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속도에 맞는 대책을 세우자
릴 찌낚시에서는 미끼가 대상어종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상층부에서 설치는 잡어를 뚫고 내려갈 수 있는 릴 찌낚시용 미끼는 사실상 없다.
이처럼 갯바위낚시에서 잡어는 피할 수 없는 난적이다. 단체로 출몰해 소란을 부릴 때는 대책없이 당하기 일쑤다.
그러나 지형지물이나 밑밥을 잘 이용하면 어느정도 성공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특히 잡어를 종류별로 나눠서 각각의 어종에 맞게 따돌리면 피해를 꽤 줄일 수 있다.
잡어를 종류별로 나눌 때 가장 유익한 기준은 유영속도다. 잡어를 빠른 종류와 느린 종류로 크게 나눈 다음 이들 어종의 성격을 잘 이용해 약점을 찌르면 의외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유영속도가 빠른 잡어로는 고등어와 전갱이가 대표적이다. 숭어나 벵에돔새끼는 중간 정도 속도로 다니는 잡어라고 할 수 있다. 속도가 느린 잡어로는 복어, 자리돔, 용치놀래기, 쥐치 등이 있다.
이처럼 각각의 어종을 서로 비슷한 성격끼리 나눠놓고, 각 어종별로 대책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전갱이
생긴 모양부터 빠르게 생긴 잡어다. 여름부터 시작해 가을에는 큰 무리를 지어다니면서 꾼들을 골탕먹인다. 그러나 수온이 내려가면 움직임이 둔해지며 깊은 곳으로 이동한다.
전갱이는 갯바위의 후미진 곳이나 얕은 곳으로는 잘 들어오지 않는 습성이 있다. 회유성 어종 특유의 습성상 먼바다의 큰 조류를 좋아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갱이가 설칠 때는 먼 포인트를 노리는 것만큼 무모한 짓이 없다. 특히 전갱이는 표층에서 바닥층까지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채비를 가라앉힌 다음 원하는 곳까지 흘려보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밑밥을 이용해 먼곳에 집결시킨 후 가까운 곳에 채비를 던져 대상어종을 노리는 방법만큼 효과적인 대책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전갱이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면 몇마리를 낚아 살려 두었다가 한꺼번에 놓아주는 방법이 있다. 이때 조금 잔인하기는 하지만 한쪽 눈에 상처를 입혀서 놓아주어야 한다. 대신 다른 부위에는 되도록 상처를 입히지 않아야 효과가 크다.
한쪽 눈이 실명된 전갱이는 빙글 빙글 원을 그리면서 멀리 달아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뒤를 이어 다른 놈들이 함께 달아난다. 전갱이가 군집성 어류라는 점을 이용한 방법이다.
한편 전갱이는 조류가 나빠지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재빨리 밑밥을 뿌리고 집중적으로 낚시를 해서 조과를 올리는 방법도 있다. 짧은 시간밖에 노릴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의외의 성과를 거둘 확률이 높다.
고등어
낚시터에서 만날 수 있는 잡어 가운데 가장 골치 아픈 종류다. 밑밥을 뿌리면 어디라도 따라오므로 처리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지형적인 조건이 따라줘야 한다는 문제는 있지만 홈통과 포말을 이용하면 고등어의 성화를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다.
주변에 홈통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채비를 던진다. 홈통 입구에 포말이 있는 곳이라면 더욱 좋다. 홈통이 좁고 긴 형태일수록 좋고, 포말이 많을수록 효과가 있다.
이런 지형에서 밑밥을 먼 곳에 많이 뿌리고 홈통에 아주 소량만 뿌리면 고등어의 성화를 덜 받으면서 낚시를 할 수 있다.
이때 채비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무거운 봉돌을 사용해도 관계없다. 고등어가 빨리 움직이는 미끼에 빨리 반응한다고 해도, 홈통 속의 포말이 미끼를 지켜주기 때문에 안전하게 바닥층까지 내려갈 확률이 높다.
숭어
숭어는 꾼에 따라서는 잡어라고 하지 않는 물고기다. 덩치가 있어 낚을 때 손맛이 제법이기 때문이다. 다른 고급어종이 없어 아쉬울 때는 횟감으로도 그런대로 쓸만하다.
하지만 벵에돔낚시 도중에는 숭어가 몰려오면 낚지 않는 게 좋다. 왜냐하면 숭어가 다른 잔챙이 잡어들을 쫓아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숭어는 반가운 잡어라고 할 수도 있다.
숭어가 반가운 잡어인 까닭에는 덩치는 커도 밑밥을 다먹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다. 밑밥이 바닥까지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은 밑밥효과를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의미와 같다.
