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선암사 Ⅲ - 경내 둘러보기 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 양쪽에는 삼층석탑 2기가 나란히 서 있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기에는 전형적인 쌍탑일금당식(雙塔一金堂式) 가람배치를 따랐을 것 같다. 후대 절이 커지면서 몇 개의 영역으로 구분될 만큼 복잡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현재 각 영역은 축선에 따라 몇 개의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일주문?만세루?쌍탑?대웅전 등으로 구성된 대웅전(大雄殿) 영역, 그 위로 불조전?팔상전이 있는 원통전(圓通殿) 영역, 그 위로 미타전?달마전?응진당?진영당 등이 있는 칠전선원(七殿禪院) 영역, 그 옆으로 무우전이 있는 각황전(覺皇殿)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중 꼭 보아야 할 전각(殿閣) 몇 곳만을 소개하겠다. 또 지정 비지정을 떠나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들도 함께 소개할 까 한다.
일주문(一柱門)
조계문(曹溪門)이라고도 하는 일주문은 다포계 맛배지붕건물로 전남지방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었다. 입구 현판에는‘조계산선암사(曹溪山仙巖寺)’라는 산사(山寺)의 이름이, 뒷면에는 고청량산해천사(古淸凉山海川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옛 산 이름과 사찰 이름을 알게 해 준다. 기둥 좌우에 흙 담이 연결되어 있다. 일주문을 새로 만든 화엄사와 송광사의 경우, 옛 일주문에 돌담을 연결시킨 경우는 보았다. 다른 여타 사찰에서는 본 적이 없다. 대처승의 절집이라서 일까?
화엄사 옛 일주문
송광사 옛 일주문
선암사 일주문
일주문(一柱門) 뒷면에는 고청량산해천사(古淸凉山海川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범종루(梵鐘樓)
만세루(萬歲樓)
가념품 가게가 되어버린 범종루(梵鐘樓) 밑을 지나니 만세루(萬歲樓)가 나타난다. 학승들이 강학을 하였던 건물로 익공형의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건물이다. 1824년에 대웅전과 함께 해붕?눌암스님 등이 중창한 건물이란다. 보통 이 밑에 누문(樓門)을 두고 그 밑으로 대웅전 앞 중정(中庭)으로 가야하는데, 이곳에서는 누(樓) 좌우로 돌아가게 한 점이 특이하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만세루
바깥에는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1614∼1636)이‘육조고사(六朝古寺)’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육조(六祖)란 중국에 선종을 처음 전한 달마대사로부터 6번째의 조사 혜능을 일컫는 말이다. 몇 년 전 태고총림 방장 혜초(慧草) 태고종 종정이 하안거 결제 시 "달마(達磨)가 서래(西來)하여 수휴척이(手携隻履)하고 일조주장자(一條?杖子)한 까닭이 무엇인지"를 묻고 "육조고사(六朝古寺)의 조계가풍(曹溪家風)이 날로 쇠미(衰微)하니 조주(趙州)의 삼봉(三棒)이 어디를 향해 가야하느냐"며 수행 기강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을 일갈했다는 법어가 생각난다. 선암사가 조계산에 있듯이 육조 혜능이 주석한 산이 중국 소주(韶州)의 조계산(曹溪山)이었으니‘육조고사(六朝古寺)’라고 적은 것 같다.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이‘육조고사(六朝古寺)’라고 쓴 현판
만세루 옆으로 들어가니 앞에 보이는 것은 전부 줄로 연결된 연등(蓮燈)이다. 또 차양 때문에 대웅전과 석탑의 모습이 보기 힘이 든다. 석탑들은 선암사 3보(寶) - 철불 1기. 석탑 2기, 부도 3기 - 중 하나이다. 탑 좌우에는 여타 절집에서처럼 설선당과 심검당이 위치한다. 설선(設禪)은 교(敎)를, 심검(尋劍)은 선(禪)을 의미한다. 심검당 나무벽에 새긴 해(海)자와 수(水)자를 찾아보자. 환기의 목적보다도 불을 막고자한 벽사의 기능이 더 큰 것 같다.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311호로 지정된 대웅전(大雄殿)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고,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은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 겹처마 다포식 팔작지붕집이다. 공포를 앞?뒷면에는 각 3조, 양 옆면에는 각 2조씩을 배치하여 장엄하면서도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건물 안 공포는 화려한 연꽃 봉오리 장식으로 마감하여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수법을 나타내어 조선 후기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대웅전(보물 제1311호) 측면 - 이 절의 특징은 중요한 전각마다, 중요한 경점(景點)마다 사찰 홍보용 현수막이 걸려있는 점이다. 또 중요 공간마다 연등이 어지럽게 달려있다. 사진도 찍기 힘들고 현판을 찬찬히 바라보기도 힘이 든다.
