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 라합 수 2:8-14
| 8절.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
신약 성경에서 “라합”이라는 여인에 대해서 중요하게 다룹니다. 구약 성경 많은 인물 가운데 라합이라는 여인을 주목했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장 5절에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 있는 이방 여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1절에 라합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2장 25절에 아브라함과 동등한 신앙의 사람으로 언급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행함으로 나왔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고 칭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인은 라합을 말씀합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냅니다. 여리고를 정탐하고 오도록 합니다. 그때 두 사람을 숨겨 준 여인이 라합입니다. 라합(Rahab)은 기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요세푸스는 ‘여관 주인’으로 표현함). 2장 1절에 “기생의(히. 조나. ‘간음하다, 매춘하다’의 능동 분사형) 집”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눕기 전에(1절. ‘유숙하다’와 같음) 즉 잠을 자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 9절.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肝膽. 간과 쓸개)이 녹나니 |
라합은 두 사람에게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을 안다고 합니다. 단지 안다는 차원이 아니고 믿고 있다는 뜻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것은 약속입니다(창 17장 8절. 28장 4절. 출 6장 8절. 신 6장 18절 등).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믿고 따르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온갖 은혜를 다 겪으면서도 믿지 못했습니다. 민수기 13-14장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12정탐꾼을 보냈을 때 하나님의 약속 말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이방 여인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두 정탐꾼은 이방 여인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확신을 더욱 갖게 됩니다. 라합이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마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다’(히. 야다)라고 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고백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여리고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도 말해 줍니다.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려움’은 ‘공포, 전율’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들의 내적 감정 상태를 표현해 줍니다.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는다”고 말합니다. 간담이라는 말이 원문에는 없습니다. 의역을 한 것입니다. 간담이 녹았다는 말은 그들이 무기력한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그 전쟁에 임하는 심리 상태입니다. 그런데 여리고 사람은 이미 패배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 10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
라합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께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을 들었다고 합니다. 시간적으로 상당히 흘렀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고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들어가려고 하는 시점입니다. 40년 전의 일입니다. 라합의 나이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처럼 말합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건너게 하신 일을 깊이 묵상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요단 저쪽에 있는(동편)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도 들었다고 합니다. 민수기 21장 21-35절 내용입니다. 신명기 3장 11절에 옥은 바산의 왕으로 그의 철 침상이 아홉 규빗(약 4m)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거인이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들을 진멸시켰습니다. ‘진멸시키다’는 말은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를 가집니다(출 22장 20절). 하나님의 군대가 가나안 땅에서 행한 일이기도 합니다(수 6장 21절. 10장 28절. 11장 11절 등).
라합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일과 두 왕과 전쟁하여 승리한 것을 통해 하나님을 묵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합은 “우리가 들었다”고 합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듣고 믿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롬 10장 17절). 라합이 그 일을 어떤 경로로 듣고 알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 이야기가 가나안 땅에 퍼져 있음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임을 확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 11절.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다고 합니다. NIV는 ‘우리의 마음이’(our hearts)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마음이 녹았다’는 말은 ‘무기력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정신을 잃었따는 말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과 전쟁하여 물리친 것에 대한 그들의 내적인 반응, 상태입니다. 그러면 전의를 상실하게 됩니다. 전쟁도 하기 전에 이미 패배를 합니다.
라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신앙 고백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단지 하나님을 위로는 하늘에 계시고, 아래로는 땅에 계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온 우주에 계시면서 다스리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당시 가나안 땅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神) 개념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 당시 가나안 땅 사람들은 다신론 신개념을 가진 사람들로서 어느 지역에 제한을 시키는 신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합은 온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신명기 4장 39절에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을 줄을 알아 명심하고”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같은 고백입니다. 모세의 신앙 고백과 같습니다. 라합이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 교육을 받은 여인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듣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올바른 지각이요, 은혜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듣고 두려움을 가지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올바르게 깨닫고 그에 합당한 삶의 자세를 취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라합은 그의 전 삶을 신앙 고백에 걸었습니다.
| 12절.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
원문에는 “맹세하다”가 앞에 나옵니다. ‘맹세로 묶다’는 말인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합니다. ‘맹세하다’는 말에는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로부터 오는 저주를 받는다는 뜻이 함의됩니다. 엄숙한 맹세입니다. 11절에 라합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라고 신앙 고백했는데,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합니다.
라합은 “선대”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kindness”(NIV)로 번역했습니다. “하쎄드. 헤쎄드”(히)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언약에 근거한 신실한 사랑입니다. 자비를 베풀었으니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내게 증표를 내라”고 했는데, “에메트”(히)가 쓰인 말입니다. ‘진리의 증표’입니다. 개역 한글에서는 “진실한 표”로 번역했습니다. 영어로는 “a sure sign”(확실한 표)라고 번역을 했고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방 여인의 입에서 “헤쎄드와 에메트”가 언급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용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계시할 때에도 두 용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라합은 이방 여인으로 선대와 진실을 구합니다.
| 13절.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
라합에게는 부모가 있었고 남녀 형제가 있었습니다. 라합은 가족들의 목숨을 살려내어 죽음에서 건져내라고 합니다. 간절함이 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확신도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 사람들을 진멸시킬 것임도 믿고 있었습니다(신 20장 16-18절). 그리고 죽음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확신도 있습니다. 결국 라합은 이방인의 신분이었지만, 죽음에서 건짐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성동체에 들어오는 은혜도 누립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선대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대도 받습니다. 하나님의 선대로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는 은혜를 누립니다.
| 14절.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
두 사람은 ‘누설하지 아니하면’(폭로하지 아니하면) 그들의 목숨으로 대신할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들의 생명을 걸고라도 라합의 집을 지켜 주겠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라고 함으로 두 사람도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냅니다. 그때 “인자하고 진실하게 대우”하겠다고 합니다. 12절에 “선대”를 요청했는데, 그에 대한 응답입니다. “인자”(헤쎄드)와 “진실”(에메트)은 성경에 자주 함께 나옵니다. 언약 관계에 쓰이는 중요한 두 용어입니다. 출애굽기 34장 6절에 하나님은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분이십니다(시 86편 15절.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 시편 89편 1-2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주의 성실하심”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와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특별히 다윗과(시 89편 3-4절) 맺으신 언약을 언급합니다. 잠언 3장 3절에는 “인자와 진리를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몸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하십니다(시 26편 3절). 하나님 나라는 “인자와 진리의 세계”입니다. 결국 라합은 이 “인자와 진리의 세계”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게 되어 언약 백성의 특권을 누립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건 그녀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