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다
2026년 3월 20일 공소청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었다. 공소청법은 다음 날인 21일 국회를 통과한 중대범죄수사청법(이하 ‘중수청법’)과 함께 오는 10월 2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로써 1949년 12월 20일 제정된 검찰청법을 통해 창설된 검찰청은 7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검찰청은 왜 공소청으로 이름이 바뀌는 처지가 되었고,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변화하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공소청은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할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의 단초를 찾자면 우리 사회에서 검찰개혁이 언제, 어떤 이유로 제기되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공소청법과 중수청법 모두 검찰개혁 추진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검찰개혁 추진의 계기와 그 경과를 보면, 검찰조직이 권력기관으로 자리 잡고 그 권력을 재생산해 온 메커니즘과 이를 가능케 한 역사적·제도적 조건, 검찰이 정치·경제·행정 권력과 맺어온 복합적인 상호의존 관계, 제도적 불균형과 민주적 통제의 취약성이 한국사회의 정의·책임·공정의 구조를 왜곡해 온 방식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정권유지 수단으로서의 검찰
우리 사회에서 검찰 문제가 국가적 의제로 등장한 시기는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야당(당시 민주당)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촉구하며 특별검사제 도입, 재정신청 대상 범죄 확대 등을 주장한 것도 이때이고, 시민단체이던 참여연대, 민변, 경실련 등이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일명 ‘고비처’ 등을 주장한 시기도 이때이다.
검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줄곧 있어 왔던 기관인데, 왜 이 시기에 검찰 문제가 국가적 의제가 되었을까? 박정희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군부정권은 중정(이후 안기부)을 정점으로 군은 보안사(이후 기무사), 민간은 정보·대공 경찰에 의한 사찰을 중요한 통치 수단으로 삼았다. 공포정치의 시기였다. 32년 만의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는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전격 숙청하는 한편, 전격적인 금융실명제 실시 등을 통하여 사회의 민주화를 증진시켰다.
이와 같은 통치 지형의 근본적 변화에 따라 검찰의 위상과 역할이 질적으로 변모했다. 물론, 과거에도 검찰은 냉전질서 속에서 형성된 반공에 기반한 기득권체제 수호의 한 축이었다. 그러나 군부독재 체제에서 권력의 핵심은 군과 정보기구였고, 검찰은 권력에 종속된 통치기구였다. 따라서 검찰은 법집행기관이라기보다 정권유지수단에 가까웠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서울지검 최환 검사가 보인 기개는 역설적으로 당시 검찰의 정권종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공포정치를 떠받치던 정보·사찰 기구가 퇴장했다. 그런데 그 권력의 공백을 차지한 것이 바로 검찰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김영삼 정부 이후 검찰은 정권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갖게 된다. 특히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집권하는 경우, 보수 진영의 정당, 언론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검찰의 상대적 독립성은 극대화했다. 2019년 검찰의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 및 이후 윤석열의 집권과정은 민주당 정부에서 검찰의 상대적 독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브레이크 없는 검찰공화국
이렇게 정권으로부터의 상대적 독립성을 갖게 되었을 때 검찰권이 오남용되지 않고 검찰제도 본래 취지대로 검찰권이 행사되게 하려면, 외적으로 검찰권 행사에 대한 법적, 사회적 통제 시스템, 내적으로는 검찰 스스로의 자정능력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검찰은 내·외부적 통제나 스스로의 절제 모두 빈약했다.
검찰은 2021년 이전까지 우리 형사사법제도 하에서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과 함께 경찰 수사 지휘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 가운데 기소권과 영장청구권은 검찰이 사실상 독점하는 권한이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거대한 권한이었다. 이러한 막강한 권한에 비하여 그 견제와 통제는 상대적으로 형편없었다. 정부조직법상 검찰은 법무부 외청이었지만, 검사들이 법무부를 지배, 장악하고, 검사 출신이 법무부 장관이 됨으로써 법무부의 검찰 감독규정은 민주당 집권시기를 제외하고는 사문화되었다. 검찰개혁의 의제 중 하나로 법무부 탈검찰화 문제가 제기된 까닭이다. 경찰 등 모든 수사기관을 지배, 장악한 결과 행정부 내에서 검찰을 견제할 세력은 전무하다시피했다. 유일하게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현실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법원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검찰의 수사, 기소에 대한 공소권 남용을 인정하는 예가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재정신청 인용률이 1% 미만이라는 점은 법원의 소극적인 검찰 견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검찰 스스로의 권한 절제, 자정능력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권과 야합하여 살아 있는 권력에는 춘풍이고, 죽은 권력에는 추상같은 선택적 수사의 문제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표적수사, 기획수사의 문제, 언론에 단독 기사를 흘려 여론을 움직이고, 그리하여 기소되기도 전에 이미 사회적 유죄로 낙인찍는 모습도 새삼스럽지 않다. 검찰 스스로의 조직 이익만을 생각하는 모습에서 비롯된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은 민주공화국을 유린, 위협하는 검찰의 실체를 적확하게 드러낸다. 검찰은 ‘법과 원칙’, ‘공정과 정의’, ‘형평’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런 가치를 가장 앞장서서 훼손시키는 집단은 단언컨대, 검찰이었다.