대웅전 안에는 협시보살상이 없는 독존불(獨尊佛)을 모시고 있다.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이라서 협시보살을 모시지 않은 것 같다. 영조 때 조성하였다는 후불탱화 역시 독존불(獨尊佛)이다. 삼존불(三尊佛)에 길들여있는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마저 들게 한다. 대웅전 정중앙의 어간문(御間門)에 사람이 통과할 수 없도록 높은 머름을 댄 것도 특징 중 하나이다. 이곳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이 문을 통하여 통과할 수 있다고 하여 이처럼 만들었을 것 같다.
독존불(獨尊佛)
중앙에 높은 머름을 댄 부분이 어간문(御間門)
대웅전에서 사시불공을 드리는 여승들
대웅전 현판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가인 김조순(金祖淳, 1765년~1832년)의 글씨이다. 획이 굵고 힘차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할 당시 대제학을 지낸 그에게 어린 순조를 부탁했을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사람이다. 1802년 그의 딸이 순조의 왕비로 책봉되었고, 1805년 섭정이던 정순왕후<貞純王后;1745(영조 21)~1805(순조 5)>가 사망하자 국구(國舅)로서 어린 순조를 대신하여 섭정을 한 사람이다. 30년간 어린 순조를 보필하였고, 60년간 세도가였던 그가 남긴 현판이니 눈여겨 볼만하다. 현판에‘金祖淳書’라는 글자가 남아있다. 임금의 어필(御筆)이 아니는 현판의 두인(頭印)에 글쓴이의 이름을 쓰지 못하였을 당시 그의 세도를 짐작하게 한다. 이곳에서 빌어 순조를 낳도록 해 주셨고, 안동김씨의 전성시대를 열게 해 주신 부처님께 신세를 갚을 만도 하다.
대웅전 현판 -대웅전 현판은 현수막이 막고 있다.
삼층석탑(東ㆍ西 三層石塔)
보물 제395호로 지정된 2기의 삼층석탑(順天 仙巖寺 東ㆍ西 三層石塔)이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규모와 수법이 서로 같아 한 사람이 동시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지붕돌 정상에 2단의 굴곡을 이룬 괴임이 있는 것은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위에 작은 석재들이 놓여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신라 중기 이후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도선국사가 절을 중창할 때 세운 것 같다.
1986년 동탑 해체 때에 1층 탑신 사리공 안에서 사리구가 발견되어 보물 제 955호‘선암사삼층석탑내발견유물(仙巖寺三層石塔內發見遺物)’로 지정되었다. 사리 장엄구로는 청자 항아리, 백자 항아리가 각각 1점씩 있었으며, 사리 장치는 백자 항아리에서 나왔다. 백자 항아리 안에 비단으로 싼 금동 사리탑이 있고, 사리탑 안에 회백색 타원형의 사리 1개가 있는데, 사리는 팔각 원통 모양의 수정 그릇 안에 있다. 이 중 사리탑은 14세기경에, 백자 항아리는 16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이다. 따라서 이 탑은 16세기경에 보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삼층석탑
동탑 - 1986년 해체 때 사리구가 발견되었다.
사리구 - 문화재청 사진
사리구 - 문화재청 사진
탑 옆에는 괘불지주가 있다. 보물 제1419호로 지정된 선암사석가모니불괘불탱및부속유물일괄(仙巖寺釋迦牟尼佛掛佛幀및附屬遺物一括) 중 석가모니불 괘불탱을 걸어두었던 것 같다.
