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희의 화가>로 잘 알려진 에드가르 드가는 프랑스 출신 인상파 화가이다. 경마장, 폴로 경기하는 모습, 무희들의 섬세한 동작과 인상을 순간의 필치로 잡아내는 노련한 시각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수없이 많이 남긴 그였지만 반면 고집불통에 독불장군, 어린 나이에 모친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여성을 혐오하는 괴팍하기 그지없는 작가로도 꽤나 명성을 떨친 인물이기도 했다. ( 미술 평론가 홍경한 )
어떤 사람이 드가에게 물었다. "당신 그림 속의 여자들은 왜 그렇게 다들 못 생겼습니까?" 이에 드가는 말했다. "원래 대부분의 여자가 못생겼다오. 그것도 몰랐소?!"
드가는 여인들이 좋아서, 발레를 사랑해서 특히 많이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내가 발레 하는 무희들을 많이 그리는 이유는 발레가 좋아서도 아니고 여인들에게 어떤 연민의 정을 느껴서도 아니다. 단지 그들의 움직임과 광선, 시각의 변화가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라고 회고 한 바 있을 정도로 여전히 여성에 대해선 냉담했다. ( 미술 평론가 홍경한 )
날카로운 관찰을 통한 순간적인 장면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포착하여 그려낸 그의 그림들은 풍경을 주로 그린 인상파들과는 달리 베르메르처럼 실내화를 주종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를 인상파 화가로 묶는 것에 대한 한계이기도 한데, 즉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감성을 담아내는 인상파의 성격과는 달리 그는 자신이 오랜 시간 보아 온 기억 속에 담긴 인상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했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 미술 평론가 홍경한 )
" 내가 죽으면 내가 그림을 얼마나 열심히 그렸는지 알게 될 거야.” “내 묘비엔 추도문 등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다만 나는 진정 데생을 사랑했다고 써줬으면 좋겠어. "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드가의 성격 때문에 그를 두고 다른 작가들은 ‘은둔하는 화가’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으며 알게 모르게 은연중 왕따까지 당한 인물로 유명하지만 자존심 하나만큼은 또한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 미술 평론가 홍경한 )
미술을 배우던 시절 잠시 에밀졸라나 마네, 세잔 등과 어울리며 인상파전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보였으나 괴팍한 성격처럼 그다지 많은 사람들과의 교분을 쌓지 않아 늘 고독하고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재능은 출중해 각양각색의 장르를 추구했고 비록 사람들을 싫어했지만 불굴의 의지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 미술 평론가 홍경한 )
30대 보불전쟁에 참여해 서서히 잃기 시작한 시력은 60세에 이르러 거의 앞을 못 볼 정도였지만 드가는 한순간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인상파 작가들이 밖에서 떠돌 무렵 죽는 순간까지 작업실을 떠나지 않았고, 색다른 예술적 기법을 실험하고 실천하는 데 혼신을 다했다. 르네상스, 사실주의. 자연주의, 낭만주의, 현대주의 등등 그 스펙트럼이 예사롭지 않게 넓은 작품들을 다수 제작했고 소묘라든가 판화, 유채화, 조각을 넘어 사진까지도 다루는, 그야말로 장르를 넘나드는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줬다. 이것은 그의 '끝없는 예술의 욕구'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미술 평론가 홍경한 )
여성들을 무척 다양하게(?)사랑했던 달리나 피카소와는 전혀 다른 인생 경로를 걸었던 에드가르 드가. 그는 결국 1917년 9월 27일 83세를 일기로 이 세상과 하직한다. 작고 당시까지도 그는 영원한 독신이었다. ( 미술 평론가 홍경한)
Onuki Taeko - Shall We Da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