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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

사막에 흐르는 거센 물줄기/필립 얀시

작성자김수영|작성시간16.07.21|조회수78 목록 댓글 0

척박한 중동에 희망을 심으려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야 하나

 

 

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에 누가 만일 이 자리에 서서 로마제국의 붕괴와 갈릴리 촌사람이 시작한 신흥종교의 승리를 예언했다면 그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5세기 후, 누가 만일 중동에 서서 이라크와 시리아와 터키 같은 곳들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던 기독교의 몰락을 예언했다면 그 사람도 똑같은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 우리는 아무도 엿듣지 않기를 바라며 이렇게 회교 국가 뒷마당에서 은밀히 모이고 있습니다. 방문객으로서 저는 기독교의 근원지이자 한때 중심지였던 이 지역이 왜 그 신앙에 가장 저항하는 곳이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자끄 엘륄에게서 그 답의 단서 하나를 찾았습니다. 그는 현대세계를 둘러보다가 하나의 역설적인 경향에 주목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사회에 스며들면 복음에 어긋나는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간혹 저는 그의 이론을 시험해보려고 여행 중에 현지인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미국,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입니까?” 대답은 늘 부^힘^퇴폐, 이 세 가지 중 하나입니다.

부. 세계 인구의 6%밖에 되지 않는 미국이 세계 경제생산량의 25%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 금융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군사력. 언론에서 늘 상기시켜주듯이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입니다. 미국의 군사 예산은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을 비롯해 다음 23개국의 예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습니다.

퇴폐. 대다수 외국인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미국에 대한 개념을 얻으며, 그들 눈에 할리우드 영화는 섹스와 범죄에 찌들어 있습니다.

옳든 그르든, 사람들이 떠올리는 미국의 특징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적어도 제가 실시하는 비과학적 조사에서는 그렇습니다. 셋 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본에 어긋나는 것들입니다. 그분의 삶의 특징은 가난ㆍ자기희생ㆍ깨끗함이지요. 그러니 회교 신자들에게 기독교가 영 알쏭달쏭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이상과 반대되는 모습을 사회 전반에 만들어내는 강력한 신앙이 곧 기독교이니 말입니다.

이쪽에 주둔한 미군은 그 사실을 잘 압니다. 두 번의 걸프전에서 싸우는 동안 그들은 주둔국의 엄격한 회교법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플레이보이>와 술 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한 회교도는 제게 <베이워치 신드롬>을 말하더군요. 해외에 수출된 가장 인기 있는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수십 년 전의 <댈러스>를 제친 섹시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끌리고 있습니다. 집 바깥에서는 여성의 무릎이나 심지어 얼굴도 본 적이 없는 회교도 청년에게 미국 퇴폐문화가 어떻게 다가올지 상상해보십시오.”

미국인은 미국인대로, 회교도 무리가 ‘악한 사탄의 죽음’을 요구하면서 미국 지도자들의 형상을 만들어 불태우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합니다. 대다수 미국인은 그런 장면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모릅니다. ‘악한 사탄’이라는 호칭이 특히 신경을 곤두서게 합니다. 우리는 미국을 이를테면 유럽보다 훨씬 독실한 기독교 국가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적어도 우리는 아직 교회에 가지 않습니까. 그런 우리에게 어떻게 사탄 운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을 삶의 모본으로 받아들이는 헌신된 그리스도인과 그냥 기독교 유산을 받은 나라에 살아가는 ‘문화적 그리스도인’의 차이를 여러분은 다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이웃인 회교도들은 대부분 그 차이를 모릅니다(비슷하게, 많은 미국인도 회교도는 모두 과격파이고 테러리스트인 줄 압니다). 회교도들이 혼란에 빠지는 한 가지 이유는, 회교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종교에 대한 전체주의적 접근과 기독교 사회의 자유방임적 접근과 상관이 있다고 봅니다.

몇 년 전에 한 무슬림 남성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코란을 다 읽었는데 그 안에 무슬림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소수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은 없더군요. 신약성경도 다 읽었는데 그 안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다수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도 없었습니다.” 두 신앙의 핵심적 차이를 짚어낸 말입니다. 이슬람 사회는 종교ㆍ문화ㆍ법률ㆍ정치를 하나로 묶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 법정에서는 풋볼경기장에서 기도할 때 종교색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공공기념물에 십계명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법리를 따지는데 반해 여기서는 항공사들도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시간을 방송으로 알려줍니다. 또 나이지리아 같은 다종교 국가들에서도 회교 인구가 많아지면 이슬람은 전 국민에게 샤리아Shariah[이슬람 종교법]를 강요하려 듭니다.

