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꽃, 양귀비
어느 초여름, 스님은 보육원에 다녀오다가 아름답게 핀 장미 몇 그루를 얻어
다래헌 앞뜰에 심었다. 그날 이후, 다래헌의 뜰에는 눈에 띄게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다 보면 모차르트의 '청렬(淸冽)' 같은 것이 옷깃에 스며드는 듯했다.
그 고요한 기쁨은 산그늘이 내려앉는 저녁 무렵의 아늑함과도 비슷했다.
장미가 꽃을 피웠을 때, 스님은 그것을 가리켜 '우주의 신비가 열린 것'이라고 했다.
그 꽃은 화원에서 사 온 장미가 아니었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처럼 그 장미는
그를 위해 기울인 시간과 정성만큼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 주며, 마음으로 보듬어 키운 꽃이니 어찌 각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님은 흙 속에서 올라온 나무의 가지 끝에서, 고운 빛깔과 그윽한 향기를 지닌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일대 사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옛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아는 스님에게서 급히 오라는 전화가 왔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서둘러 달려갔더니, 화단 가득 양귀비꽃이 피어있었다.
그때 스님은 꽃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양귀비의 자태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그날 이후 누군가 스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스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양귀비"라고 대답하곤 했다.
풀 한포기에서 손때 묻은 소품들에 이르기까지
스님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
ㅡ 백형찬 지음 '법정 스님이 사랑한 생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