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의 이야기, 오늘과 만나다자신의 예술에 잠식당한 예술가들
브로드웨이 연출가이자 안무가, 제작자이자 할리우드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였던 미국의 전설적인 안무가 밥 포시(Bob Fosse, 1927~1987)라는 인물이 있다. 밥 포시는 1973년에 영화 〈Cabaret〉로 아카데미상 감독상, 뮤지컬 〈Pippin〉으로는 토니상 연출상과 안무상, TV로 방영된 라이자 미넬리(Liza May Minnelli)의 단독 레뷔(revue) 〈Liza with a Z〉로 에미상 감독상, 안무상, 프로듀서상을 수상했다. 영화, 무대, 티비 등 엔터테인 전반에 걸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상을 모두 한 해에 수상했고 이 트리플 크라운 기록은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어도 깨지지 않았다. 이 세 부문 모두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사람은 현재까지 마이클 니콜스(Mike Nichols) 단 한 명이고, 니콜스도 이 모든 상을 한 해에 받지는 않았다. 그 외 세 부문 모두 수상한 사람들은 배우들이고 그들 중 누구도 역시 한 해에 모두 수상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밥 포시는 이 모든 수상 작품이 겹치지도 않았다.
밥 포시(Bob Fosse)가 연출한 뮤지컬 〈시카고〉와 〈All That Jazz〉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오래 공연된 리바이벌 뮤지컬이자 지금도 한국에서 크게 사랑받고 있는 뮤지컬 〈시카고〉도 밥 포시의 연출작이다. 이런 미친 이력의 밥 포시의 생애는 일중독자 그 자체였다. 초, 중,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지만 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보더빌 배우들이었던 부모를 따라 전국을 떠돌며 무대 뒤에서, 그리고 무대 위에서 인생을 보냈다. 고등학교에 적을 두었을 때는 이미 프로페셔널 댄서로 활동했고, 학교는 사실상 무대였다. 밥 포시는 대학에 갈 생각은 아예 없었고 프로페셔널 댄서로 활동하면서 프레더릭 위버 발레 스쿨에서 발레를, 시카고 아카데미 오브 시어터 아츠에서 탭댄스를 배웠다. 발레스쿨을 다닐 때는 유일한 남학생이기도 했다. 발레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안무에 도입했던 진 켈리와 달리 밥 포시는 발레보다 거리의 춤을 더 선호했고 손짓 하나만으로도 안무의 의도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렇게 일에 미쳐 있던 그는 어느 날 심장마비를 겪는다. 이 첫 번째 심장마비는 그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죽음을 코앞에서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꽤 의미심장하게 인생의 항로를 변경하곤 한다. 병원의 침대 위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보다 가족, 마음의 평안을 추구하게 된다. 그야말로 “뭣이 중헌디”라는 질문 앞에서 일은 가장 마지막 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술 하는 사람들은 미련하게도 혹은 그것밖에는 할 줄 몰라서, 죽음을 예감하는 정도가 아니라 명확하게 인식하면서도 그 길로 가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영화 〈All That Jazz〉 중 ‘Bye Bye Life’의 한 장면
밥 포시는 자기파멸적인 인생을 〈All That Jazz〉라는 영화에 담았다. 보더빌 배우였던 부모를 따라 이 도시 저 도시를 전전했던 어린 시절을 비롯해 그가 사랑해서 결혼했던 여성들과 딸, 전 아내들, 지금의 애인과 수많은 바람의 대상들, 그리고 그의 일들…. 그가 실제로 첫 심장마비를 겪었을 때 할리우드 영화 하나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준비 중이었다. 실로 미친 일정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는데, 그의 영화 속에서 그 자신은 심장마비로 죽음에 이르며 마지막 순간에 그가 사랑했고 사랑받았고 상처 주었던 모든 이들 앞에서 커튼콜을 마치고 결국 화려하고 정신없었던 인생의 막을 내린다. 이 정신없이 이어지는 영화 속에서 수많은 뮤지컬 넘버들과 댄스 시퀀스가 지나가면서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고 그를 사로잡았던 뮤지컬에게 바치는 비극적인 연애편지이기도 하다.