상명하달식 접근은 확실히 효율적이긴 합니다. 한때 이슬람은 유럽 대부분과 중동을 비롯해 모든 기독교 영토의 4분의 3을 정복했습니다. 스페인의 종교재판이나 칼뱅의 제네바, 크롬웰의 영국,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등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강제성 도덕을 실험한 적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퍽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서구 기독교는 정교 분리와 종교 자유 쪽으로 갔습니다.

무슬림들이 서구에 대해 느끼는 불안은 다분히 우리가 자유를 매우 강조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자유란 언제나 위험한 것이지요.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유가 퇴폐로 이어지기 일쑤인 미국보다는 차라리 빈틈없이 감시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자식을 키우겠다고 말입니다. 이집트의 한 그리스도인은 부부라는 증거를 보이지 않는 한, 아내와 함께 호텔에 투숙할 수 없다고 제게 그러더군요. 그도 그의 아내도 그런 정책을 고맙게 여깁니다. 가정을 강조하는 이슬람교에서 우리도 배울 게 있습니다. 서구에 이주해 온 중동 사람들은 우리가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노부모를 양로원에 보내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이점도 있겠지만, 여러분은 기독교에 적대적인 문화 속의 소수로서 매일 기독교 신앙을 실천해야 하는 도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에 충실하면서 이웃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다행히 여러분이 따를 좋은 모델이 있습니다. 이 지역 출신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최근에 저는 로드니 스타크의 역사 연구서 「기독교의 기원」The Rise of Christianity을 읽었습니다. 종교사회학자인 스타크는 수천 명의 추종자로 시작해 3세기 만에 로마제국 인구의 절반에 이를 만큼 성장한 초기 기독교운동의 성공을 연구했습니다. 적대적인 환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처신했을까요? 단순히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했습니다. 주류문화에 역행해 노예를 인간으로 대하거나 해방시켜주었으며, 여성을 지도자의 지위로 높였습니다. 동네에 전염병이 돌면 뒤에 남아 환자들을 간호했습니다. 낙태나 영아살해 같은 관행에는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박해를 받으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사회의 안전망이 해체되었을 때는 교회가 나섰습니다. 심지어 기독교를 비판하던 한 이교도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을 “한 식구처럼” 사랑했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기적으로, 여러분이 이주 노동자들 속에서 하고 있는 긍휼의 사역은 이 중동사회에 석유탐사와 건축사업에 쏟아 붓는 수십억 달러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 지역 소외층에게 교육과 의료 혜택을 헌신적으로 베푼 초창기 선교사들이 장기적으로 미친 영향을 저는 보았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과 사랑의 동기로 하는 일의 차이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일부 미국인들은 미국의 성공을 국민총생산이나 막강한 군사력, 국제적 우위성 같은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다릅니다. 짓밟힌 사람들을 얼마나 잘 보살피고 원수를 사랑하는지 등이 성공의 기준이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가난한 자ㆍ병든 자ㆍ배고픈 자ㆍ외국인ㆍ죄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미국 하면 무기나 부나 ‘베이워치 신드롬’이 아니라 ‘예수 신드롬’이 연상된다면, 미국을 보는 세상의 눈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피해자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할 때

저는 정신과 의사이자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인 고 스캇 펙이 주관한 주말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유대교인 10명, 기독교인 10명, 회교도 10명이 모였지요.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우선 공동체 정신의 함양에 힘써야 하며, 각 사안에 대한 견해차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그 다음 순서라는 것이 펙의 생각이었습니다. 외교의 통상적 접근과는 정반대지요. 유감스럽게도, 그 주말에 유대교인들과 회교도들 사이의 갈등이 부각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옆에서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참석자 중에 팔레스타인의 저명한 국회의원이며 인권운동가이자 학자인 하난 아쉬라위 박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말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4중으로 소외계층입니다. 남성 지배적인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여성입니다. 회교가 주류인 사회에서 기독교인입니다. 국가 없는 민족 팔레스타인인입니다. 그리고 여기 미국에서는 인종적^문화적으로 소수자입니다.”