괘불탱은 본존불만을 단독으로 등장시킨 독존도(獨尊圖) 형식의 괘불화이다. - 문화재청 사진
원통전 영역
대웅전의 뒤로 올라가면 원통전 영역에 이른다. 당초에는 불조전?팔상전?원통전만 있었는데, 근래에 조사전?심전?장경각?첨성각 등의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팔상전(八相殿)에는 1753년에 은기(隱奇)를 비롯한 5명의 승려화원이 그린 것으로 보물 제1554호로 지정된‘선암사33조사도(順天 仙巖寺 三十三祖師圖)’가 소장되어 있었다.『조당집(祖堂集)』에 근거, 가섭존자부터 중국의 육조 혜능 스님까지 33명의 조사를 11폭으로 나누어 그린 선종 33조사도이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33조사인데, 총 11폭 중 7폭만 남아 있는 점이 아쉽다. 원본들은 박물관에 이관되고, 사본만이 볼 수 있다.
선암사33조사도 -문화재청 사진
원통전(圓通殿)
이 영역에서 제일 흥미로운 건물은 관음보살을 모시는 원통전(圓通殿)이다. 현종 1년(1660)에 경준?경잠?문정대사가 처음 지었고,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고쳐지었다고 한다. 이 전각과 이 안에 모셔진 관음보살상은 승선교(昇仙橋)와 함께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는 호암대사를 구한 관음보살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현 건물은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순조 24년(1824) 때 해붕?납암?익종 3대사가 중수(重修)한 건물이다.
원통전(圓通殿)
지붕은 전면의 돌출로 합각이 3곳인 팔작지붕으로 겹처마로 되어 있는데,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건물 앞쪽으로 기둥 2개를 내어 건물 평면이 정(丁)자형을 이루고 있다. 꼭 주유소의 캐노피처럼 보인다. 다른 사찰건축에서 보기 드문 형태이다. 전면에 양쪽으로 쌍여닫이문과 중앙에 4분합문이 있고 양 측면에는 쌍여닫이문이 하나씩 있다. 이 문의 창호에는 모란꽃이 투조되어 있다. 그 아래에는 둥근 달 속에 계수나무와 방아 찧는 토끼 두 마리를 역시 투각해 두었다. 둥근 달을 보니 수월보살? 월광보살?만월보살 등 관음보살의 화현(化現)이 생각난다. 문짝 위에는 순조(純祖)가 12살 때 썼다는 어필(御筆) '대복전(大福田)'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 현판만으로도 유림들의 핍박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순조(純祖) 어필(御筆) '대복전(大福田)'
내부에도 눈여겨 볼만한 곳이 많다. 내부는 보가 없는 무량구조로 인근 화순 쌍봉사 대웅전과 같은 구조이다. 불단 둘레 3면에 벽을 두르고 양옆에 문을 달아 건물 속에 또 하나의 집을 들여 놓아 내진(內陣, Choir)을 만들었다. 내진의 뒷면 한쪽을 막아 불상을 안치하는 불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통전(圓通殿)내 관음보살
화순 쌍봉사 대웅전
예전에는 내진 사이의 배면이 외에는 모두 문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나타난 사진을 보면 외부 벽에는 뒷면에만 벽이 있고 전면과 양 측면에는 벽이 없이 개방되고 계자난간을 설치한 것을 알 수 있다. 외진의 천장은 우물반자로 짜여 있으며 내진의 천장은 출목을 연결시켜 천장을 이루고 있다. 정조(正祖)가 이 부처님께 빌어 순조(純祖)를 낳았으니 장엄(莊嚴)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문짝에는 꽃살문을 달아두었는데, 모란꽃을 투조하여 문을 만든 것이다.
꽃살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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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Teresa 김인순 작성시간 11.04.21 제가 다녀본 사찰중에서 제일 웅장하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해 휴가때 시골 엄마모시고 선암사를 갔는데...정말로 경내가 훌륭했습니다. 송광사의 불일암을으로 가는 좁은 숲산책로에서 한여름의 폭염속에 우리 일행은 침묵속에서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을 얻어왔답니다. 빼어난 경치가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맘 모두의 마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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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눌인 양도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4.21 저도 관광사찰화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곳곳에 불사를 한다는 현수막이 영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