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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청소년공부방

권정생의 뒷것, 이오덕 선생/한상봉

작성자김수영1|작성시간26.06.17|조회수18 목록 댓글 0

<장일순 평전>(2024, 삼인)을 쓰고서 김지하와 김민기, 이현주 목사와 이철수, 정호경 신부와 권정생의 얼굴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얽혀 있는 이분들은 사실상 요즘 유행하는 ‘뒷것’의 성정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 가운데 김민기의 뒤에는 장일순이 있었고, <몽실언니>와 <강아지똥>으로 알려진 동화작가 권정생의 뒤에 이오덕 선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참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이오덕 선생(1925~2003)은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을 해온 교육자이며 아동문학가입니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명저고리와 어머니>를 읽고 권정생의 주소를 확인한 이오덕 선생은 그해 1월 18일 안동군 일직면 조탑동 일직교회 문간방으로 권정생을 찾아갔습니다. 권정생이 지은 동화는 여느 동화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 동화에서는 <엄지공주>와 <신데렐라>, <백설공주>처럼 본래 지체 높은 공주나 소녀가 멋진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권정생의 동화에서 그런 주인공은 나오지 않습니다. 비극적 환경에서도 고난을 받아들이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의 돌봄을 다루고 있지요. <강아지똥>에서도 주인공은 민들레‘꽃’이 아니라 강아지‘똥’입니다. 언제나 구원의 대상이었던 존재들이 ‘눈물겨운 사랑으로’ 구원의 주체가 됩니다.

한 번 만난 평생 동반한

 

권정생을 만난 첫날, 이오덕 선생은 교회 종지기의 문간방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서며 가방에 있던 원고지를 꺼내 단편동화를 한 편 쓴 뒤 보내 달라고 부탁하며, 주머니에 있던 돈도 원고지 사는데 보태라며 쥐어주고 돌아갔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다녀가신 후, 별고 없으신지요? 바람처럼 오셨다가 동생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서 지껄일 수 있었습니다”로 시작되는 편지를 1월 30일에 부친 뒤로, 권정생과 이오덕 선생은 30년 동안 수없이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권정생의 첫 번째 동화집 <강아지똥>(세종문화사, 1974)이 출판되기까지 이오덕 선생은 모든 과정을 직접 챙기며 동분서주하였습니다.

 

권정생에게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과 이현주 목사를 소개해 준 사람도 이오덕 선생입니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던 권정생에게 수시로 돈을 우체국 소액환으로 바꾸어 보내준 이도 그였습니다. <새가정>, <소년> 등 잡지에 권정생을 주선해주고, 원고료까지 챙겨주던 분입니다. 1975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에서 권정생이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도 이오덕 선생이 직접 권정생을 데리고 시상식에 참석하러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평생의 친구 전우익을 소개해 준 이도 이오덕 선생이었고, 한달에 한 번 영화를 좋아하던 권정생과 더불어 이현주, 전우익 등을 안동 시내에서 만나 안동문화회관에서 임인덕 세바스찬 신부가 상영하던 영화모임 ‘열린영상’에 참여해 환담을 나누던 이도 이오덕 선생입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최종학력이 초등학교인 안동지역 교회 문간방 문학지망생 권정생을 우리는 몰랐을 것이고, ‘강아지똥’도 ‘몽실언니’도 만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삶이 묻어나는 글쓰기

 

이오덕 선생의 <나무처럼 산처럼>(산처럼, 2002)을 읽어보면, 이 책에서 삼분의 일 분량은 이오덕 선생이 권정생에게 보낸 한 편의 편지글입니다. 이오덕 선생은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이라야 돈이 되고, 돈이 되는 글이라야 가치가 있다고 보는” 문단을 비판하며, “자기가 보고 듣고 겪었던 일을 쓴 짧은 글”인 생활글이 얼마나 귀한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삶이 없는 문학작품은 겉치레 속임수가 아니면 말장난이나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잊을 수 없는 귀한 이야기>라는 책에 실린 ‘코쿠보 후시코’라는 분이 지은 ‘카쓰시카의 그분’이라는 글을 번역해서 권정생에게 먼저 읽혀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 까닭은, 너무 제멋대로 하는 말인지 모르지만 권 선생님이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이 나와 너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카쓰시카의 그분’은 버림받은 고양이 다섯 마리를 돌보고 있는 필자의 글을 읽은 독자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필자는 길고양이를 보살피면서 이웃 사람들한테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 카쓰시카에 사는 그분에게 연락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그에게 배달된 답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많든 적든 들판에 (쫓겨다니는 짐승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은 남들한테 좋게 안 보이고, 외톨이가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은 그들끼리 사이좋게 원만하게 지내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약한 것들에 대해 가엾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 겉모양뿐으로,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면 그 감정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톨이가 되었다 해도 될 수 있는 대로 대범하게 넘기도록 하세요.”

 

고집불통의 위대한 사람들

 

이오덕 선생은 이런 조언을 들으면서, 그런 분들이야말로 내 형제요 자매라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동족이라도, 날마다 얼굴을 대하는 이웃이고 친족이라도 저 혼자밖에 모르면서 생명을 짓밟고 해치고 죽이기를 예사로 하는 사람들은 다 낯설은 남이요 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아무도 몰래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텐데, 이런 사람들은 “아주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그 깨끗한 마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며 살고 있는 고집불통의 위대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권정생의 동화에는 ‘몽실언니’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가 그렇고, <강아지똥>이나 <황소아저씨>의 주인공이 그렇습니다. 자신의 선행에 아무런 보상이 따르지 않아도 여전히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며, 사람보다 나은 짐승들이지요. “그저 개나 소나 돼지만큼만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묻고 있는 이오덕 선생은 권정생과 이현주와 전우익과 정호경 신부와 김종대와 이철수 안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 셈입니다. 그중엔 천주교인도 있고 개신교인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지만, 만나서 서로의 착함을 알아보고 형제다운 우정을 평생 나누었습니다. 서로에게 서로가 ‘뒷것’이 되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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