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굿쟁이 김동언과
300인의 설장구 향연
‘사물놀이’나 ‘농악’으로도 불리는 ‘풍물굿’은, 우리 민족이 특별한 절기나 일상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기도하고 기원할 때 늘 함께했던 예술이자 ‘굿’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무당굿과 함께 공연과 놀거리, 제사치레 등도 모두 굿이라 칭했다.
음력 정월 초에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당산굿(당산제)을 풍물굿으로 진행한다. 정월 보름 경이 되면 풍물굿패는 가가호호 돌며 복을 빌어주고 액을 물리치는 지신밟기(마당밟이)를 한다. 삼월 삼짇날과 명절 마을 잔치에도 풍물굿을 울리며 중요한 마을 농사일에도 두레패가 나서서 풍물굿을 울린다. 남도 해안가에서는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풍물굿을 울리는데 군고 혹은 금고라고 한다. 그야말로 꽹과리, 징, 장구, 북이 생활 문화 곳곳에서 다양한 목적과 명칭으로 울렸던 것이 전통의 마을풍물굿이다.
농사꾼들의 두레풍물도 있지만 직업적으로 풍물굿을 연행한 이들도 있었으니 당골, 재인이나 신청걸궁패, 남사당패, 솟대쟁이패가 그들이다.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지 않았던 전통사회에서 전문 풍물굿패가 마을에 오면 구름떼 같은 사람들이 모여 굿을 구경했다고 한다. 이런 판에서 어렵사리 구경할 수 있는 전문가의 공연이 바로 설장구였다.
설장구는 장구를 매고 장단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손과 발로 춤을 추고 복잡한 동선을 그려내는 몸의 예술이다. 그린다는 것은 공간을 채우고 공간 속에서 시간을 쌓아간다는 의미이다. 즉 시간과 공간을 몸으로 순간순간 직조하고 엮어가면서 공명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리기 때문에 마음에 어떤 심상과 감상이 생긴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그리는 공연이자 굿이 바로 설장구이다.
남도장구 예술혼 계승 전국농악 설장구 대축제 기념 촬영 (출처: 필자 제공)
지난 5월 3일 담양공업고등학교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풍물굿쟁이, 장구잽이 공연자만 500명에 이르렀다. 바로 〈남도장구 예술혼 계승 전국 농악 설장구 대축제(총연출 이시영)〉”였다. 풍물굿의 대가 김동언(87세)의 설장구를 200명이 연행하였고, 그의 스승 김오채류 설장구를 연행한 장구잽이가 또 100여 명에 달했다. 이어서 고창농악, 구미무을농악, 호남여성농악, 진도북놀이와 사자춤패의 판굿 공연까지 종일 풍물굿이 울려퍼졌다. 아마 우리 전통공연예술 역사상 300인의 설장구는 처음인 듯하다.
설장구 연행하고 있는 김동언 (출처: 이시영 총연출)
이번 300인 설장구의 주인공 김동언은 1940년 생으로 담양 와우리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풍물굿판을 지킨 장구잽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디서든 풍물굿, 장구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홀린 듯이 풍물굿판을 따라갔다고 한다. 젊었을 적에는 일하던 호미, 낫이나 소도 팽개치고 굿판에 간 적도 많단다. 10세 무렵부터 장구 신동으로 옆 마을까지 이름이 났고 1957년 장구치는 모습이 영화 상영 전 ‘대한뉴스’에 비치기도 했다. 장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1960년대에는 호남창극단 활동을 하며 전국을 돌고 수많은 풍물굿쟁이 스승들과 교유했다. 이러한 예인들을 만나며 설장구 가락과 춤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려 지금은 김오채류 김동언제 설장구를 후세대에게 전승해 주고 있다.
비 예고가 있어서 5월 3일 설장구 대축제는 담양공업고등학교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되었다. 애초 계획된 담양 추성경기장에서 진행되었더라면 더 넓은 운동장에서 더 많은 관객과 함께 다채롭게 빛나는 복색을 한 300인의 설장구 향연이 펼쳐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비가 와도 상관없다. 전국에서 모인 풍물꾼들과 10대에서 80대까지 남녀노소 장구잽이들은 전체가 통일되면서도 각자 표현할 수 있는 대로 설장구 장단과 춤을 그려낸다.
300인의 장구잽이가 모여 섬세한 가락과 동작을 맞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공연 한 번을 위해 전국에서 온 이들은 얼마나 많은 땀과 열정을 쏟아내었을까? 김동언의 설장구는 일반 동호인 풍물인이 보기에 쉬운 듯 보이지만, 장단의 여유로움과 발디딤, 발놀음의 아랫놀음을 섬세하게 표현해야 한다. 담양에 모인 300인의 장구잽이는 바로 김동언이 평생 계승, 창조해 온 남도 설장구를 한 마음, 한 몸으로 연행한 것이다. 87세의 김동언은 청년의 기세와 함께 이들을 모두 포용하는 어른의 풍모가 느껴졌다.
