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헌정 질서는 대체로 정교분리의 원칙을 기초로 한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이를 분명히 규정한다. “제20조 제2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이러한 정교분리의 원칙은 국가가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공식적인 국교로 지정할 수 없다는 것, 종교가 국가의 입법이나 행정 등 정치적 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는 것, 국가 권력이 종교의 교리나 내면적 생활을 간섭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모든 국민은 내적인 신앙의 자유와 외적인 종교 행위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 등을 의미한다.
정교분리를 최초로 성문화한 1791년 미국의 수정헌법은 국가가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거나 종교적 실천을 강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권력으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는 원칙에서 출발했다. “1조: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특정한 종교의 자유로운 활동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이는 국가가 종교를 공적 영역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가의 부당한 개입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정치와 종교(기독교)의 관계는 이러한 원칙이 일관되게 구현되지 못한 채 복합적이고 때로는 왜곡된 모습으로 전개되어 왔다. 일제강점기의 한국교회는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저항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저항을 자제하도록 가르쳤고, 심지어 신사참배를 국가 의례로 해석하며 승인하기도 했다. 해방 직후 한국교회는 미군정과의 친화적 관계 속에서 일정 부분 특권을 누리며 이승만 정권을 창출했고, 초대 대통령이 교회 장로라는 이유 하나로 선거 부정에 동참했다.
군사독재 시기에는 상당수 교회가 독재 권력의 부정, 부패, 불의에 대해서 침묵했고, 처음에는 ‘대통령을 위한 기도회’로, 나중에는 이름을 바꾼 ‘국가조찬기도회’로 독재 권력을 지지하며 지원했다. 반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저항했던 소수 진보적인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는 교회의 본분을 외면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정치 목사’ 또는 ‘정치꾼’이라 비난했다. 오늘날에도 한국교회는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서 의심을 자아낸다. 특정 정권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고, 다른 정권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태도를 반복하는 모습은 교회의 공공성과 예언자적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예수는 말씀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 우리는 흔히 이 말씀을 정교분리의 근거로 삼지만, 이 말씀처럼 오해를 많이 일으킨 것도 없다. 다수 해석자는 예수께서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보이면서 세상의 권력자와 국가가 요구하는 사회적 의무와 세금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형상이 각인된 인간은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 이 둘을 동시에 실천해야 한다는 것으로 가르쳤다고 이해한다. 여기서 확대 해석하는 경우는 정치인의 영역은 정치인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모든 종교인은 종교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예수 가르침의 무게 중심은 가이사의 요구와 부과된 세금에 대해 당연히 이행할 줄 알면서 하나님의 것에 대해서 외면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 바치라”는 뒷부분에 두었던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가이사의 권력과 부귀 자체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면, 국가 권력 역시 절대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대교회의 고백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사도 바울은 국가 권력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이는 악한 국가 권력이나 독재자의 부당한 명령까지 무조건 복종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국가의 선한 기능을 존중하며, 무정부주의적 폭동을 피하라는 평화적이고 윤리적인 권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개신교인이었던 한 국무총리는 이 구절만을 인용해 독재권력자라도 하나님께서 세운 권력이니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독재자 옹호론의 근거로 왜곡했다. 이처럼 성경의 특정 구절 하나만 읽으면, 본질적 의미를 왜곡해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4절의 “(권세를 잡은 자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라는 것과 6절의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라는 내용까지 함께 읽어야, 비로소 모든 권력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선을 이행하는 책임있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에스겔서 3장, 특히 17절에서 19절을 보면, 권력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무엇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이 말씀에서 인자, 즉 하나님의 파수꾼은 불의한 사회 구조와 권력의 남용에 대해 경고하는 적극적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불의를 깨우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불의한 폭력에 협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일 수 없고, 약자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정의 앞에서 언제나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악인이 돌이키지 않을지라도 파수꾼은 악인을 경고하며 정의를 추구하고, 약자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거나 방기하는 파수꾼에게 “악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는 매우 엄중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정치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정치는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정치를 통해 국민은 집단적 의사를 결정하고, 그 결정을 평화롭고 절차적으로 수행한다. 정치는 권력의 행사를 제도화하는 동시에 그 권력이 자의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감시, 견제하며 시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통합하여 사회적인 결속력을 유지하게 한다. 정치는 기후 위기, 인구 구조 변화, 기술 발전 등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다. 단기적 이익이 아닌 공공의 미래를 위한 결정은 정치 시스템이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건 역시 정치적 결정을 통해 형성된다.
그러므로 정치의 수준과 질에 따라서 국민이 누리는 자유, 평등, 복지, 참여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정치 영역은 단순한 권력 투쟁의 장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라는 근본 질문에 답하는 삶 자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주시민은 이렇게나 중요한 정치 영역을 무시하거나 방치할 수 없다. 우리 가운데 정치를 더럽다며 혐오하거나 기피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치가 더러운 것이 아니라 더러운 정치권력자들이 정치를 더럽힌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특히 보수주의자들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침묵하거나 독재자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부끄러운 전력이 있고,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교계 소수 인사들의 저항을 비판하고 부정한 어리석은 전력이 있다. 최근에 그들은 신천지, 통일교 등 사이비 이단과 더불어 윤석열 정권의 창출에 적극적으로 공헌했고, 윤 대통령이 정치적 궁지에 몰릴 때는 환대했으며, 심지어 탄핵되고 파면되는 과정에서는 그를 옹호하고 지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회개한 적도 없이 새로 등장한 이재명 정권에 대해서는 혐오와 비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형국이다. “정치에 개입하고 불법 자금으로 의심스러운 활동을 하는 종교단체는 해산할 수 있도록 검토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서 ‘종교 탄압’을 운운하며 반기를 들고 있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전면 철회하거나 무기한 보류하라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 직전 윤석열 정권에서는 ‘예언자적인 파수꾼’의 역할을 외면해 놓고, 현재 이재명 정권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창조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하는 그들을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파수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와 국가 권력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행동해야 할까. 무엇보다 민주시민의 일원이자 ‘하나님의 파수꾼’으로서 정치와 국가 권력의 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시해야 할 것이고, 정치 본래의 역할을 왜곡하는 더러운 권력자들을 감시해야 할 것이며,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우리 국가를 견인해야 할 것이다. 6.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거가 실시될 때, ‘하나님의 파수꾼’으로서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교인들을 동원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동성애나 차별금지법 같은 편협한 이슈만을 강조하기보다 생명, 기후 환경, 공동선과 같은 보다 넓은 가치들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거짓 정보와 혐오를 확대 재생산하기보다 진실을 분별하고, 후보자의 인격과 정책의 실효성을 적극 평가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차별받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바라보며 그들에게 가장 친화적인 후보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권력의 편이 아니라, 언제나 진리의 편에 서고자 할 때, 진영의 논리를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파수꾼’으로서 자기 책임을 다하고자 할 때, 그때만이 비로소 소금과 빛이 되어 세상에 살맛나는 기쁨과 희망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