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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매일 반복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일상을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그것과는 다른 어딘가의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문득 묻게 된다. 일상은 정말, 같은 것이 되풀이되는 별 의미 없는 시간일 뿐인가?
사마리아의 한 우물가에서 무명의 여인이 예수님께 물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디서 예배해야 합니까? 그리심 산입니까, 예루살렘입니까?"
장소를 향한 질문이었다. 더 거룩한 곳, 더 특별한 공간을 향한 갈망이었다.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1, 23)
예수님은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으셨다. 그녀가 서 있는 그 자리, 바로 '지금 여기'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하셨다. 하나님은 특별한 장소에만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특별한 순간과 장소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진다. '일상을 떠난 특별함'을 찾아 헤매기보다, '일상 안에 깃든 특별함'을 발견하는 눈을 여는 것이다. 일상이 이미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시인 장석남은 <꽃의 사다리>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사다리는 없다...
하늘에 오르는 길은 꽃을 사랑하는 일,
나무를 사랑하는 일,
그 빛과 그늘들을 사랑하는 일...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는 따로 있지 않다. 꽃과 나무, 빛과 그늘을 사랑하는 일, 눈물과 가난마저 외면하지 않고 품는 일, 곧 일상의 한가운데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 하늘로 이어지는 길이다.
하나님이 일상 속에도 계심을 믿는다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다시 보는 일이다. 햇살 한 줄기, 뺨을 스치는 바람,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이것들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은혜의 선물로 받아 안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를 앞에 두고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 그것이 '지금 이곳'의 땅에서 하늘로 오르는 길을 걷는 일이다.
야곱이 먼저 그것을 알았다. 쫓기듯 고향을 떠나 광야의 맨땅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잠들었던 그 밤, 그는 하늘로부터 땅까지 닿은 사닥다리를 보았다. 눈을 뜬 야곱은 그 황량한 곳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다(창 28:19). 아무도 없는 광야의 그 자리가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다. 낙망할 만한 그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안 것, 그것이 사닥다리를 오르는 첫 발걸음이었다.
바울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
기쁨을 '저기'서 찾지 말라. 기도할 장소를 멀리서 구하지 말라. 감사할 이유를, 고되고 버거운 이 '지금 여기'에서도 찾으라. 바울의 권면은 거창하지 않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지금 맞닥뜨린 현실 안에서, 그 안에 하나님을 발견하라는 초대다.
야곱에게 광야가 하나님의 집임을 알게 된 신앙의 깨달음이 필요했듯, 우리에게도 그런 눈뜸이 필요하다. 평범한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의 '지금 여기'가 하나님이 충만히 임재하시는 성전임을 발견하는 눈. 그 눈이 열리면 비로소 보이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시간과 공간은 다름 아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라는 것을.
일상은 특별한 시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