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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8주일 103문

작성자이목사|작성시간26.06.09|조회수26 목록 댓글 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8주일

 

20: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38주일

103: 4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첫째,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봉사와 그 봉사를 위한 교육이

유지되기를 원하시며, 특히 안식의 날인 주일에

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부지런히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례에 참여하며 주님을 공적(公的)으로 부르고

가난한 자들에게 기독교적 자비를 행하기 원하십니다.

둘째, 나의 일생 동안 악한 일들을 그만두고,

주께서 그의 성신으로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며,

그럼으로써 영원한 안식이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기를 원하십니다.

 

 

성신의 조명을 위해 기도

 

복습부터 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건하게 맹세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에 근거하여, 맹세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101문답)

맹세를 금지한 두 이단은? 재세례파와 여호와 증인

5:33~36에서, 특히 예수님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34)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35)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36)”고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맹세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는 맹세를 남용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직접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이나 자기 머리로 맹세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엄중하게 여기는 식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맹세를 하면서도 그 책임을 피하려는 태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네 번째 계명을 살펴보겠습니다.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שַׁבָּת, 그침, 쉼, 중지)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입니다.

 

먼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첫째, 구약이 말하는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것인가?

둘째, “우리는 주일을 안식일로 지킨다가 맞는 말인가?

셋째, 안식일은 폐지되었는가? 성취되었는가?

 

이것은 제4 계명 전체가 폐지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7 일이 말하는 참된 안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에, 4계명의 의식적 부분이 모두 폐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약 성경이 정해 놓은 안식일에 준수해야 할 의식적 내용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첫째, 일하지 않고, 쉬어야 합니다(20:9~10). 실제로,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죽어야 합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31:15)

둘째,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35:3).

불을 피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15:32~36을 보면, 안식일에 나무를

하던 사람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무를 한 것은 곧 불을 피우기 위한 노동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식일에는 매매와 장사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13:15,17).

심지어, 짐을 지거나 운반하지도 말아야 합니다(17:22).

이것도 노동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일한 죄에 해당).

셋째, 안식일에는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28:9~10)

9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10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

넷째, 진설병(לֶחֶם הַפָּנִים, 하나님 앞에 차려놓은 떡)을 안식일마다 새로 차려야 합니다(24:8).

 

마지막 질문(넷째), 주 안에서 모든 날은 안식일인가?

,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날을 참된 안식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에 모여 예배하는 것을 두고, 주일을 안식일로 지킨다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키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우리가 일요일을 주일로 정하여 모여 예배하는 이유는

첫째,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6:9)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1) 20(183p)을 열어보겠습니다. 20:19를 함께 읽겠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 저녁오늘날로 말하면 주일 저녁입니다. 이날,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체포되고, 재판받아, 죽을 수도 있었기에, 두려웠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근데, 요한이 의도적으로 강조한 표현이,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입니다. 모든 문이 닫혔는데,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물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거나 벽을 통과하셨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방법을 지나치게 추측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과 능력을 닫힌 문도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2) 같은 일이 한 주 뒤에도 일어납니다. 20:26도 함께 읽겠습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여기서, 여드레를 지나서19절처럼, 안식 후 첫날로 보면 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날짜를 계산할 때, 시작하는 날도 하루도 포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드레를 지나서를 오늘날 방식으로 말하면, 일주일 뒤, 곧 지금의 주일을 말합니다.

 

셋째, 초대교회가 안식 후 첫날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3) 20(222p)을 열어보겠습니다. 20:7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한글 성경에는 그 주간의 첫날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안식 후 첫날(Ἐν δτμιτν σαββάτων, 안식일들의 첫째 날에)로 나옵니다. , 당시 초대교회는 지금의 주일에 모여, 떡을 떼며(성찬식을 의미), 말씀을 들었습니다.

 

4) 고전 16(284p)을 열어보겠습니다. 16:2를 함께 읽겠습니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 구절을 통해, 고린도 교회가 매주 첫날을 기준으로 연보를 준비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매주 첫날에 예배로 모였다는 말은 없지만, 초대교회 안에서 매주 첫날은 교회가 모이는 중요한 날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5) 1(398p)을 열어보겠습니다. 1:10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물론, 이 구절에도, 주의 날에 교회 모여서 예배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일이 주의 날로 불리게 된 매우 중요한 성경적 배경이 되는 구절인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시작된 이래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을 특별히 주님께 속한 날, 주의 날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초기 문헌을 보면, 주의 날에 모여 떡을 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첫째, 디다케 14장을 보면, “주의 날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고 감사하라(직역: 그리고 주님의 주의 날에, 함께 모인 후에, 빵을 떼고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초기 교회가 주의 날에 예배적 모임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2세기 초 이그나티우스가 쓴 글(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9)을 보면,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는 방식으로 살지 않고, 오히려 주의 날을 따라 살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따라서, 2세 초에, 안식일과 구별되는 주의 날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셋째, 2세기 중반, 순교자 저스틴이 쓴 글(1변증서67)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의 날(=일요일)이라고 불리는 날에, 도시들이나 시골들에 사는 모든 사람의

