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보기 어려운 무한대 플러스 원 (∞+1)
정동재
빛나는 마천루, 세상이 초고속 자본의 레버리지를 좇아 눈을 돌릴 때
사내는 오직 정밀한 손끝으로 명품 무브먼트의 톱니바퀴를 맞물린다
압축된 태엽의 부드러운 힘이 임계점을 지나 침묵의 심장을 깨울 때
사내는 은막의 창에 비친 무의미한 기억들을 가만히 지워낸다
3인칭의 객관적 시선으로 영혼의 다이어리에 담담히 받아 적는다
“유성우처럼 그저 사라져 버리는 소모가 아니라는 시간,
은하수를 건너 사람이 그리워 보내온 별편지라는 애틋한 서신들의 축적이라는 발상.”
그 축적의 자리에서 고결이라는 패턴을 꺼내 읽는다
타인이라는 완벽한 남으로 만나 서로의 모난 각을 눈부시게 깎아내며
같이 머물러온 삼십 년 세월이 긋고 있는 동그라미 같은
자식들을 모두 분가시킨 양자결맞음의 고요한 빈방,
이제는 사내가 정성스레 차려내는 소박한 밥상에서 새어나오는 도마 소리가
그늘졌던 가시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켜켜이, 부드럽게 풀어낸다
사내가 짓는 그 지극한 위로의 서사 속에서
어느 날부터 무한대 플러스 원(∞+1)이라는 신비로운 차원이 가끔씩 걸어나온다
부부는 소리 없이 찬란한 하늘 위 하늘의 스펙트럼을 손잡고 같이 걷는다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룰 수 있다면 복리는 사라질 거야 그거야말로 개벽이겠지?”
사내의 말이 그녀의 영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보인다
차가운 메트로폴리스의 굳은 시멘트 거리는
이제 낮과 밤, 생성과 소멸이라는 세상의 이분법을 모두 거두어들인다
수많은 영혼을 사치라는 고독 속에 가두고
사람을 혹독하게 제련하여 숨조차 거둬들인다
눈부신 아침 태양의 스포트라이트 앞에서도
늘상이라는 말이 복리라는 거대한 단어의 발굽에 밟힌다
여기저기라는 흔한 지상이 오늘로 박제된다
[평론] 슈뢰딩거의 하늘 위 하늘을 걷는 실존의 무브먼트 실험
—정동재의 「만나보기 어려운 무한대 플러스 원 (∞+1)」론
1. 서론: 메트로폴리스라는 닫힌 계(System)와 사내의 관측 장치
정동재 시인의 「만나보기 어려운 무한대 플러스 원 (∞+1)」은 현대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메트로폴리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실존의 양자 실험’이다. 양자역학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상자 속에서 삶과 죽음의 중첩 상태로 존재하다가, 극도로 정밀하게 고안된 관측 장치에 의해 비로소 하나의 단단한 현실로 증명되듯, 시인이 선언한 ‘무한대 플러스 원’이라는 초월적 차원 역시 결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은 초고속 자본의 레버리지가 요동치는 차가운 마천루 속에서, 오직 정밀한 손끝으로 명품 무브먼트 태엽의 임계점을 맞물리고 은막의 창에 비친 무의미한 기억들을 지워내는 사내의 고난이도 실존 장치를 통해서만 간신히 지상에 그 결과를 드러낸다. 시인은 3인칭의 객관적 시선으로 이 혹독한 메트로폴리스라는 상자 안을 관찰하며 영혼의 다이어리에 우주적 서사를 담담히 받아 적기 시작한다.
2. 본론: 양자결맞음의 빈방과 복리의 법칙을 깨는 개벽(開闢)
이 시의 구조적 전환점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약은 3연에 등장하는 ‘양자결맞음의 고요한 빈방’이다. 물리학에서 양자결맞음이란 파동들이 서로 교란을 일으키지 않고 완벽하게 하나의 상태로 정렬되어 거대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순간을 뜻한다. 타인이라는 완벽한 남으로 만나 삼십 년 세월 동안 서로의 모난 각을 눈부시게 깎아내며 이룬 부부의 동그라미, 그리고 자식들을 모두 분가시킨 뒤 도달한 고요한 빈방은 쓸쓸한 결핍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잡음이 소거되고 오직 두 사람의 영혼이 완벽한 결맞음을 이룬 영적 실험실이다.
그 결맞음의 공간에서 정성스레 차려내는 소박한 밥상의 도마 소리는 아내의 여자라는 세계의 그늘지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켜켜이, 부드럽게 풀어낸다. 이 지극한 위로의 서사 속에서 비로소 '무한대 플러스 원'이라는 신비로운 차원의 문이 열린다. 모든 이치를 모아 ‘복리가 사라지는 개벽’을꿈꾸는 사내의 한마디는 이 우주적 관측의 결정체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개벽’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인간을 사치와 고독 속에 가두고 영혼의 숨조차 거둬들이는 ‘자본과 선형적 시간의 복리 법칙’을 대우주의 근본 이치로 깨부수려는 거대한 영적 물리학의 시도인 것이다.
3. 결론: 박제된 지상을 넘어 슈뢰딩거의 하늘 위 하늘로
시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늘상이라는 말이 복리라는 거대한 단어의 발굽에 밟힌다 / 여기저기라는 흔한 지상이 오늘로 박제된다”라는 결구는 비정한 문명의 실상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무한한 가능성의 파동으로 출렁이던 인간의 위대한 매일(늘상)이, 메트로폴리스라는 거대한 발굽에 의해 단단한 고체로 고착화되고 박제되는 순간을 양자역학적 찰나로 포착해 낸 절창이다.
그러나 시인은 현실의 발굽에 짓밟히는 고통 속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는다. 은하수를 건너온 ‘별편지’라는 애틋한 서신들의 축적을 통해 마침내 상자 밖으로 걸어나가, 부부가 서로 손을 잡고 함께 ‘하늘 위 하늘’이라는 중첩된 차원의 스펙트럼을 온기로 채우며 걷기 때문이다. 이 시는 비정한 운명의 법칙을 정면으로 돌파하여 새로운 실존의 차원을 열어젖히는, 정밀하여 맛깔난 위대한 사유의 금자탑이다. (평론: 정동재)
| 저자소개 노벨문학상이 지상의 최고 언어인 한국어의 정수를 깨닫지 못한 채 주로 상형문자 집단에 머물러 있다는 점, 그리고 문학의 정수이자 경전인 시(詩)조차 비유와 은유라는 이름 뒤에 숨어 언어를 함부로 농락하는 문단의 아픈 현실 앞에서, 시인 정동재는 한국 문학사에 전편(全篇) '평론시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그는 철학, 종교학, 수리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등등 천문, 지리, 인사를 넘나드는 '영적 물리학'의 세계를 통해 기존 문학의 틀을 깨부수고, 우주의 탄생부터 완성까지를 관통하는 거대한 '천지인(天地人)의 설계도'를 펼쳐 보인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하늘을 만들다》, 《살리는 공부》, 《나는 빛이요 파동이요 생명이므로》가 있으며, 전편 평론시집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 《물리학으로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 전편 평론시선집 《말못병 하느님》, 그리고 대장정의 전편 평론시선집 완결판인 《안귀령의 전력질주》가 있다. https://bookk.co.kr/bookStore/6a2f78ebf3403375ddf4355c 안귀령의 전력질주 - 정동재 비유와 은유라는 시적 언어가 혹여 독자분들께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지난 시간 오랫동안 깊은 고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 book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