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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상 풍조에 휩쓸려 가는 믿음을 조심하라 (히 3:12~14)

작성자바울|작성시간26.06.11|조회수27 목록 댓글 0

 

세상 풍조에 휩쓸려 가는 믿음을 조심하라

히브리서 3:12~14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제 3:7~19은 마음을 빼앗겨 구원에서 미끄러지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음을 경고합니다.

12~14절은 믿음 없는 악한 마음으로 인해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a 12[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 아피스티아 = 불신, 신뢰(의지)할 수 없음, 신용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마음]을 악한 마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악한 마음] = 카르디아 포네로스 = 나쁜 상태에 있는, 병든, 악한, 사악한 괴롭게 하고 슬픔을 초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완고(스클레뤼노 = 굳게하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마음이 완고이며 악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악한 마음을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 살인의 마음, 남을 헤치려는 마음, 남을 이용해 먹으려는 마음보다 더 악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완고한 마음이라고 권고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나 서기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면서도 자기들이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악한 것 중에 최고의 악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 자오 = 살다, 사는 것 초자연적인 존재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되고, 이삭이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에게도 오늘, 이삭에게도 오늘, 야곱에게도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는 어제도 오늘, 오늘도 오늘, 내일도 오늘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현재(오늘) 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이 말씀은 1절을 수식해주고 있습니다.

1절b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는 경고입니다.

 

[깊이 생각하라] = 통전 - 깊이, 넓이를 포함 – 너의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너의 마음의 중심 자리를, 너를 거룩하게 부르신 그리스도에게 내어드리라는 뜻입니다. - 2:1 들은 것

 

생각은 하는데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드리기는 하는데 깊이(전부) 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세상이 우리를 유혹하여 당기는 힘이 더 강해져서 구원에서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이 잠 7장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끌려가는 것입니다. - 코로나 때문에..

 

b 13[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앞에서 [믿음의 도리,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하나님을 온전히 여기고 무겁게 여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구원에서 미끄러진다]고, 신학적인 교리라는 틀을 세웠다면, 13절은 **[적용]이기 때문에 중요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말씀대로 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교회가 필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더 풍성한 기쁨으로 행할 수 있도록 권면하는 편지입니다.

 

[오직 오늘] = 세메론 = 현재 –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진짜 오늘, 지금, 이 순간, 이 하루를 말합니다.

2) 오늘 이 하루 = 일주일 = 한 달 = 일 년 = 10년 = 일상을 말합니다.

이것은 일상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생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상이 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과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는 삶이 매일매일,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차] = 세아우트 = 너 자신의, 너 자신에게라는 뜻입니다.

 

[권면] = 파라칼레오 = 초청하다, 권하다, 훈계하다, 격려하다, 자기 곁으로 부르다를 의미합니다. - 기도와 말씀으로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소환하고 말씀과 기도로 피차 권면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하기 위함입니다.

죄가 유혹하는 최고 목적은 우리의 마음을 딱딱하게 굳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워졌습니다.

그런데 새로워진 우리가 자꾸 옛것에 매이고,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그림자인 다른 것을 더 찾으면 마음을 빼앗기고, 완고해지는 것이니 매일, 일상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 동맥경화에 걸리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c 14[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휘포스타시스 = 본질, 실체)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메토코스 = 함께 나누는) 자가 되리라]

[확신한] = 끝까지 견고히 잡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말씀을 자꾸 반복하는 이유는 구원에서 미끄러지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떠내려가면 다시는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잡아라, 믿음을 붙잡아라, 신앙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히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성령 소멸 죄, 성령 훼방 죄는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끝까지, 견고하게, 말씀을 붙잡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 네 의지를 다해서, 성품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네 생명을 다해서..

 

[그리스도와 함께(복음과 함께 살아내는 자) 참여한(메토코스 = 함께 나누는) 자가 되리라] = 그 영광의 나라, 그 구원의 완성하는 자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아주시며 눈물을 닦아주시는 베마의 은혜 자리에 동참한 자가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11절과 반의적 키아즘이 됩니다.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죽음은 사람들에게 [하라는 248의 계명과 하지 말라는 365의 계명을 지켰느냐?]라고 묻지 않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혈통이냐? 너희가 영적 이스라엘이냐? 너희가 직분자들이냐?]라고 묻지 않습니다.

죽음은 [너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린 인생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느냐?]를 묻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들이 흔들고 있습니다.

그 집을 지으신 주인에게 [네가 뭔데 주인행세를 하며 우리의 근간을 흔드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십니다.

마 12:6,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성전보다 더 큰 이] = 성전법이 안식일 법에 우선하듯이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은 성전법 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 자체임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에 얽매여야 하는 의무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한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없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율법을 멍에에서 벗어나서, 멍에를 대신 져 주시는 그리스도께로 와서 쉼을 얻으라는 의미입니다.

 

막 2:27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 죄의 값을 자신의 생명으로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유 하게 하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 안식이 있기에 그리스도의 소유가 될 때 참 안식을 얻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신령한 안식이시므로 그 안에 모든 일은 안식일 준수가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은 안식일의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사실도 구원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심으로 성도들의 삶이 감사와 기쁨의 예배드림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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