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여래는 어떤 부처님인가?
약사여래는 동방의 정유리(淨琉璃)세계에 있는 부처님으로 중생을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구해주신다는 부처님이다.
과거 보살도를 행할 때 열두 가지 대원을 세운 공덕으로 정유리세계의 본존불로 계시는 부처님이다.
약사여래의 좌우에는 일광(日光) . 월광(月光) 두 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팔보살과 12신장이 주위에 위호하고 있다.
이들이 약사여래를 도와 9가지 횡사(九橫死)를 막아 준다고 한다.
아홉 가지 횡사란 『약사여래본원경』에 설해져 있는 내용으로 사람이 죽게 되는 아홉 가지 경우를 말한다.
① 병에 걸려 죽는 것.
② 법률(王法)에 걸려 죽는 것.
③ 사냥이나 주색잡기에 정신이 팔렸다 죽는 것.
④ 화재를 만나 불에 타 죽는 것.
⑤ 물에 빠져 죽는 것.
⑥ 맹수에 물려 죽는 것.
⑦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는 것.
⑧ 독약과 저주에 의해 죽는 것.
⑨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것.
『약사경』에 의하면 약사여래께서 세운 12대원의 본원 공덕과 그 위신력에 힘입은 십이신장의 외호로 인하여 약사여래의 명호와 경전을 수지, 독송하는 모든 중생이 일체 액난과 구횡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임종 직전에 약사여래 명호를 염송한 이는 사후에 약사팔보살의 영접을 받아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한다.
이 경우는 아미타불을 염송하는 경우와 같은 정토왕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약사경』의 한역본에는 다섯 가지가 있었다.
모두 약사여래를 본존으로 하는 경으로 유송(劉宋) 효무제(孝武帝) 때 혜간(慧簡)이 번역한 『약사유리광경(藥師琉璃光經)』과 수(隋)나라 때 달마급다(達磨笈多)가 번역한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 당나라 때 현장(玄奘)이 번역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 역시 당나라 때 의정(義淨)이 번역한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七佛本願功德經)』, 그리고 동진 때 백시리밀다라(帛尸梨密多羅)가 『관정경(灌頂經)』이란 이름으로 번역한 것이 있었으나 혜간의 역은 유실되었고 『관정경』은 밀교의 경전으로 취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달마급다역본이 널리 유통되었다.
약사여래에 대한 신앙을 줄여서 약사신앙이라 하는데 무엇보다도 질병을 다스려 수명을 연장하려는 현세적 기복성격이 강하다.
물론 개인적인 면에서는 질병구제와 수명연장 등이 우선이지만 사회적인 면에서는 국가적인 재난이나 전쟁, 천재지변 등으로부터의 구제되어 나라와 사회의 안녕이 보장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다.
인간의 질병이나 상처 등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독, 불안 등의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을 얻고자 하는 일차적인 소망이 약사신앙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12대원 가운데에 특히 약사신앙의 중심이 되는 것은 제 6원과 제 7원이다.
“신체가 열등하고 감각기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불구거나 몸에 갖가지 병이 있는 중생이 나의 명호를 들으면 모두 단정한 용모와 지혜를 얻고 모든 감각기관이 원만해지고 질병이 없어지도록 하겠다는 6번 째 원과 질병에 걸려서 구제할 방도가 없고 의사와 약도 없으며 친구와 가족도 없는 빈궁하고 괴로운 중생이 나의 명호를 들으면 모든 병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며 가족과 권속이 갖추어져 모든 것이 풍족하게 되게 하겠다는 7번 째 원이 있어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 약사신앙은 중국에서는 달마급다가 『약사경』을 616년에 번역한 이후부터 생기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650년경부터 성행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국가 위난을 없애기 위해 약사여래도가 조성되었으며 약사탱화와 약사십이신장도 등이 그려졌다.
조선조에 와서는 배불정책으로 불교가 침체되기도 했지만 명종 때 문정왕후가 아들 명종의 무병장수를 빌기 위하여 1565년에 양주 회암사에서 무차대회를 열고 약사신앙에 관한 400개의 탱화를 조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조선조 태종 때인 1408년에는 태종이 태상왕인 태조 이성계의 병환을 낳게 하기 위해 덕수궁 곁에 장막을 치고 스님 100명을 청하여 약사정근을 하게 했다고 태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 때에도 1422년 세종이 신하들로 하여금 흥천사(興天寺)와 승가사(僧伽寺)에서는 약사기도를, 개경사(開慶寺)에서는 관음기도를 하게 했다고 세종실록에는 전한다.
이때도 아버지 태종을 위해 하였다고 한다.
또 약사진언이라 하는 짧은 진언이 있다.
“옴 호로 호로 전타리 마증기 사바하” 이다.
- 지안(志安)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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