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경찬의 불교문화 한 토막]
매주 목요일 불교문화에 대한 짧은 글을 올립니다.
77. 응진전(應眞殿), 나한전(羅漢殿)
< 경북 의성 고운사 나한전 >
응진전 또는 나한전은 부처님 제자 가운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성자를 모신 법당을 말합니다.
아라한(arhat)이란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 성자를 말합니다. 줄여서 나한이라고도 합니다.
더 배울 것이 없기 때문에 무학(無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다른 이로 하여금 공양 받을 만한 자격이 되기 때문에 응공(應供)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아라한은 진리와 상응하였기 때문에 응진(應眞)이라고 합니다.
즉, 아라한이란 일체의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응당 공양 받을 만한 성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라한을 모신 전각을 응진전 또는 나한전이라고 합니다.
< 경남 하동 쌍계사 나한전 >
보통 나한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마하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시고 그 좌우로 16나한 등을 모셔 영산회상을 나타냅니다.
물론, 삼존불 없이 나한만 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한의 숫자도 16나한, 18나한, 500나한 등이 있습니다.
< 경북 영주 성혈사 나한전 >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16인의 아라한에게 열반에 들지 말고 이 세상에 머물면서 불법을 수호하며 중생을 제도할 것을 당부합니다.
이에 근거하여 16나한을 모신다고 하는데, 부처님 당시 제자와 이후 아라한이 함께 합니다.
그리고 16아라한에 두 분의 아라한을 더하여 18나한으로 모시기도 합니다.
< 전북 완주 송광사 오백나한전 >
500나한은, 부처님께 교화되어 아라한이 된 500명의 도적이라 하기도 하고,
부처님 열반 후 경전을 결집한 부처님 제자 500아라한이라 하기도 하고,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 나오는 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한편, 1천 2백 5십 아라한을 모신 곳도 있는데, 이는 금강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 첫머리에 나오는 부처님 제자를 말합니다.
< 전북 부안 개암사 응진전 >
이처럼 나한은 부처님과 보살과 달리 그 모습은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 가운데 개구쟁이 같은 모습도 있고, 익살부리는 듯한 모습,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 등 표정이 다양합니다.
< 경북 안동 봉정사 영산암 >
우리 삶을 닮은 모습 때문인지,
나한을 차별하면 나한이 심통을 부린다는 속설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나한전을 들어가 보면, 16나한 앞에 각각 공양 올리는 그릇(쟁반)이 있거나,
또는 기도자가 나한 무릎마다 똑같이 동전을 올려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설마 성자이신데 질투하여 심통을 부리겠습니까?
그만큼 분별심을 갖지 말고 간절히 하라는 뜻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