〈All That Jazz〉의 주인공 조 기드온은 밥 포시 자신이다. 얇은 픽션의 베일만 걸쳤을 뿐 영화 속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밤새 편집했던 영화는 밥 포시의 영화 〈Lenny〉였고, 영화 속에서 투자자의 불안감을 조성했던 선정적이고 급진적인 안무와 스토리를 가진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그 유명한 명작 〈시카고〉였다. 죽음의 코앞에 이르렀다 돌아온 그는 그 경험을 2시간짜리 뮤지컬로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자신을 죽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고, 연출하고, 스스로 주연을 맡은 것이다. 마치 헤르만 헤세가 자전적인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쓰고 주인공을 죽게 한 뒤 그 자신을 주인공의 죽음을 딛고 부활하듯이 살아남았던 것처럼 밥 포시 역시 영화 속 자신의 죽음을 딛고 불사조처럼 살아남기를 기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정확하게 영화 속 기드온처럼, 아니, 그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절명했다.
영화 〈취화선〉 포스터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50년 전 미국에 〈All That Jazz〉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그와 비슷한 영화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대륙, 서로 다른 세기의 작품이지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 〈취화선〉은 조선시대 화가 장승업을 다루고 있지만, 임권택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이 영화가 조선시대 화가 장승업의 삶을 빌려 우회한 임권택 자신의 자전이라고 분석했다. 장승업의 입을 빌려 예술에 대해 말하는 대사들은 임권택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도 동시에 진실이다. 밥 포시와 임권택 두 감독 모두 자신보다 앞서 살았거나 자신이기도 한 창작자를 통해, 일에 몸을 갈아 넣는 삶의 불가피성을 고백한다.
두 영화 모두 감독 자신의 고백이고,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일 앞에서 자신을 소진시키다 끝내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타오르는 방식이 다르고, 꺼지는 방식이 다르며, 그 잿더미의 의미도 다르다. 조 기드온의 아침은 암페타민과 독한 탄산수로 시작한다. 거울 앞에서 “It's showtime!”을 외치고 하루를 시작한다. 약이 없으면 무대가 없고, 무대가 없으면 존재가 없다. 장승업에게는 술이 있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임금의 어명이 아니라 술 한 병이었다. 술 한 병이면 그의 손에 붓이 잡히고 붓이 살아있는 듯 움직였다. 흥에 취해야 신명이 났고, 신명이 나야 그림이 됐다. 두 사람 모두에게 가장 강한 자극을 주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다. 그 자신을 각성케 하는 것은 암페타민이냐 막걸리냐가 아니라, 그 자극이 향하는 방향에 있다.
“나는 그림이 좋아서 그리는 게 아니다. 세상이 미쳐서, 나라도 미쳐야 그릴 수밖에 없다.”
영화 취화선 중 장승업의 대사
하지만 그들이 멈추지 못하는 기제는 조금 다르다. 조 기드온이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자신의 선택이며 그 자신의 내면에 존재한다. 누구도 그에게 그토록 많은 일을 동시에 벌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투자자를 비롯한 그의 재능을 아끼는 이들은 그의 미친 일정을 걱정하며 그에게 일을 덜 하라며 말리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한 것처럼 대상을 바라본다. 그는 뮤지컬을 원한다. 섹스마저 자기 파괴적이다. 그에게는 섹스를 할 시간도 여력도 없지만 손에 잡히는 대로 여자를 취하는데, 그런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와 그럴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동시에 존재하고 거기서 오는 긴장을 에너지로 삼는다. 결국 태우는 것은 자신의 수명이다. 그에게 있어서 일이라는 것은 멈추면 죽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한다. 어떤 마약도 이 중독보다 더 지독하지는 못하다.