숭어가 나타났을 때는 목줄을 굵게 하거나 봉돌을 무겁게 달아 빠르게 상층과 중층을 돌파해야 한다. 숭어가 다른 잡어를 쫓아주는 것은 숭어가 바늘에 달린 미끼를 먹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보기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만약 숭어떼가 너무 많아 도저히 낚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일단 한마리를 걸어 조금 힘싸움을 벌이다 일부러 목줄을 끊어 달아나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나머지 숭어도 혼비백산해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복어
종류에 따라 다소 덩치가 크고 동작이 빠른 놈도 있지만 대체로 유영속도가 느린 소형 잡어에 속한다. 또한 모양이 둥글둥글하게 생겨서 포말 속에서는 제대로 유영을 할 수 없다는 특징도 있다.
복어가 설친다는 느낌이 들 때는 채비를 포말 속에 넣고 그곳을 벗어나지 않게 하면서 낚시를 하면 된다. 밑밥은 철저하게 발밑에 뿌린다. 이렇게 하다가 대형어들이 다가오면 복어는 사라진게 된다. 발밑을 노려서 대상어를 모아 복어를 퇴치하는 것이다.
한편 그렇게 해도 복어가 계속 설친다면 그냥 그대로 낚시를 하는 수밖에 없다. 복어가 계속 설친다는 말은 아직 덩치가 큰 대상어들이 공략권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복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어차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다만 밑밥을 계속 뿌리다 보면 대상어가 들어올 수도 있으므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낚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리돔
생김새는 날렵해도 의외로 유영이 서툴다. 이처럼 수영 실력이 딸리다 보니 조류가 빠른 먼 곳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자리돔이 주로 발밑에 모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리돔은 일단 밑밥을 발밑에 뿌려 최대한 앞쪽에 모은 후, 먼곳을 노리는 방법이 최고다. 조류의 흐름이 비교적 빠른 곳에 포인트를 정하고, 발앞에 밑밥을 뿌려 자리돔을 묶어둔 후 먼곳을 노리도록 한다.
한편 자리돔은 입이 작은 물고기이므로 많은 밑밥을 뿌리면 미처 다 먹지 못한다. 따라서 채비를 멀리 던져서 빠르게 가라앉힌 다음 발앞으로 끌고 와서 대상어종을 노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밑밥 소모가 엄청나므로, 밑밥이 충분하게 남았을 경우가 아니면 시도하기 어렵다.
포말 속이나 수심 얕은 곳도 매우 싫어하므로 그런 성격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용치놀래기
잡어 중에서 비교적 예민한 어종이다. 수온이 올라갔을 때 활발한 입질을 하므로, 물고기들의 활성도를 짐작할 수 있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즉, 용치놀래기가 많이 설치면 수온이 올라갔다는 의미고, 이것은 낚고자 하는 대상어종의 활성도가 높아졌다는 신호로 봐도 된다는 것이다.
한편 용치놀래기는 자리돔이나 고등어처럼 대규모로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밑밥을 서너군데로 분산해 뿌려주고 자신이 원하는 포인트에 채비를 꾸준히 던지면 별 불편 없이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용치놀래기는 갯바위벽 부근의 바닥에서 많이 산다. 따라서 조금 먼 곳을 공략하면 성화가 확실히 줄어든다. 그래도 자꾸만 귀찮게 하면 찌밑수심을 올려 수중여의 위쪽 수심층을 공략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미끼가 수중여의 바닥이나 중간정도의 수심에 있을 때에 비해 확실히 덜 공격받는다.
잡어가 너무 많을 때는 무대책이 상책
여름에는 밑밥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수면까지 잡어들이 떠올라 경쟁적으로 먹어치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다. 온 바다가 가득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잡어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채비를 던질 때마다 다른 곳에 떨어지게 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크게 효과적이지는 못하다. 이때 밑밥을 뿌리는 곳과 채비를 던지는 곳에 시간차를 두면 종종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한곳에 집중적으로 밑밥을 뿌리면서 채비는 다른 곳에 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한참을 하다가 이번에는 다른 곳에 밑밥을 집중적으로 뿌리면서 채비를 또 다른 곳에 던지는 것이다.
어찌보면 아무 대책 없이 채비를 여기 저기 던지는 것 같지만, 이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또 이 방법이 의외로 효과를 발휘할 때도 많다.
이렇게 한참동안 밑밥과 채비 던지는 곳을 바꿔가며 낚시를 하다 보면, 잡어들이 미처 다 먹지 못한 밑밥이 바닥까지 가라앉으면서 그 일대 대상어종을 불러모으게 된다. 이렇게 계속 밑밥 던지는 곳과 채비 던지는 곳을 달리해주면, 결국에는 광범위한 포인트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미끼가 대상어종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점점 높아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