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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으로 세상보기

나쁜 놈은 왜 착한 사람보다 강한 걸까?/김선주

작성자김수영1|작성시간26.06.05|조회수28 목록 댓글 1

잘 놀았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학교라는 근대적 폭력 기관이 엄마를 포획하여 자식을 학대하도록 마법을 걸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잘 놀았습니다. 원래 아이들은 노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인간은 놀기 위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두 개의 창조 기사가 있습니다. 1장에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며 장대한 우주 서사를 써내려 갑니다. “~이 있으라 하니, ~이 있었더라(יְהִי-예히. 있으라) ~ וַיְהִי-와예히. 그리고 있었다)”의 구문이 반복되며 장대한 우주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장대한 말놀이가 낳은 창조물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의 또 다른 창조 기사는 하나님이 진흙을 빚어 동물과 새를 만듭니다. 마치 찰흙을 짓이기고 뭉개고 두드려서 조형물을 만드는, 인간 아이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 역시 놀이하는 하나님을 표상합니다. 최초의 인간(아담)을 만들었을 때 그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생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놀이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고 그를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와(이브)입니다.

 

‘배필’이라는 말은 남자에게 종속된 ‘여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서로 마주보는 동등한 상대를 의미합니다. ‘배필’이라고 번역한 말의 히브리어 원문 (כְּנֶגְדּוֹ-케네게도)는 ‘그와 마주본다’는 뜻입니다. 최초의 인간이 놀이를 위한 짝을 필요로 했고, 하나님은 그 짝을 선물함으로써 놀이의 규범과 양식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태는 근본적으로 놀이에 있으며 인간은 노는 일을 천부적 재능으로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놀게 돼 있습니다.

 

이처럼 놀이는 인간의 원초적인 존재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의 책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는 모든 문화의 심연에 인간의 놀이 본능이 잠재해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술, 종교, 법, 정치, 전쟁 같은 문명과 문화를 인간의 놀이 정신이 확장된 현상으로 본 것입니다. 인간사의 모든 일들은 놀이의 연장이고 확장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놀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심각하고 비장한 사태마저도 가벼워지게 됩니다. 놀이하는 사람은 그것이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자기 인생이 끝장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지면 다음 게임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놀이 정신은 삶과 죽음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됩니다. 이승도 저승도 놀이의 연장선 위에서 바라보게 되면 세계를 그리 비극적으로 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유년과 청소년기에 잘 놀아본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확률이 높은 이유입니다. 건강과 행복은 사회적 지위나 재물이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놀이의 정신으로 세계와 실존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가져다줍니다. 오늘 열심히 지어놓은 두꺼비 집이 무너지더라도 내일 다시 지으면 된다는 생각, 어제 나와 한 편이었던 친구가 오늘은 다른 편이 되었다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 마음, 평소에 관계가 좋지 않았던 친구와 한편이 됐을 때 느껴지는 동질감과 관계 회복력, 어떤 경우에도 그것으로 내 인생이 끝장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놀이의 정신이야 말로 오늘을 사는 힘입니다.

 

하지만 착한 사람은 쉽게 패배주의에 빠지고 무너집니다.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들은 타자의 것을 빼앗아가면서 자기 이(利)를 취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악해지지 않기 위해서 이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복은 내적인 양심의 복일 뿐 현실은 아닙니다.

 

반대로 악한 놈들이 강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악한 놈들은 자기 이익(利益)을 위해 타자를 짓밟고 인간성을 더럽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번 게임에서 진다고 다음 게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불법과 부정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재산을 불리거나 힘을 얻을수록 놀이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돈이 됐든 권력이 됐든 잃어버린 것을 복구할 수 있는 놀이의 밑천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밑천이 아니라 그들의 세계관입니다. 악한 놈들은 이 세계를 거대한 체스판으로 봅니다.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놀이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놈들이 끈질기고 강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악한 놈들이 이길까 봐 걱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선거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이 세계가 끝장나진 않습니다. 우린 다시 주사위를 던지거나 팀을 정비해서 다음 놀이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상황을 즐기면 됩니다. 즐기는 자, 놀이하는 자가 최후 승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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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송순영 | 작성시간 26.06.06 착한 사람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악해지지 않기 위해서 이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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