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6학년인 첫째 아이가 4학년 때의 일이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고, 마스크 없이 등교할 수 있어 새학기 시작을 기다기며 설레던 시기였는데, 우리 아이는 마스크 벗는 것도 싫다 하고, 학습과 사회성도 조금 느린 것은 아닌가..조심히 관찰하던 시기였다. 어찌어찌 새학기가 시작하고, 4학년 1학기 부모참여수업에 갔는데, 선생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며, 친구들과 모둠활동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마스크에 숨어 눈만 깜빡이는 모습과 그런 아이를 선생님께서 특별히 독려하고 챙겨주시던 모습에 불안이 치솟아 올랐다.
그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학교생활 잘 하고 있구나 짐작만 하고 있다 ‘내 생각과 달랐군. 잘 지내고 있는게 아니었네!’라고 판단하고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날 저녁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조그만 사건을 트집잡아 아이를 달달 볶다가 서로 언성을 높이며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다, 결국 아이는 울면서 잠이 들었다. 나 역시 답답한 속을 태우며 잠을 설쳤다.
이전에도 아이는 평일 저녁 하루에 한두 장씩 푸는 수학문제로 실랑이를 하며 ‘학교에서도 공부하는데, 왜 집에서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라며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날 그동안 억눌러 놓았던 불안과 분노가 함께 폭발하며 소중하고 귀여운 우리 집 첫째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답답한 며칠이 지나갔다. 아이가 하교 후 울면서 전화를 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떨어졌는데 등이 아프니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척추 압박골절로 12주 진단을 받았고, 그날 이후 4주 동안 등교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먹고, 싸는 것을 포함한 모든 활동을 누워서 해야 했다. 기나길고 힘든 한 달이었지만, 그 한 달 동안 아이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마음 깊이 깨달았다. 긴 시간을 불평없이 견디며 잘 누워 지내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했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사랑스러운 첫째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걱정거리였던 아이의 학업과 학교생활, 교우관계 등을 내려놓고 아이와 다시 친해져야겠다 다짐했다. 예전처럼 별거 아닌 것에 같이 웃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행복해지고 싶었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니 잔소리를 하지 않아야 했고, 그러려면 집에서 하던 아이와의 공부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렇게 아이와 관계는 좋아졌지만, 마음 한켠에는 우리 아이 공부는 그냥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학교수업은 잘 따라가는 걸까 하는 걱정과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염려를 표현하는 것이 아이와의 관계를 또 망가뜨릴까 두려워 아직까지는 잘 묻어 간직하고 있었다.
<학교 공부를 내 것으로 만드는 진짜 공부-초등편> 구옥정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나의 막역했던 불안과 걱정이 무엇인지 선명해졌다. 조금 천천히 가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아이가 지금 교육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학교 교육만으로 아이는 충분히 배우고, 배운 것이 제대로 평가되고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의 초등 교육이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추어 아주 잘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진단평가, 단원평가, 수행평가 등 다양한 평가 방법에 따라 아이들의 배움의 과정을 촘촘히 잘 확인하고 있고, 학기말 통지표의 모호하다고 생각했던 구절들이 선명해지며 불안이 가라앉았다. 가끔씩 아이가 가져오는 난해한 질문들과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흘려들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마음을 담아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요즘부모연구소의 강좌는 내용이 알차고 유익한 걸 알기에, 강의 홍보를 보자마자 신청했다. 그런데, 내 마음 한편에 ‘공부는 아이 몫인데, 내가 강의를 듣는 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마음에 강의를 듣기 싫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고 계신 것처럼, 강의 막바지에 선생님께서 “집에서 키우는 공부력” 부분에서 부모의 딜레마를 이야기해주시면서 우리가 진짜로 바꾸고 통제할 수 있는 “부모의 반응”과 “가정의 환경”을 바꾸면 언젠가 아이가 변한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라고 하셨다. 걱정 어린 말로 아이까지 근심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긍적적인 말로 바꾸어 아이에게 관심을 보여야겠다. 조금 느리더라도 내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고, 진심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