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학교에서 - 앤드류 머레이 그리스도의 순종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의롭게 되었다. 이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빚진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아담안에서 죄인이 된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의인이 된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의를 빚졌다는 뜻이다. 아담의 불순종이 우리를 죄인으로 만든 것처럼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를 의인으로 만든다. (나는 순종할 능력이 없는것을 하나님이 더잘아시는데 나보고 순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이루신 예수님의 순종을 믿음으로 그믿음을 의로 여김받아서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서 우리는 그안에 들어가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순종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유업으로 얻은 보화중 가장 보배로운 것은 이것이다. 그러나 이 의를 사랑하고 기뻐하고 충만한 복음을 얻도록 연구하는일을 하지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 의의 영광을 드러내심으로 우리가 의의능력에 참예하는 자가 되도록 하시기를 기도할 따름이다. 당신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칭의의 진리를 잘알고 있을 것이다. 로마서3:21-5:11에서 바울은 다음의 여러가지 진리를 가르쳤다. 첫째 칭의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다. 둘째 칭의의 방법과 조건은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를 믿는 믿음이다. 셋째 칭의의 복된 결과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것이며 하나님의 보좌앞에 나아갈 수 있는것이며 영광의 소망을 소유할 수 있는것이다. 이제 바울은 로마서 5:12절 이후부터 신앙에 의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깊은 진리를 주해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칭의의 근거이며 이 연합이 있어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를 용납하실수 있는것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자들 따라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이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을 공유하는것이 얼마나 합리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인가를 입증하기위해 바울은 아담과 우리와의 연합과 그연합으로 말미암은 결과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아담의 불순종 그로 말미암은 정죄와 죽음과 그리스도의 순종,그로 말미암은 의와 생명을 날카롭게 대조시킨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이 차지하는 위치를 연구하여 그순종이 우리의 구원의 뿌리라는 사실을 보게되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삶가운데 순종을 어떤 위치에 놓아야 할지 알게 될것이다. 아담의 후예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것같이"(롬5:19)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는가? 아담과 그의 후손사이는 이중의 관계 즉 '법정적 관계'와 '생명적 관계'로 맺어져 있다. 법정적 관계를 통해 모든 인류는 비록 태어나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죽음의 정죄선고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롬5:14) 이 법정적 관계는 생명적 관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만일 인간이 아담안에 있지 않았다면 정죄의 선언이 그들위에 임할 수 없었을것이다. 그러면서도 생명적관계는 법정적 관계의 현시가 된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죄와 사망의 능력안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의 저주아래 있다는 사실과 그본성이 죄의 능력의 영향을 받을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자들이 죄인이 되는 것이다.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이라"여기서 '오실 자'란 두번째 아담 인류의 두번째 조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담의 불순종과 그결과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 순종이 우리에게 미치는 결과를 비슷하게 보여주는 모형이다. 한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단번에 법정적인 선언에 의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로 선포되고 용납된다. 번정적 관계는 생명적 관계에 그 뿌리를 두는 것이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써만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할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전에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법정적 관계 이전의 생명적 관계를 필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아담의 불순종애 참여하여 사망과 죄악의 성품을 물려받은 것이 실제적인 사실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순종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의와 순종의 삶과 성품을 얻게되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우리가 죄인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 하도록 하자.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요구한 한가지는 순종이었다. 피조물이 하나님께 영광돌릴수 있고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향유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순종뿐이다. 죄악이 세상에 들어오고 파멸을 가져온 하나의 이유는 불순종이다. 우리에게 온갖 죄의 자주가 임한것은 불순종이 우리에게 전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안에서 역사하는 죄의 능력이란 다름아닌 바로 이것 즉 우리가 아담의 본성을 받고 그의 불순종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불순종의 자식'이라는 사실에 있는것이다. 둘째 아담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불순종과 그로인한 저주 지배권 악한성격 악한역사를 제거 하셔야만 했다. 불순종은 모든 죄와 불행의 뿌리였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첫번째 목표는 악한 불순종의 뿌리를 잘라내고 인간을 원래의 위치 즉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이일을 하셨는가? 우선 둘째 아담으로 오셔서 첫째 아담이 해놓은 결과를 제거 하심으로 이일을 이루셨다. 죄는 항상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려는 애쓰는것은 굴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순종의 고귀성과 측복성과 신성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피조물로 지으셨을 때 우리는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순결성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못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의 옷을 입는 입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순종의 옷을 입어야만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불순종을 이기고 제거하신 후에 자신의 순종으로 우리 안에 우리 위에 대치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다. 