영화 〈취화선〉 포스터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장승업의 강박은 다른 곳에서 온다. 조선 말기, 나라가 기울고 외세가 들어오던 시대. 천민 출신으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사회적 틀 안에서 인정받을 수 없었던 인물. 그의 일중독은 개인의 쾌락이 아니라 시대의 압박에 대한 반응이다. 세상이 미쳤기 때문에 자신도 미쳐야 했고, 그 미침의 출구가 붓이었다. 기드온이 자발적으로 불 속에 뛰어든다면, 장승업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불 속에 이미 서 있었다. 장승업은 그림으로 술로 자신을 받아들이면서도 내치는 세상에 저항하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만 어디에도 그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 이 두 등장인물의 결말은 정해진 셈이다.
〈All That Jazz〉에서 죽음은 최후의 쇼다. 기드온은 죽음의 천사와 내내 대화하고, 마지막 무대를 직접 연출하며, 커튼콜처럼 퇴장한다. 심장마비조차 뮤지컬 넘버 속에 담긴다. 파시는 자신의 죽음을 사전에 영화로 써둔 셈이고, 현실의 파시는 그 예언대로 1987년 자신이 만든 공연의 개막일 저녁, 극장 근처 인도에서 전 아내 그웬 버돈이 보는 앞에서 쓰러져 죽었다. 즉사였다. 그야말로 죽음과의 교통사고인 듯이 그는 죽으며 쓰러졌다. 그러는 동안 그의 공연 〈시카고〉의 리바이벌 공연의 오프닝 공연 중이었다.
영화 〈취화선〉 포스터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장승업의 말로는 조 기디온과 정반대다. 한 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소멸이다. 죽음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 안개 같은 증발이다. 그는 어느 날 모두의 곁을 영원히 떠나는 길을 택한다. 시체도 없고, 커튼콜도 없으며, 박수도 없다. 화명이 절정에 달한 순간, 그림을 불태우고 사라진다. 그 불은 자기 파괴이자 정화이며 자유의 상징이었지만, 아무도 그 불을 보지 못했다. 임권택 감독이 자신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혹은 평가에 대해 가진 불안감이 취화선의 장승업의 마지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미국의 영화감독 밥 포시가 자기 자신을 소진하면서 스스로를 작품으로 남기는데 반해 한국 영화감독 임권택은 자아를 지우고 작품만 남긴다. 밥 포시가 불꽃이라면 임권택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발화는 같을지라도 두 감독이 자신을 보는 방식은 양 극단에 있다.
“The only salvation for me is work. (일만이 유일한 구원입니다)”
사망 1년 전 인터뷰에서 밥 포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1980)〉의 주인공 잭 토렌스의 소설은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일만 하고 놀지 않는 잭은 바보가 된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바보가 될 틈이 없었다. 그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안동에는 풋굿이라는 세시풍속이 있다. 여름이 절정인 백중을 전후로 날을 잡아 농사일을 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으며 일 대신 놀이를 하며 한숨 쉬어가는 풍속이다. 더운 나라가 한낮에는 일을 하지 않고 오수를 즐긴다면 풋굿이 절기로는 시에스타 역할을 한다. 속절없이 모두 태워버리는 예술가의 삶이란 영화 속의 일이라고는 해도, 하다못해 웹소설에서조차 좀비 세상에도 출근해서 출중하게 살아남는 주인공들이 인기인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마침 여름이 다가오고 있으니 자신만의 풋굿축제를 벌여볼 일이다. 일만 하고 놀지 않는 잭이 되지 않기 위해 ….
집필자 소개
이수진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 〈그리스〉, 〈넌센스〉, 〈에비타〉등을 번역하고,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등을 썼습니다. 〈뮤지컬 스토리〉, 〈밤새도록 뮤지컬〉 저자 / 더 뮤지컬 어워드 심사위원 역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