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바람이 몹시 불었던 며칠이었습니다. 삼전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부를 나눠달라는 요구를 넘어 일정 비율을 제도화해 달라는 요구를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파업에 들어간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습니다. 간신히 파업은 피했지만 앙금은 그대로 남아 여러 갈등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주주들은 협상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문제가 일단락 된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삼성전자는 한 회사처럼 보이지만 한 회사가 아니라 수많은 관련회사들이 있고,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이익은 삼성전자 종업원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익 배분으로 인한 사회적인 파장 역시 삼성전자만의 몫이 아니고 전 국민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이익은 어떻게 배분이 되어야 할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실 이번 협상으로 삼전 직원 한 사람 당 육억 원 정도가 배당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연봉 일 억을 부러워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할 의지 자체가 사라질 것입니다. 정상으로 알고 다니던 삼전 이외의 회사원들도 힘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소득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삶에의 의지마저 앗아갈 수 있는 사건입니다.
정부 인사 한 사람의 삼전의 이익이 국민 전체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발언이 있자, 국힘을 비롯해 보수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시장의 자유’를 내세우며 이 정부가 좌파 빨갱이라는 비난을 하였습니다. 특히 장동혁 대표의 표독스러운 표정은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그가 목사의 아들이며 장로라는 기사도 본 것 같습니다. 하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형교회들 역시 ‘시장의 자유’를 외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러면서 빨갱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공부를 좀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이라도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나누는 행위를 무조건 공산주의로 몰아붙이는 행태는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엥겔스는 칼 마르크스의 지적 동료로서 마르크스주의를 정립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그리스도교의 역사상 초기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교가 혁명적인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쓰면서 그는 그리스도교를 그 시대의 노동자 계급의 사회주의 운동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현대 노동자 계급운동과 뚜렷한 일치점을 가지고 있었다. 후자와 같이 그리스도교도 원래 억압받는 사람들의 저항운동이었다. 그것은 처음에 노예들과 해방된 노예, 그리고 모든 권리를 빼앗긴 가난한 사람들, 로마에 의해 정복당하고 산산이 흩어진 사람들의 종교로서 출현했었다.”-A. F. 맥거번, 『마르크시즘과 기독교』(한울, 1992), 349쪽
마르크스는 유대인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도인으로 세례를 받았고, 그 역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의 원형을 성서에서 발견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묘사된 초기교회를 그는 “원시 공산사회”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성서를 제대로 보았습니다. 초기교회는 단순히 원시 공산사회가 아니라 완전한 공산사회입니다.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사도 4,32-35)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잘 읽어보십시오. 말이 안 되는 내용입니다. 공동의 소유라니요?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 교회에 갖다 바치다니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사고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인가요?
제가 하느님 나라의 관점으로 복음을 해석하는 내용들을 글로 쓰면 목사들이 나서서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들은 공동의 소유가 공산주의라면서 결국 사회를 하향평준화로 이끌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제가 하느님 나라가 모두가 평등한 나라라는 말을 하면 목사들은 그것이 질서를 허무는 것으로서 불의임과 동시에 불공평한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목사의 아들이라는 장동혁 같은 이가 온화한 표정이 아니라 마귀 같은 표정을 지으며 기업의 이익을 온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를 넘어 한심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쉬운 것은 개인주의와 시장의 자유가 복음으로 치환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기교회가 묘사된 사도행전의 말씀을 인용하고 또 인용하게 됩니다.
공산주의와 복음이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과 폭력입니다. 공산주의는 폭력으로 혁명을 이루어내지만 복음은 사랑으로 혁명을 이루어냅니다. 공산주의는 강제로 혁명을 이루어내지만 복음은 자발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아는 복음은 무엇이며 그들이 알고 있는 하느님 나라는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이 장엄한 선언이 들리지 않습니까? 역사 속에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사회는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기교회는 바로 그런 사회가 “여기 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런 사회인 교회를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경륜에 참여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사회를 불의하고 불공평한 곳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는 도대체 어떤 그리스도교입니까?
삼성전자의 이번 사건은 AI가 이루어낼 미래사회의 예고편입니다. 미래는 AI를 주도하는 회사가 모든 것을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살 길조차 없고, AI를 장악한 자본은 모든 부를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이익을 낼 것이며 그것이 삼전과 마찬가지로 종업원의 몫이 되거나 주주들만의 몫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로 인해 붕괴하게 될 것입니다. 이 현상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지옥을 초래할 것입니다.
새삼 복음이 희망이며, 그리스도인들이 희망이라는 사실이 부각됩니다. 그런데 정작 복음을 가졌다는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주의를 내세우고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혐오와 배제를 일삼는다면 미래사회는 공멸을 향해 치닫는 지옥이 될 것입니다. 바야흐로 지옥이 목전에 다다랐습니다. 이번 삼전의 스토리는 지옥으로 가는 맘몬의 대서사의 시작입니다. 자본으로 인한 불평등과 쓰레기와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생태파괴와 그로 인한 기후재앙은 맘몬의 삼위일체입니다.
그 유일한 해결책은 공산주의보다 더 지독한 공산주의인 하나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