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신부님에게 여자는 마귀 사탄(?)

작성자율리타|작성시간19.06.15|조회수2,739 목록 댓글 0

주신 말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마태 5,27-32)

십수 년 전 성소국으로 소임 발령을 받았습니다.
여름 끝 무렵 이동인지라 얼마 안되어 그 다음해 신학교 지원자들 입시 면담을 해야 했습니다.
뭘 물어봐야 하나, 질문거리를 생각하는데 국장 신부님께서 지침을 주시는 것이죠.
이 국장 신부님이 제가 신학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국장이셨는지라 그야말로 베테랑이셨죠.
처음 몇 번은 당신이 질문하실 테니 잘 보았다가 중간부터는 제가 추가 질문을 하면 좋겠다고 하셨죠.
그렇게 면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서류를 꼼꼼하게 보고 지원자들을 파악해 놓았죠.
첫 번째 학생이 들어왔습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면담지를 포함해 서류를 통해 파악한 이 친구는 신학교에 적합한 잘 준비된 친구였죠.
국장님은 면담실에 들어온 친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툭 질문을 던집니다.
‘자네 스물 일곱이구만. 그래 대학도 다니고 했으니 여자 친구 사귀어 보았겠지?’
당황한 목소리이지만 나름 침착하게 그 친구가 대답합니다.
' 네, 신부님. 제가 삼년 전에 사제 성소를 느꼈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 미팅 몇 번 하고 잠깐 사귄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그래, 잠깐 사귄 친구가 있었구만. 그래 어떻게 사귀었나?’
‘네, 그냥 뭐 영화도 같이 보고 공원 같은데 데이트도 하고 그 정도 였습니다.’
신부님이 벌컥 큰 소리로 역정을 냅니다.
‘자네, 날 보고 그걸 믿으라는 건가?’
얼굴이 달아오른 그 친구가 아무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 합니다.
‘그래, 일단 나가보게’
옆에 있던 저도 이 상황을 어찌할 바 몰라 좌불안석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친구가 들어옵니다.
제가 검토한 바에 의하면 이 친구는 그야말로 성당-집-학교만 다니다 사제가 되겠다고 온 모범적이고 흠잡을 데 없는 친구입니다.
신부님이 질문합니다. 역시 지원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그래, 자네도 스물 몇 살이구만, 여자 친구 사귀어 봤겠지.’
이 친구는 아주 자신있게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신부님, 저는 어릴 적부터 신학교 갈려고 마음 먹고 있어서 한번도 여자 친구가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신부님은 더 화난 목소리로 쏘아 붙입니다.
‘자네, 그 나이 먹도록 여자 친구도 안 사귀어 보고 어디 모자라나!!’
아, 어쩌란 말입니까?

교회는 대충 70%는 여성 신자들이 차지합니다. 평일 오전 미사 같은 경우에는 95%가 자매님들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여성 신자들과 잘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타고 나기를 누구에게나 친절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현명한 이도 있지만 어떨 경우에는 참 어려워하기도 하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고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기도 하죠.
그런데 그러면 사목이 안됩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 중의 압권은 공동 번역 구약 성경 번역하신 분으로 널리 알려진 선종완 신부님 이야기인데,
신부님 시절만해도 여자는 마귀 사탄(?)이라고 철저하게 교육받던 시절이었다죠.
그래서 신학교 교수로 계실 때 학교에서 근무하는 여직원들이 저만치서 보이면 멀찌감치 피하셔서 돌아서 계셨답니다. 다 지나갈 때까지.
그게 정말 사실일까 싶지만 대충 그런 일이 있었다죠.
심지어는 본가에 가서 식사하실 때도 어머니께서 밥상을 차려 툇마루 문밖에 놓아두면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밥상을 방으로 들이지 않으셨다니 할 말 다 했죠.
그런데 너무 놀라운 것은 이 신부님께서 후에 수녀원을 창설하신 분이라는 것이죠.
경이로운 반전입니다.

복음을 잘 들으면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성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이렇게 개방적인 시대에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도저히 현실감이 없는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실제적 간음만이 아니라 음욕을 품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신다니 말입니다.
성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지만 워낙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기에 통제되지 않을 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성애자로 살기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오로지 ‘성’을 매개로 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아야함을 역설하신 것이죠.

남사친, 여사친 이런 말이 처음에는 좀 별스럽게 들렸지만 생각해보면 참 괜찮은 관계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연애나 결혼으로 묶이지 않더라도 그저 사람으로 대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꽤나 멋진 일 아닌가요.
왜 꼭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나요. 촌스럽게 ^^
그러니 혹시라도 누가 ‘저, 라파엘 신부님 여자 친구인데요’ 하더라도(걱정하지 마십시오. 없습니다) 놀라지 않으면 어떨까요.
뭐 그럴 수 있겠지요.
따지고 보면 복음 안의 예수님 주변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여인들이 적지 않게 있었으니 말입니다. 불량 신부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