그 모임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프랑스 철학자요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의 글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현대에는 ‘소외된’ 사람이 도덕적 권위를 얻는다는 사실에 지라르는 매료되었습니다. 예컨대, 그 모임에서 아쉬라위 박사는 그러한 소개로 존중을 얻었습니다. 지라르는 20세기에 해방운동의 행렬-노예제 철폐ㆍ여성 참정권ㆍ민권ㆍ동물 권리ㆍ동성애자 권리ㆍ여성 권리ㆍ소수집단 권리ㆍ인권 운동 등-이 속력을 높였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지라르를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옛 문서를 읽으면 이에 비견될 선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기록한 것은 승자들이지 소외계층이 아니며, 바빌론 신화나 그리스 신화가 칭송하는 것은 강력한 영웅이지 가련한 희생자들이 아닙니다. 더 연구해보니,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이야기가 당시의 모든 영웅담과 반대라는 사실은 지라르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빈곤과 불명예를 택하셨고, 유아기를 피난민으로 보내셨고, 가혹한 정권 아래서 소수인종으로 사셨고, 죄수로 죽으셨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가난하고 압제받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 편이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음이 역사에 새로운 구도를 들여왔다고 지라르는 결론지었습니다. 피해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영웅이 되는 구도이지요. 지라르는 기독교로 회심하여, 신앙 없는 동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예수께서 무죄한 피해자로 죽으실 때, 지라르의 제자가 말한 “세상에서 가장 광범위한 역사적 혁명, 즉 피해자를 향한 공감의 출현”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서구세계 어디서나 피해자는 도덕적 고지를 점합니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고아나 탈레반 난민, 추방된 팔레스타인인 등의 곤경이 언론에 어떻게 비쳐지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지라르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역사에 새로운 물줄기, 불의를 무너뜨리는 물줄기를 텄다고 역설합니다. 노예제도의 경우처럼 그 물줄기가 압제의 견고한 강둑을 허무는 데 수세기가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해방의 물줄기는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물줄기에 합류할 때도 있고 강둑에 서서 지켜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복음은 해방의 효과를 냅니다. 기독교의 영향을 별로 경험하지 못한 사회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성과 장애인, 소수자와 인권운동가 모두가 도덕적 힘을 얻는 출처는 하나님이 피해자 편이 되셨을 때 십자가에서 나온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런 권리를 옹호하는 ‘정치적 공정성’ 운동이 종종 기독교의 적으로 자처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아이러니가 아닙니다. 사실은 그런 운동을 가능하게 한 토대 자체가 복음에서 유래했는데 말이지요. 교회가 한때 폭력과 노예제도,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보였다 해서 교회를 단죄하는 사람들도 실은 복음의 원리를 가지고 단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떤 사안에 대해 잘못된 쪽에 설 때조차 복음은 문화에 계속 누룩 역할을 합니다.


불의의 피해자들 곁에 다가가 그들을 돕는 여러분을 통해 그 물줄기가 이곳 중동에도 흐르고 있음을 저는 보았습니다. 이 지역의 일부 국가에는 성별ㆍ인종ㆍ종교에 기초한 서열이 존재합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만큼이나 경직된 서열이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모본을 통해 여성과 외국인, 하인이나 타인종을 대하는 다른 방식을 이웃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분은 우리를 고정관념으로 판단하는 이 지역에 기독교의 새 얼굴도 보여주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포위당한 소수자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가 되풀이해 보여주듯이, 예수님의 정신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 소수자들은 강력한 전복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이 지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지금도 다시 벌어질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돌을 치우는 손길

1970년대 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실화로 말을 맺고자 합니다. 러시아의 점거나 탈레반 정권이나 나토의 개입이 있기 전입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교회가 현지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을 돕는 일을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물론 교회에 갈 수 없었습니다(훗날 더 엄격한 정부는 이마저 금지하고 교회를 부수고는, ‘지하교회’ 소문을 들은 게 있어 불도저로 땅에 큰 구덩이를 팠습니다).

