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남산속 금오신화에 빠지다 ]
몇일 동안 복더위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려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제 많은비가 왔다. 창밖을 보니 파란 하늘에 양떼구름과 뭉게 구름들이 한데 어울려 한폭의 그림같다.
우리나라 산중에 같은 이름들이 참 많다.
서울에 남산이 있고 오늘가는 경주남산이 그러하다. 경주 남산의 북쪽주봉을 가리켜 금오산이라고 한다. 금빛자라를 닮은 산이라뜻이다. "오" 는 전설속의 큰 자라를 의미하며, 산의 형상이 자라가 엎드린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미의 금오산과 혼동하는데,
구미 금오산은 "황금빛 까마귀"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구미와 경주의 금오산의 한자를 다르게 쓰고 있다.
경주 남산은 신라시대에 매우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으며 수많은 불상,탑,절터가 남아 있어
신라의 불교성지 또는 '노천 발물관' 불린다.
전국에 수많은 명산을 다녔지만 오늘처럼
마음 가짐을 정숙히 하기는 처음이다.
초입서 "음주하시면 안 되세요" 란 말이 얼마
안가 '아! 이래서' 이해가 갔다.
머리없는 불상과 절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 내린비로 숲의 향기는 맑고 깨끗하여 폐속까지 시원하다. 남산에는 돌부처들이 참 많은데 일부는 나라가 어려울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특히 신라 멸망 직전이나 전쟁시기 돌부처의 얼굴에 물방울이 맺힌 것을 사람들이 '부처가 나라의 운명을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오르다가 돌부처앞에 공손히 놓여있는 약과와 토마토를 보니
어릴때 오빠들 일이 생각났다.
먹을 것이 귀햇던 시절 뒷산 선황당 큰 소나무 아래에는 가끔씩 제사상 차려졌다.
"그 것을 먹으면 큰 벌을 받으니 근처가 가면 안 된다"고 부모님 말씀하셨다. 오빠들과 친구들은 배가 고프니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가져와 먹곤 했다. 저 기억으로는
아무도 아프거나 탈 나지 않았던것 같다.
신라 이후 남산이 완전히 불교화 되면서 바위마다 부처가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계곡마다 수행하는 승려와 부처의 흔적들이
참 많다. 용장계곡(용장골) 용장사곡 삼층석탑은 1435년~1493년 김시습이 이곳에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썼던 곳이다.
용장사 부근에 은거하면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금오산에서 지은 새로운 이야기)
소설 제목이 금오신화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단편 소설집으로
평가된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31세에 이곳 용정사에 들어와 7년간 은적암에 머물며 금오신화를 집필했다.
용장 계곡에 발을 담그고 올려다본 삼층석탑은 하늘 끝에 닿아 있는것 처럼
보여 참 신비롭다. 용장마을일대에서는
지금도 김시습과 금오신화를 기리는
행사와 기념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지난 4월에 용장마을서 친구들과 2박3일 숙박했는데.. 김시습과 금오신화에
대해 공부했더라면 기념관을 둘러봤을텐데 시간이 남아 쑥과 달래를
캐면 시간 낭비한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금오신화에 대해 더 집중 해서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시간에 여유를 두고 다음을 기약하며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