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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미술 특강 (7) 카라바조, 바로크의 선구자

작성자김수영1|작성시간26.06.12|조회수24 목록 댓글 0

▲ 오타비오 레오니(1578~1630), 《카라바조의 초상화》 (c1621, 분필) ⓒ마루셀리아나 도서관, 피렌체

 

바로크 미술은 16세기 후반 유럽의 격변기에 발생한 예술운동으로서 그 창시자를 누구 한 사람을 지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신앙을 옹호하고 교리를 전파하며 감동을 주라’는 트렌트공의회 요구에 가장 부합한 화가는 카라바조(1571~1610)가 분명한 만큼 그를 바로크의 선구자로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 당시 교회의 요구와 희망이 강했던 만큼 초기 바로크 미술은 이탈리아가 구심점이 되었다.

 

카라바조 외에도 안니발레 카라치(1560~1609), 귀도 레니(1575~1642), 베르니니(1598~1680)가 이탈리아와 로마에서 활동하였고, 로마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이 막강한 에스파냐와 프랑스에서는 벨라스케스(1599~1660)와 무리요(1617~1682)와 조르주 드 라 투르(1593~1652) 등이 활동하였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강한 플랑드르와 영국에서는 이탈리아나 에스파냐의 결과 다른 바로크 미술이 렘브란트(1606~1669)와 페르메이르(1632~1675)와 안토니 반 다이크(1599~1641) 등에 의하여 펼쳐졌다.

 

카라바조는 바로크 미술의 출발점이자 방향을 결정지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등장은 단순한 화풍의 변화가 아니라 종교개혁으로 위기를 겪고 있던 로마가톨릭교회가 간절히 기다리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예술적 메시아인 셈이다. 그는 ‘예술은 신앙을 강화하고, 신자들의 경건함을 일깨워야 한다’는 트렌트공의회의 원칙에 맞게 대중을 감동하고 설득하였다.

 

르네상스가 중시하던 조화와 균형과 통일보다는 강한 인상과 극적 효과가 카라바조라는 천재의 손끝에서 펼쳐졌다. 르네상스가 합리성에 터 한 이성의 예술이었다면 바로크는 감성에 터 한 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성은 지성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카라바조의 삶은 그가 문을 연 바로크 미술처럼 성스러움과 세속이 극단적으로 교차하였다. 그의 삶은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그의 작품과 비슷하다.

 

그의 본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다. 그의 가문 이름은 ‘메리시’이고, 부모가 붙여준 이름은 ‘미켈란젤로’이다. ‘카라바조’는 그의 고향이다. 그 이름의 뜻은 ‘메리시 가문의 카라바조 출신 미켈란젤로’이다. 하지만 화가 카라바조가 태어난 곳은 카라바조가 아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밀라노다. 카라바조는 1571년 9월 29일 페르모 메리시와 루치아 아라토리 사이에서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쯤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흑사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작은 마을 카라바조로 왔다. 그리고 13살 무렵 그는 밀라노의 화가 시모네 페테르차노(1535?~1599)의 화실에서 도제 생활을 시작하였다. 추측컨대 이 무렵 화실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이 ‘카라바조에서 온 미켈란젤로 메리시’, 또는 ‘카라바조의 미켈란젤로’로 불리다가 ‘카라바조’로 단순화되었을 것이다(1). 화실에는 카라바조 출신의 다른 화가 수련생은 없었을 것이다.

 

카라바조의 스승 시모네 페테르차노는 밀라노의 유명한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어서 그 관계를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는 없다. 밀라노 제일의 화가가 카라바조에서 온 촌뜨기 소년을 넓은 품에 안아주었을까? 혹시 구박하지는 않았을까? 카라바조는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랐을까? 규율과 권위를 싫어하고 평소에 반항적인 제자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훗날 둥지를 떠난 새처럼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유명세를 날리고 있을 때 페테르차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어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카라바조가 페테르차노의 둥지에서 바로크 미술의 여명을 맞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페테르차노의 화풍은 르네상스 말기의 마니에리스모와 바로크 양식의 근간이 되는 ‘테네브리즘(Tenebrism)’(2)을 포함하고 있었다. 페테르차노를 바로크 화가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바로크의 잉태에 적지 않은 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이들 사제에게 어울리는 말처럼 보인다.

 

미주

 

(1) 르네상스 최고의 천재 예술가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와 혼동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카라바조는 ‘미켈란젤로 밀라노’로 불릴 수도 있었으나 밀라노는 로마에 버금가는 도시였고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은 당시 흔한 이름이었다. 카라바조 자신은 ‘로마의 미켈란젤로’를 꿈꾸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빈치의 레오나르도’가 ‘다빈치’로 불리듯 지명은 때로 인명으로 의인화한다.


(2) 마니에리스모(이, Manierismo)는 과장과 비정형을 뜻하여 조화와 균형의 르네상스 말기의 과도기적 미술 양식이다. 테네브리즘은 어둠(이, tenebra)에서 유래된 회화 기법이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명암대비를 통하여 극적인 효과를 내는 바로크 미술의 근간이 되는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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