한곳으로의 모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의 글에는 그 모임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설명합니다.

사도들의 기록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인도자가 권면하며, 함께 기도하고, 떡과 포도주와

물을 가져와 감사 기도를 드리고, 회중이 아멘으로 응답하며, 나누어 받습니다.”

 

이처럼, 2세기 중반에 교회는 주일에 모여 말씀, 기도, 성찬, 구제를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3세기 시리아 교회 질서를 반영하는 문헌(디다스칼리아 아포스톨로룸)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주의 날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너의 교회로 열심히 달려가라

 

이것은 3세기 교회 안에서 주의 날에 모여 말씀 듣는 것이 교회의 의무로 강하게 권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4세기 후반에 작성된 사도헌장730장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옵니다.

주님의 부활의 날, 곧 주의 날에, 빠짐없이 함께 모이라

 

이것은 이미 4세기에 교회가 주의 날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굳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주의 날로 불리게 되었습니다(1:10). 그렇다고 해서,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을 주일로 옮긴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주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한 날을 구별하여 예배하게 하신 그 원리는 폐지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4계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전히 유효한 도덕법이며(십계명 자체가 도덕법), 신약 교회는 그 원리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주의 날, 곧 주일에 따라 공적으로 예배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안식일 자체를 폐지하신 적이 없습니다.

 

5) 2(56p)을 열어보겠습니다. 2:27~28을 함께 읽겠습니다.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는 말씀은 안식일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유익을 주는 선한 제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만든 율법주의적 안식일 규례를 책망하셨지만, 안식일의 선한 목적 자체를 부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안식일의 참된 의미가 자신 안에서 바르게 해석되고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둘째, 4계명(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의 핵심은 하나님께 속한 날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4계명의 원리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7을 읽어드립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합당한 분량의 시간을 따로 구별해야 한다는 것은 자연법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 안에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을 가지는 적극적이고, 도덕적이며, 영속적인 명령으로, 특별히 일곱 날 중 하루를 안식일로 지정하셔서 그에게 거룩하게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 날은 세상의 시작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는 일주일의 첫날로 바뀌었습니다. 이날은 성경에서 주의 날이라고 불리며, 세상 끝날까지 기독교 안식일로 계속되어야 합니다.”

 

6) 103문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질문을 드리면, 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103: 4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첫째,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봉사와 그 봉사를 위한 교육이

유지되기를 원하시며, 특히 안식의 날인 주일에

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부지런히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례에 참여하며 주님을 공적(公的)으로 부르고

가난한 자들에게 기독교적 자비를 행하기 원하십니다.

둘째, 나의 일생 동안 악한 일들을 그만두고,

주께서 그의 성신으로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며,

그럼으로써 영원한 안식이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문답에서 두 가지만 확인하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첫째, “,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봉사와 그 봉사를 위한 교육이 유지되기를 원하시며,

특히 안식의 날인 주일에 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부지런히 참석하여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부지런히 참석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주일을 단순히 쉬는 날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두 번의 예배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주일예배를 마치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의무처럼 여기는 태도는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안식을 이루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은 안식의 날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의 교회에 부지런히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례에 참여하며 주님을 공적(公的)으로 부르고 가난한 자들에게 기독교적 자비를 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둘째, 4 계명은 일주일 중 하루만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의 문제입니다.

 

103문답의 둘째를 보시면, “둘째, 나의 일생 동안 악한 일들을 그만두고, 주께서 그의 성신으로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며, 그럼으로써 영원한 안식이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처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안식일 계명을 단지 주일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더 깊게는 죄를 쉬고, 내 욕망과 악한 일을 그치고, 성령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으로 설명합니다. , 참된 안식은 단순히 몸을 쉬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떠나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따라서, 4 계명은 지금도 유효한 도덕법으로 받아들여, 주 안에서 날마다 안식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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