보름간은 충분하다
[평론] 일월(日月)의 명덕(明德)을 빚는 15진주(眞主) 옥황상제의 대서사시
정동재의 시 「15진주 우주 만들기」는 우주를 완벽한 수리적 질서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는 ‘초정밀 설계도’로 통찰해 낸 영적 물리학의 위대한 기념비다. 시인은 혼돈스럽게 엉겨 붙은 우주의 에너지를 하나의 신성한 질서 속으로 수렴시키며 준엄한 영적 선언을 감행한다.
1. 15진주 마방진: 명(明)의 빛으로 구축한 천지사방 진
시인은 오행의 수리적 결합인 하도낙서의 법칙을 십진법의 천지사방 진으로 구축하고,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의 성수(星宿)들이 보우하는 웅장한 천체의 행진을 펼쳐 보인다. 가로, 세로, 대각선 그 어디를 더해도 해(日)와 달(月)을 품은 ‘밝을 명(明)’ 자의 이치로 수렴하는, 진주빛처럼 영롱한 ‘15진주(眞珠)의 마방진’은 태양과 달의 정교한 인력 비율(5:2.35)을 유지시키는 핵심 축이다. 이는 지상의 생명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공존하게 만드는 우주의 자정 능력이자 광명(光明) 그 자체다.
본디 마방진(魔方陣)이란 무엇인가. 바로 어둠과 마(魔)를 제압하여 신성을 수호해 내는 거대한 진(陣)이다. 따라서 시 속의 ‘15진주(眞珠)’는 우주를 구성하기 위해 정교하게 짜인 시공간의 진이자 영롱한 신성의 실체이며, 이는 곧 우주를 15진(陣)으로 짜서 만물만상(萬物萬象)이 존재케 하시는 태극(太極)의 지고한 참주인, 즉 ‘15진주(眞主) 옥황상제(玉皇上帝)’를 가리키는 장엄한 상징으로 치환된다.
2. 유성우와 번개: 지상의 풍요를 빚는 ‘생명의 비’
이 시의 진정한 위대함은 천상의 차가운 기하학적 정밀함이 지상의 가장 따뜻한 자비와 생명력으로 치환되는 눈부신 순환의 고리에 있다. 벼락과 천둥이 대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식물의 단백질을 빚어내는 ‘생명의 메카’가 되듯, 밤하늘에 내리는 간간한 유성우는 고갈된 지구를 적시는 ‘우주의 비’가 된다.
칠산 바다의 조기 한 마리부터 아이들의 도시락 걱정을 더는 서정적인 풍요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거대한 운화(運化)는 지상의 삶을 따뜻하게 먹여 살리는 구원의 방식이 된다.
3. 진주빛 명덕(明德): 어둠과 혼돈(魔)을 제압하는 사랑의 톱니바퀴
“기가 막히면 죽는다”는 서늘한 통찰처럼, 시인은 막혔던 기운을 뚫고 우주와 인간을 다시 숨 쉬게 만든다. 시인은 이 모든 신성한 리듬을 옥황상제의 품성인 ‘일월을 품은 15진주(眞主)의 명덕(明德)’이라 명명한다. 이는 어둠과 혼돈(魔)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옥황(玉皇)의 옥빛이자 우주라는 거대조개가 품은 진주빛이며, 동시에 우주적 조화의 결정체다. 달력과 조석, 유성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제자리를 찾는 모습을 통해, 수리적으로 설계된 우주가 사실은 지고한 주인의 정교하고 신성한 사랑의 실체임을 증명해 낸다.
총평
정동재 시인은 수학적 정밀함(마방진)이 어떻게 생화학적 생명력(질소 고정)으로, 다시 인간의 따뜻한 삶(도시락)으로 이어지는지 대우주의 그 거대한 순환을 ‘명(明)’이라는 한 문장에 압축했습니다. 과학과 영성을 하나로 묶어 무미건조한 수학 기호를 생명의 에너지로 조각해 낸, 태극(太極), 15진주(眞主)의 권능이 빛나는 한국 현대시 최고 차원의 서사적 연금술입니다.
(평론: 정동재)
저자소개
노벨문학상이 지상의 최고 언어인 한국어의 정수를 깨닫지 못한 채 주로 상형문자 집단에 머물러 있다는 점, 그리고 문학의 정수이자 경전인 시(詩)조차 비유와 은유라는 이름 뒤에 숨어 언어를 함부로 농락하는 문단의 아픈 현실 앞에서, 시인 정동재는 한국 문학사에 전편(全篇) '평론시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그는 철학, 종교학, 수리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등등 천문, 지리, 인사를 넘나드는 '영적 물리학'의 세계를 통해 기존 문학의 틀을 깨부수고, 우주의 탄생부터 완성까지를 관통하는 거대한 '천지인(天地人)의 설계도'를 펼쳐 보인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하늘을 만들다》, 《살리는 공부》, 《나는 빛이요 파동이요 생명이므로》가 있으며, 전편 평론시집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 《물리학으로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 전편 평론시선집 《말못병 하느님》, 그리고 대장정의 전편 평론시선집 완결판인 《안귀령의 전력질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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