렌이라는 제 친구는 청소년 뮤지컬 팀을 구성해 중동 국가들을 순회했습니다. 약간 두려웠지만, 일정을 연장해 카불 시내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초청도 수락했습니다. 렌은 청소년들에게 대사를 정확히 적게 하고는 직접 검열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여기는 엄격한 회교 국가다. 말을 잘못했다가 감옥에 갈 수도 있고, 동시에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대본을 정확히 외우고, 공연 중에 감히 대본에서 벗어난 대사는 하지 마라.” 청소년들은 작은 실수에 따를 수 있는 엄청난 결과에 대한 얘기를 눈이 휘둥그레져 들었습니다.

그 경고를 마음에 담고, 뮤지컬팀은 UN의 지원을 받는 어느 학교에서, 그리고 한 식당에서 민속음악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카불에서 공식 공연이 열리던 밤에는 1천 명에 가까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장내를 가득 메웠고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문을 열어놓고 노래를 들었습니다.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기타를 내려놓고 즉석에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가장 좋은 친구 예수라는 분과 그분이 제 삶에 이루신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네요.” 렌은 손가락으로 목을 그어 보이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미친 듯이 보냈습니다. 그 아이는 렌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자기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자세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렌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저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뒤따를 결과를 알잖아요. 그래서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앉아 목에 칼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문화부 장관이 일어나 무대로 걸어와 소감을 밝힌 겁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나라에 온 미국 젊은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대부분이 마약을 찾아서 온, 히피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의 메시지를 들으니 어찌나 감격스러운지요! 여러분은 아프가니스탄 젊은이들이 장차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일정을 연장해달라고 부탁하고 싶군요. 그래서 모든 대학과 학생들을 방문해주시고 카불 라디오에서도 똑같은 메시지를 전해주십시오. 제가 성사시키겠습니다.’”

렌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뮤지컬팀을 소집했습니다. “너희도 다 들었지? 물론 우리는 비행기표를 바꾸고 체류를 연장한다.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라니까 한 단어도 바꾸면 안 된다!”


이후 며칠간 여러 번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매번 공연이 끝나면 아프가니스탄 청소년들이 몰려들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예수에 더해 더 말해달라, 우리는 코란을 통해 그를 알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말하는데 그게 뭔지 설명해줄 수 있나, 신앙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나…. 함께 기도해달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전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일정을 성황리에 마친 청소년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J. 크리스티 윌슨 박사를 만났습니다. 이란에서 선교사 부모 밑에 태어난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동양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어 22년간 아프가니스탄에 살면서 공립고등학교 교장을 지내며 왕세자와 외교관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또 공동체기독교교회를 이끌며 카불에 시각장애인 학교도 세웠습니다.

윌슨은 뮤지컬팀을 특이한 관광지로 데려갔는데, ‘이교도’가 묻힐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 유일의 묘지였습니다. 그는 풍상에 패인 오래된 첫 번째 묘비로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여기서 30년간 일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개종자는 한 명도 없었다. 바로 옆의 이 무덤에 묻힌 사람이 그를 이어받았고 자녀들과 함께 여기서 죽었다. 그는 25년간 노력한 끝에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그리스도인에게 세례를 주었지.” 아이들과 묘비 사이를 걸으면서 그는 초기 선교사들과 그들의 최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마지막 묘비까지 온 그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30년 동안 한 사람이 돌을 치웠다. 그가 한 일은 그게 다였다. 돌만 치웠다. 그러다 그의 후임이 와서 고랑만 팠다. 다시 다른 이가 와서 씨를 뿌렸고 딴 사람은 물을 주었지. 그래서 지금 어린 너희가 수확을 거두고 있는 거다.”

렌은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자기들이 목격한 놀라운 영적 각성이 수십 년에 걸친 신실한 봉사의 마지막 걸음일 뿐임을 한껏 들떠 있던 미국 청소년들이 불현듯 깨닫고 있었습니다. ”

이 적대적인 지역에서 일하며 기도하는 여러분은 때로 자신이 돌을 치우고 고랑을 파는 일밖에 하는 게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수확은 오직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중동의 미래가 어찌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곳에 오는 대다수 서구인들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 때문에 옵니다. 군사장비를 들여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원을 개발하고 달러를 투자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소명이 다릅니다. 2천 년 전에 터진 해방의 물줄기에 합류해 예수님의 정신을 알리는 것이지요. 물론 이 은유는 르네 지라르에게서만 온 게 아니라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라고 말한 성경의 예언자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 물줄기가 이곳에서 세차게 불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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