설장구는 한국음악 장단을 연주하되 분명한 양식성과 운용 원리를 가지고 있는데 김동언의 설장구는 단순한 듯 보이는 가운데 명쾌하고 정확하게 그 양식과 원리를 따르고 있다. 설장구가 양식성을 가진다는 것은 휘모리·동살풀이·굿거리·자진모리 마당의 총 4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되 처음부터 끝까지 “내고 달고 맺고 풀고” 라는 장단의 원리를 보여준다. 또 각 악장은 2~5분 정도 소요되는데 마루라고 하는 하위 층위로 구성되고 역시 “내고 달고 맺고 풀고”의 원리로 연주한다.
“내고 달고 맺고 풀고”의 원리는 동양에서 계절의 순환을 바탕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음양이 교대하며 유행한다는 의미이다. 봄에 새싹이 나고 여름에 초목과 생명이 온갖 여건 속에서 몸집과 기운을 키워가고 가을에 그 기운이 모여 열매로 맺히고 겨울에는 내년의 새로운 생명을 키우기 위해 휴지기를 가지는 생명의 나고 죽는 순환적 흐름을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설장구 장단 연주를 할 때 처음에는 새싹이 올라오듯 소리를 끌어내고, 다음에는 리듬과 빠르기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변화들이 쌓여가다 소리가 극한점에 다다랐을 때 맺어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절정에 오른 분위기를 식히고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휴식을 취하듯 잠시 분위기를 식히고 긴장을 푸는 단계가 있는데, 이것을 ‘푼다’고 한다.
드디어 김동언의 설장구가 시작된다. 중앙무대에서 나발과 대고의 연주로 웅장한 판을 열어낸다. 200여 명의 장구잽이는 중앙에 김동언과 6인 그룹이 있고 양편으로 대략 100여 명씩 줄을 맞춰 섰다. “따 궁, 따 궁, 따 궁, 따 궁”을 치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하여 정사각형 대형을 만들고 다스름 연주에 들어간다. 다스름 장단를 치면서 상체와 고깔을 쓴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좌우세 동작을 함께 한다. 자리를 잡고 〈휘모리 마당〉으로 들어간다. “덩 덩 궁기닥궁 ” 휘모리 장단을 내고 다양한 변주 가락이 연주된다. 중간에는 대형 안에서 4명이 한 조를 이루어 원을 그리기도 하고 둘, 둘 호응도 한다.
다음은 〈동살풀이 마당〉이다. 동살풀이 장단은 호남풍물굿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흥겨운 가락이다. “덩 덩 덩덩 따따, 더더덩 더더덩 덩덩 따따, 덩기다따 구궁다구궁따” 이렇게 느린 4박 장단으로 치다가 “덩다다 궁따궁, 따구궁다 궁따궁” 빠른 2박으로 넘어왔다가 다시 느린 4박으로 오가며 발동작도 그에 따라 사뿐하다가 잰 걸음으로 오간다.
〈굿거리 마당〉은 여유있고 흐드러진 굿거리 장단에 맞춰 보는 이들을 춤으로 끌어들인다. “덩 덩 덩 덩 덩궁다다 궁다닥다다, 궁궁 따구 궁궁 따구...” 굿거리는 자진모리 2개가 이어져 있는데, 자진모리보다 2배 느린 속도로 연주한다. 그래서 변주 가락을 정말 많이 만들 수 있고 즉흥 연주도 가능하여 맛과 멋을 부리는 마당이다. 굿거리 후반에는 3박자 양산도 가락에 맞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리랑” 소리가 어우러지기도 한다.
마지막은 〈자진모리 마당〉이다. 자진모리(삼채)는 전통음악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많이 연주되는 역동적이고 빠른 장단이다. 장구잽이들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도는 연풍대를 보여준다. 장구를 치면서 휙 휙 원을 그린다. 마지막에는 김동언과 이시영 상쇠가 마당 가운데로 들어와 휘모리 장단에 맞춰 난장을 펼쳐낸다.
특별히 이번 공연에는 3개의 어린이, 청소년 단체가 참여했다. 예움전통연희단, 풍물천지 아리솔, 담양 봉산초등학교 학생들이다. 참으로 대견하고 또한 고마웠다. 87세 김동언의 풍물굿 인생이 이제 100년을 넘어 미래로 갈 수 있겠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예움전통연희단 (출처: 필자 제공)
인간성을 잃어가는, 아니 오히려 진정한 인간성이 무엇인가 찾아야 하는 AI시대 몸으로 표현하고 몸으로 느끼는 풍물굿과 설장구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취미 생활로 진입장벽이 낮고 포용력이 큰 풍물굿, 설장구는 비언어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K-컬쳐로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집필자 소개조춘영
풍물굿이 좋아 30년 오로지 풍물굿 현장과 풍물굿쟁이를 세상에 소개하고 글을 쓰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농악 이수자 심사위원과 공개발표회 심사위원을 하고 있다. 저서로 『풍물굿의 원리와 미학』, 『새나라로 가는 길굿』, 『하늘땅을 열어라 캥마주깽 놀아라』, 『주인주인 문여소, 복들어가요 문여소』, 『풍류대장에서 K-소리로』, 『몸으로 그리는 장단과 춤, 설장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