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은 후 지내는 의식 - 49재

작성자목경찬|작성시간08.07.09|조회수134 목록 댓글 0

사람 죽은 후 지내는 의식 - 49재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49재를 드린다.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49재를 드리는데 어색함이 없다. 그런데 이웃 종교계에서는 이 49재가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자신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풍속인지라 이를 배격하려고 해도 한국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이미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쉽게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 절충책으로 되도록 안하되 신도들의 요구가 있으면 49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는 추도식이나 위령미사 등을 행한다고 하니 49재가 지닌 또 다른 묘용을 보는 듯하다.

49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대비비사론>, <구사론>, <유가사지론> 등에 이미 언급이 되어 있는데, ‘설마달다 존자’는 사람이 죽어 다음 몸을 받기 전까지 중음신(中陰神)이 되어 떠도는 기간인 중유(中有)가 49일이라 한 바 있어 49재의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

오늘날의 경우처럼 49재 형식이 자리 잡은 시기는 불분명한데 이능화강백의 <조선불교통사>에 7.7재 형식의 49재가 조선초기부터 있어 왔다고 하니 이를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사후 다음 몸받기까지 ‘중음신’기간서 유래

조선 연산군은 천도재 봉행해 효심보이기도

 

 이러한 49재는 다종교 사회인 오늘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이미 논란이 되었는데 국가의 중심인 왕실에서는 효성을 다하기 위하여 49재를 지내려 하고 국정을 담당하는 조정중신들은 국가이념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이를 말리려 했으니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조에 보면 연산군이 성종대왕의 대상재(大祥齋)를 지내려 하자 예조판서 성현 등이 이를 말리는데 “(전략)전하께서…. 거듭 전례를 어기어 가시며 49재(齋)를 마련하고 또 기년에는 소상재(小祥齋)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때 대간과 시종들이 그것이 그르다고 항쟁 변론하였지만, 그 청을 받아 들이지 않았으며, 지금 또 명하여 대상재를 마련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신 등의 의견으로는, 사찰(寺刹)에 귀의(歸依)하는 것은 선왕을 욕되게 하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략) 이래서 신 등이 강력히 말씀드리며 번거롭게 아뢰는 바이니 삼사(三思)를 유념하기 바랍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전교하기를, “공씨의 도(儒敎)를 존숭하고 석씨의 교(佛敎)를 쇠하게 한다 하였지만 이것은 대상재를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점차로 쇠하게 하여야 하겠지만 재를 올리는 것이라면, 기신과 대상이 무슨 다름이 있는가. 진부한 말이구나”하며 49재와 천도재를 강행하였다고 하니 국가적 차원에서도 효심의 발로인 49재를 막지는 못하였던 듯하다.

이러한 49재는 불교를 넘어서서 우리문화 전반으로 폭넓게 자리 잡았다. 무가(巫家)에서는 무교적 의식일지언정 49재 형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고, 49재 때마다 불리우는 ‘회심곡’은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담아 부모에게 효도하고 적선공덕(積善功德)을 쌓으라는 서산대사의 가사에서 비롯되었지만 전국 어디를 가나 들을 수 있는 민간의 상여소리로도 자리를 잡았으니 우리문화 속에 깃든 불교문화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고려 말 문신 이첨(李詹)이 지은 ‘대이혜천부소(代李惠薦父疏)’의 한 구절을 보면서 이러한 49재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부처님은 나루터를 지키는 관리 같아서, 모든 이를 건네주려고 하지만 중생들은 등불에 달려드는 나비 같아서, 스스로 화(禍)를 구합니다. (중략)다만 부처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애달픈 정성을 펴볼 수 있으므로 사십구재의 날을 맞이하여 마음껏 향화(香火)를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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