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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 나 자신을 돌보는 쉼

작성자황현주|작성시간26.06.22|조회수19 목록 댓글 0

망중한(忙中閑),
나 자신을 돌보는 쉼

한낮의 볕이 뜨거우니 여름이 된 게 실감 납니다. 24절기 중 여름의 절기는 입하(立夏), 소만(小滿), 망종(芒種), 하지(夏至), 소서(小暑), 대서(大暑)입니다. 음력으로는 4월 맹하(孟夏), 5월 중하(仲夏), 6월 계하(季夏)에 해당합니다. 중하의 하지는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이 가장 긴 날입니다. 볕이 긴 만큼 농작물의 생육이 활발해지고, 그만큼 농작물을 기르는 일손은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매우 바쁩니다.

이렇게 바쁜 날들의 한 중간인 음력 5월 5일에 단오(端午, 수릿날)라는 명절이 있습니다. 단오날 풍속을 살피다 보면 그날의 먹거리와 놀거리에서 “잠시 멈춤”, “쉼”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여름이란 계절 중에 단오가 있었다면, 긴 하루 중에는 새참 시간이 있습니다. 뙤약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나누는 들밥과 막걸리 한 잔, 그리고 여기에 걸치는 노래 한 자락에 즐거움을 얻어 피로를 씻고 다시 힘을 내게 되는 시간입니다. 이번 호에는 전통사회에서 가장 분주했던 어떤 여름날의 하루를 통해,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의 노동과 휴식, 삶의 균형, 나를 돌봄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정연학 교수님은 〈긴 하루에 찍는 짧은 쉼표〉에서 하지(夏至)라는 절기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전통사회가 그 절기에 얼마나 바쁘고 고되었는지 설명해 주시는 한편, 하지와 교차하는 단오(端午, 수릿날)의 다양한 세시 풍속을 소개해 주시면서 단오의 먹거리와 놀거리에 담긴 무사무탈의 기원을 짚어 주셨습니다. 하지 전후는 모내기, 파종, 수확 등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 날과 시간을 다투어 가며 일을 해야 하니 그만큼 노동의 시간이 길어지고 강도도 세어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음력 5월은 더위가 심할 수도 있고 전염병이 돌 수도 있어 병이 나기 쉽고, 가뭄이 들기도 하는 계절이라, 단오날의 먹거리, 놀거리, 입성에는 이것들을 예방하고 무사무탈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조춘영 박사님은 〈풍물굿쟁이 김동언과 300인의 설장구 향연〉에서 노동 중의 쉼이 이를 수 있는 또 다른 경지 곧 쉼이 예술이 되는 경지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 주셨습니다. 풍물굿은 절기나 일상에서 함께 해 온 쉼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이 풍물굿의 장단에 매료되어 풍물굿을 취미로 삼더니 이를 예술로 끌어 올린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김동언님과 그 분과 함께한 300인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펼쳤던 설장구 연행은 일상의 풍물굿 그 이상의 감동을 주는 공연이었습니다.

그러나 쉼이 예술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면 더 이상은 쉼이 아닙니다. 이수진 작가님은 〈선인의 이야기, 오늘과 만나다-자신의 예술에 잠식당한 예술가들〉에서 쉼에서 시작된 예술이 다시 쉼(소멸)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예술가들의 삶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밥 포시(Bob Fosse)와 그의 작품 속 인물 조 기드온, 임권택 감독과 그의 작품 속 인물이자 실존 인물이 장승업. 이들은 작품 속에 자신들을 불살랐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타오르는 방식이 다르고, 꺼지는 방식이 다르며 그 잿더미의 의미도 달랐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삶과 소멸이 담긴 작품에서는 감동과 함께 안타까움도 느껴집니다.

서은경 작가님의 〈독(獨)선생전-25화. 긴 하루〉에서는 벼루를 찾느라 바빴던 독선생의 하루를 통해 조선 시대 단오 풍속 중 단오선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이문영 작가님의 〈백이와 목금-단오 밤의 씨름대회〉에서는 단오날 백이와 목금이를 따라다니면서 단오날 풍속을 체험해 봅니다. 두 분 작가님의 작품 속에 묘사된 우리의 단오 풍속을 살펴보니, 이와 같은 풍속에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를 돌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통사회가 노동 공동체의 사회였고, 공동노동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런 노동 속의 쉼은 서로를 돌보는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장우순 선생님은 〈스토리테마파크를 쓰다-한국적 근대와 노동〉에서 두레나 품앗이 등에서 나타나는 전통사회의 공동노동은 동학이 지향한 평등의 세계라는 한국적 근대를 거쳐 오늘날 현대 한국 문화에 다양하게 계승되었다고 합니다.

전통사회와 현대 사회의 노동의 개념이나 의미가 달라졌다 해도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은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바쁘더라도 잠시 멈추고 나를 돌보는 마음, 나와 같이 했던 이들을 돌보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인들이 뙤약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들밥과 막걸리 한 잔, 노래 한 자락을 나누었던 그 마음처럼요.




편집자 소개조경란

재밌는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서강대에서 역사 공부를 하였습니다. 박사과정(한국사전공)을 수료한 후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계속 역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들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아까워서 드라마 역사 자문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참여했던 작품이 《세작-매혹된 자들》, 《붉은 단심》, 《옷소매 붉은 끝동》, 《녹두꽃》, 《장영실》, 《징비록》, 《정도전》 등 20여 편 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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