아담의 불순종이 보편적이고 포괄적이며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스도의 순종의 능력이 더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의 순종의 삶의 목표는 세가지다. 첫째로는 진정한 순종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본보기가 되시며 둘째로는 그분의 순종으로 우리를 위해 모든 의를 성취하시는 보증이 되시고 셋째로는 우리에게 순종하는 새로운 성품을 부여하시는 머리가 되시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에게 다음의 여러가지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끝까지 하나님을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는 것 둘째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의 불순종의 죄를 대신 지시고 속죄하신 것을 의미한다는 것 셋째 그리스도의 순종은 사망에 대해서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그분의 순종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터준 것이다. 법정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에 의해 의롭게 되었다. 우리가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이 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순종으로 죄와 사망의 능력으로부터 단번에 완전하게 구출되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즉 우리는 하나님앞에 의인으로 서게 된 것이다. 생명적으로-아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법정적관계와 생명적 관계를 분리할수 없기 때문인데-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가운데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생명은 다름아닌 순종의 생명인 것이다. 순종의 삶을 원하는 이들은 이점을 잘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발견하는 의와 구원의 비결은 바로 그리스도의 순종에 있다는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순종은 그리스도의 의의 정수이다. 다시말해 순종이 곧 구원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의 불순종을 덮고 종지부를 찍는것으로 우리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며 신뢰해야 하며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는 불변의 근거는 바로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아담의 불순종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사망의 능력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안의 새로운 본성인 생명의 능력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왜 바울이 이구절에서 의와 생명을 밀접히 관계시키고 있는지 그이유를 알게된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5:17-18)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의 유사점을 더 세심하게 살펴보고 첫째아담의 경우 사망과 불순종이 그자신은 물론 후손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아담과의 연합으로 인하여 인간이 사망과 불순종의 지배를 받게 된 사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볼수록 그리스도의 순종도 전가뿐 아니라 개인적 소유 행위로 인해 우리의 것이 된다는 사실이 더욱 큰 확신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스도와 순종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생명을 영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의를 받아들이게 되면 의는 단번에 순종을 가리키게 된다. 의는 순종에서 나왔고 순종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순종안에서만 번성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관계는 로마서 6장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맺은 생명의 연합에 대해 언급한 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13) 그런다음 바울은 이것이 바로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실제적 순종 우리의 순종과의 관계는 매우 실제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불순종(아담=원죄 우리자신의 불순종=자범죄)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이제 순종의 종 즉 '의에 이르는'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의,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의에 이르는 순종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의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한다. 의에 이른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를 위한 생명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생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순종이 필요한 것이다. 머리와 지체에는 오직 하나의 법칙만이 있을 뿐이다. 아담과 그 후손의 불순종과 죽음이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와 그후손의 순종과 생명도 분명한 사실이다. 아담과 그 후손사이의 한 연결점 즉 유사성은 불순종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와 그분의 후손사이의 연결점 즉 유사점은 순종인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사랑하실수가 있었고 결국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세주가 될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순종 때문이었다. 따라서 오직 순종이 있어야만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할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구속을 즐거워할 수 있는것이다.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모든것은 순종을 '의를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길로 인식하고 그렇게 실천했느냐' 의 여부에 달려있는것이다. 회심하는 순간에는 의가 단번에 완전하게 신자에게 주어진다. 이때는 순종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의를 믿고 복종하게 되고 '의의종'으로서 살아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면 의가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깨닫게 되고 마침내는 의의 신적속성까지도 알게 된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진실하게 붙잡으면 붙잡을 수록 의의 근원인 그리스도의 순종에 동참하고 싶은 열망이 더욱 강렬해 지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으로 살 수 있도록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순종은 '삶의 원리'였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순종은 가끔하는 순종의 한 행동이나 일련의 순종의 행동들이 아니라 그분의 온 삶의 정신이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38-40)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히10:9) 주님은 한가지 목적으로 세상에 오셨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려는 한가지 목적으로 이땅에서 사셨다. 