검찰 구성원의 문제도 심각했다. 검사들이 ‘영감님’으로 불리면서 건설업자 등 스폰서를 두는 것을 당연한 현상으로 치부해 온 건 얼마 전까지도 있었던 일이다.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의 법조비리는 특히 악질적이다. 고위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선임계도 내지 않고 전화 변론을 통하여 구속영장 발부를 저지한 다음 현금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세금 신고 한 푼 하지 않는 사례는 법조인이라면 대부분 아는 얘기들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직이든 퇴직이든, 검사들의 비위나 범죄가 제대로 단죄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2013년경 나라를 흔들었던 김학의 원주 별장 동영상 사건에서 나타나는 고위 검사 수십 명의 성상납 비위는 그 자체로도 충격이었지만, 김학의 등 문제의 별장에 드나들면서 성상납을 받았던 검사들 모두 사법적 단죄를 피한 것은 더더욱 충격이었다.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울산 고래고기 사건 등 검사 또는 검사 전관들이 개입된 부패사건이 줄줄이 이어졌다.
검찰 개혁은 이제 시작이다
이러한 검찰 및 검찰 전관들의 추악한 실체와 그 부도덕함을 견제, 단죄할 사회적 시스템의 결여는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검찰의 부도덕함을 지적하면서 정부 최초로 검찰개혁을 국정과제로 추진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이에 이은 노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는 국민들 대부분에게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공수처 설립 등 개혁조치와 이재명 정부의 공소청법 및 중수청법 시행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구체적인 결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공소청법으로 검찰의 문제는 근절될 것인가? 자신할 수 없다. 검찰 문제의 핵심은 검사들이 스스로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이 아니라, 선민의식을 갖고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막강한 권한을 오남용한다는 점에 있다. 폭탄을 해체할 때 우선 뇌관을 제거해야 하는 것처럼, 검사들의 선민의식을 제거해야 했다. 그 요체는 선민의식의 근거로 악용된 제도를 혁파하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해, 검찰의 3단 조직 구조(대검 – 고검 – 지검)를 해체하여 여타 공무원 조직과 같은 2단 구조로 전환하고, 마치 법관과 같은 지위로 오인될 수 있는 신분 규정을 손질하여 일반 공무원과 같이 국가공무원법을 적용받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공소청법은 이 두 가지에 있어서 본질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니 검찰개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보완수사권 인정을 둘러싼 다음 국면이 남아 있다. 나아가 검사들이 선민의식을 갖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현상이 지속되는 한 검찰개혁은 계속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한테서 나오기 때문이다. 검사는 정의롭되, 공무원이어야 한다.
[필자소개]
2007년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민변, 참여연대 활동을 통해 공익 활동을 병행했다. 이때 검찰개혁, 법원개혁, 국가보안법 문제, 소수자 문제 등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09년 촛불집회 당시 구속된 시위 참여자에 대한 법정 변론의 한 대목을 《중앙일보》가 오인용하여 내가 “시위할 때 쇠 파이프 들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고 기사화하였다. 법정싸움 끝에 오보임을 인정받았다. 이 일은 언론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7년 문재인정부가 출범하자 공무원(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되었다. 2019년 8월 민정비서관으로 승진했다. 민정수석실에서 일하는 내내 검찰개혁, 국가정보원 개혁 등 업무에 종사했다. 대통령을 보필한다는 영예로운 마음으로 일했지만, 몸은 힘들고, 업무는 과중했다. 2019년 조국 전 장관 수사 이후는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검찰개혁을 추진한 대가로 검찰의 표적이 되어 2021년 7월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현직 대통령의 비서 타이틀을 달고 법관 앞에 서는 것은 헌법과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기소 소식을 들은 즉시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하였다. 2025년 6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되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나 자신이 피의자, 피고인이 된 경험은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형사 사법절차의 엄중함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두 딸의 아빠이다. 이 소개 글에서 두 딸의 분량은 미미하지만, 내 삶에서 두 딸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 반대다. 두 딸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도 검찰개혁 등 공적분야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