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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산상수훈(44) 마 7:24 ~27

작성자이목사|작성시간26.06.18|조회수21 목록 댓글 0

7:24~27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성신의 조명을 위해 기도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7:13~27은 산상수훈의 결론입니다.

이 결론에서 예수님의 네 가지 경고가 있습니다.

 

첫 번째 경고는 13절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넓은 문, 넓은 길이 아닌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고 경고하십니다.

 

두 번째 경고는 15절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그들은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경고는 21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주여, 주여하는 자가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네 번째 경고는 24~27절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행하라

동시에 이 말씀은 산상수훈 전체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1) 먼저, 같은 내용이 나오는 눅 6장을 열어보겠습니다. 6:47~49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마태의 기록과 누가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다른 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마태복음에는 그러므로(7:24)라는 단어로 시작하지만, 누가복음에는 이 단어가 없습니다.

둘째, 누가복음에는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47)라고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에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τος λόγους τούτους, 말들, 말씀들) 듣고

행하는 자는입니다.

즉 마태복음에는 앞에 지시 대명사 가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7:24에 나오는 그러므로(ον)나의 이 말(τος λόγους τούτους, 이 말씀들, 복수형)이라는 표현을 통해, 7:24~27산상수훈 전체를 결론짓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는 24절에 있는,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두 번째 종류는 26절에 나오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이런 대조를 보면, 예수님의 강조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듣고에 있지 않고, 행함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행함에 대해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강조하셨습니다.

 

2) 5:19를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리고, 7:12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한글 성경에는 대접하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 더 가깝게 번역하면, 행하다(ποιέω)입니다. 그래서 12절을 직역하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너희에게 행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렇게 행하라

 

이 구절에서도, 예수님은 행함을 강조하셨습니다.

,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어떻게 행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그렇다면 너희도 그들에게 그렇게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머물러 있는 것 그리고 생각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반드시 삶의 행함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3) 7:17~19도 함께 읽겠습니다.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열매를 맺는다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나쁜 열매를 맺나니(17),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18),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19)’

 

이처럼, 열매를 맺는다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맺는다에 사용된 단어가 24절과 26절에서, “행하다에 사용된 단어(ποιέω)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을 살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나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씀은 21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여기서도, 행함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다만(ἀλλ’,그러나)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따라서, 이 모든 말씀을 보면, 산상수훈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바로, “행함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렇게 행함을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4) 24~27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우선, 24절과 26절을 보시면, 24절에,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그리고, 26절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여기서, 같으리니(ὁμοιωθήσεται)의 뜻은 같게 될 것이다 혹은 비교될 것이다입니다. , 미래에 일어날 어떤 결말을 일러줍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게 될 것인데, 곧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은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을 것인데, 곧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행함을 강조하신 이유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지금은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앞에서 하신 말씀과 그대로 연결됩니다.

22, 23절에,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겉으로는 쉽게 구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여 주여하면서, 선지자 노릇 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고 있기에,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날에(미래에) 드러날 결말은 비참합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23)

 

그러므로, 주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불렀습니다.

 

5) 이런 식의 대조(비교)는 마 25장에 한 번 더 나옵니다. 25:1~12를 함께 읽겠습니다.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의 분위기가 7:22, 23과 매우 비슷합니다.

우선, 7장에서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대조되었지만, 25장에서는 슬기 있는 자와 미련한 자가 대조되고 있습니다. 근데, 원문에서 보면, 각각 사용된 단어가 같습니다. 번역만 다를 뿐, 헬라어 단어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25장에서, “슬기 있는 자와 미련한 자를 구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겉으로 보면 그들은 모두 신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등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슬기로운 자들은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했지만, 미련한 자들은 등은 가졌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말씀을 듣고 행한 사람과 말씀을 들었지만 행하지 않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참여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는 문이 닫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밖에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외쳤으나, 신랑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십니다.

 

결국, 이 비유의 핵심은 슬기로운 자들과 미련한 자들의 미래 결말은 확연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7:24~27이 보여주는 경고와 매우 유사합니다

 

여러분이 25절과 27절을 보면, 동일한 표현이 나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ποταμοί, 강들, 홍수로 불어난 물들)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폭풍우입니다.

비가 내리고, 물이 불어나고, 바람이 불어 집을 덮치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6) 13(1165p)을 열어보겠습니다. 13:13~16을 함께 읽겠습니다.

13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퍼붓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어리로 무너뜨리리라

14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허물어서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5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모두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16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보았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은 10절에 있듯이,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평안, 평강이 없는데 평강이 있다고 말한 죄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장면입니다. 특히, 13절에 나오는 폭풍, 폭우, 큰 우박 덩어리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이 무너지는 것 혹은 무너지지 않는 것은 곧 종말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칠 때”, 왜 어떤 집은 무너지고, 어떤 집은 무너지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25절과 26절에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경우는 25절입니다.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기둥을 받치는 큰돌)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반대로, 무너지는 경우는 26절에 있듯이,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었기 때문입니다.

, 주추를 놓을 만한 반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리해 보면, “누구든지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아서, 그는 마지막 심판의 때에 무너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아서, 그는 마지막 심판 때에 무너지게 되고,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람의 행위가 구원의 공로가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산상수훈의 말씀을 들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루하루 그 말씀대로 신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종말의 때, 곧 최후 심판을 의식하면서, 내가 들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이며, 슬기로운 자입니다.

 

여러분, 성경 어디에도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듣기만 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12:28,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리고 1:22에도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그러므로, 산상수훈을 말씀을 읽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종말의 심판을 의식하면서, 끝까지 말씀에 준행하는 자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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