그리스도의 삶을 지배하는 한가지 최상의 원동력은 순종이었다. 따라서 주님은 우리가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이같은 사실이 다음의 약속에 들어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12:50) 한 가족을 잇는 고리는 모두가 공동의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과 유사성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와 우리사이의 연결성은 그리스도와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에게서 순종은 '기쁨'이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40: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은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활력을 북돋아 준다. 건강한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음식은 단지 즐기는 것만은 아니다. 음식은 생명의 필수적 요소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것은 그리스도게서 굶주려 하셨던 음식이었고 그것없이는 살아나가실 수 없던 양식이었으며 그분의 허기를 채운 음식이었고 그분을 새롭게 하고 힘을 북돋아주며 즐겁게 한 양식이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한것은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순종이 우리의 일상 음식보다 더 자연스럽고 필요하며 더 활력을 불어놓는 영양분임을 깨닫게 될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뜻을 그리스도에게 단번에 가르쳐 주시지 않고 상황에 따라 매일같이 가르쳐 주셨다. 그리스도의 순종의 삶에는 성장과 진보가 있었다. 따라서 가장 어려운 교훈은 가장 늦게 나타났다. 그리스도게서 순종의 행동을 하실때마다 하나님은 또다른 명령을 하나씩 더 열어 보여주셨다. 성령에 의해 우리의 귀가 열려져서 성령의 가르치심을 기다리는 정도가 되려면 우리의 삶에 순종의 열기가 가득해야만 하는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만을 최대의 만족을 느끼려면 순종이 우리의 삶의 소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순종은 '죽음에 이르는것'이었다. 주님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하심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것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각오가 돠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하신 말씀의 의도였다. "내 뜻은 전혀 구하지않고 무슨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만 행하리라" 이러한 순종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또한 그렇게 살수 있도록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참된 순종인 것이다. 모든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만을 행하는 이러한 순종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순종인 것이다. 이러한 순종만이 우리가 끝까지 순종할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이것 없이는 우리의 영혼이 진정한 기쁨과 능력을 맛볼 수 없다는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란다. 전적인 순종을 의심하게되고 더 나아가 순종을 행할 능력에 자신이 없는 한 승리할수 있다는 확신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순종을 실천하도록 지시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앞에 드릴것은 온전한 순종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성령을 통해 삶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에 우리자신을 맡길 수 있게된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순종은 '깊은 겸손에서 우러나온것'이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5-11) 전적으로 자기를 비우는 사람 종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 '순종의 종' 하나님과 인간앞에서 자기를 낮추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이 그천상의 아름다움과 능력을 드러나게 보여준다. 자기자신을 믿고 순종해 보려다가 실패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도 더러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자기를 버리고 전적인 무능력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의지할때 그러니까 겸손함과 온유함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면서 하나님앞에 글복할때만 영광의 하나님께 복종는것이 인간의 의무요 동시에 축복이라는 사실이 밝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순종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한 데서 이와같은 순종이 나온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3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10) 성자께서 성부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시자 성부께서는 성자안에 그분의 능력을 무한정으로 부어주셨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을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안에 그분의 능력을 부으시는 정도를 축정하는 잣대라는 사실을 배우게되면 온전한 순종이란 하나님이 우리가운데서 역사하실것이라는 온전한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새언약의 모든약속들은 이 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대적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로 임하게 하시리니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신30:6-8)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7) 우리모두 성자처럼 하나님이 우리안에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도 무조건 적인 순종 죽음을 각오한 순종을 할수있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이같은 순종은 성부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성부의 뜻을 행한 성자와 같아질 수 있는 복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자.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분의 일을 이루실 것이다. 많은이들이 순종은 한분 즉 성자의 순종에 그 뿌리와 생명과 안전이 놓여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순종의 모델로 바라보고 연구하고 믿도록 하자. 우리가 영접하고 사랑하고 똑같아 지도록 애써야 할 그리스도를 바로 순종의 그리스도로 삼도록 하자.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희망인 것처럼 그분의 순종을 소원으로 삼도록 하라 순종의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 즉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로 영접함으로써 우리가운데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이 역사하신다는 점을 확신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어 당신의 믿음을 증명하도록 하라. 앤드류 머레이목사님의 순종의 학교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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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인 형제사랑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