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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한복음 강해(12) 3:1~8

작성자이목사|작성시간26.06.09|조회수22 목록 댓글 0

3:1~8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신의 조명을 위해 기도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봐야 할 구절이 있다면, 3절과 5입니다.

 

예수님은 3절과 5절에서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하셨습니다(11절에 한번 더 나옴).

여기에 사용된 단어가 헬라어로 아멘(ἀμν)입니다. 따라서, 진실로 진실로를 헬라어 그대로 읽으면, 아멘 아멘이 됩니다. 아멘의 뜻은 진실로, 참으로, 그렇게 되기를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같은 단어를 반복하신 이유는 지금 하시는 말씀이 참되고 확실한 말씀이라는 것을 강하게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

 

3절이 원리라면, 5절은 3절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님과 대화한 사람은 니고데모입니다.

1)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1절에 있듯이,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입니다.

특히 요 7(50~51)에서, 니고데모가 유대 지도자들의 논의 가운데 발언하는 장면을 볼 때, 그는 당시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 기관이었던 산헤드린 공회(71명으로 구성)의 회원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부르신 것을 보면, 그는 랍비(ῥαββί, 나의 선생님)였을 것입니다. 근데, 특이한 점은 그가 유대인 혈통을 가진 바리새인임에도 불구하고, 니고데모라는 이름 자체가 헬라식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왜 헬라식 이름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름의 뜻은 백성의 승리입니다.

(다만, 당시 유대인들이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

 

근데,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사실, 우리는 니고데모가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을 두고,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낮에 성전을 발칵 뒤집어 놓으신 예수님을, 낮에는 찾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밤에 찾아온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어쨌든, 그는 바리새인입니다. 랍비이고, 산헤드린 공회 회원입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나사렛에서 온 젊은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찾아온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지금까지 바리새인 중에 예수님께 호감을 보인 사람은 없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처음입니다.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2)

 

이 구절에, 특이한 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특이한 점은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공식적으로 랍비 교육을 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정규 신학교 졸업자가 아닙니다. 근데, 그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른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대단했을 뿐 아니라, 그분이 보여주신 표적 때문입니다.

 

2) 2:23을 함께 읽겠습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그리고 4:45도 함께 읽겠습니다.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님이 갈릴리로 돌아가셨을 때,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던 이유자기들도 명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2:23을 보시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표적(원문: “표적들(σημεῖον), 증거가 되는 기적들)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절을 보시면,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3) 2:24를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우선, 여기서 의탁하다에 사용된 단어와 23절에 믿었다에 사용된 단어는 같습니다.

πιστεύω(피스테우오(피스튜오)), 뜻은 믿다, 신뢰하다, 의지하다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유월절, 무교절에 행하신 표적으로 보고, 예수님을 신뢰했으나, 정작 예수님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믿거나, 신뢰하거나, 의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알고 계셨기때문입니다(“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여기서, 안다(γινώσκω)는 말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과 본성까지 꿰뚫어 알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믿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도 당신을 믿을까요?, 신뢰할까요?”

혹은 하나님도 당신의 믿음을 신뢰할까요?”

 

여러분은 이 질문 앞에서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믿음이 있나요?

 

4) 15(25p)을 열어보겠습니다. 15:11,19를 함께 읽겠습니다.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그리고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사람의 내적인 상태가 이 정도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으시지만,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신뢰할 수 없고, 믿을 수 없지만, 하나님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5:8)

 

그래서,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사람을 신뢰한다 혹은 좋아한다는 구절은 단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구절은 가득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하지만, 사랑해 주십니다.

때로는 교만하고, 자만하여, 자신을 자랑하는 삶을 살아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고,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할 때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갈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으시며 사랑으로 붙드십니다.

심지어 우리의 작은 믿음에도 하나님은 감동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17)

 

3:2절에서 두 번째로 특이한 점은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입니다.

 

, “내가가 아니라, 우리가라고 말한 점이 특이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표적을 행하실 때, 바리새인들도 그 소식을 들었거나, 직접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모여서, 그 표적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토론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이 내린 결론이 바로,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입니다.

 

5) 이제, 3,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님은 2절에 말한 니고데모의 말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으십니다(2,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뜬금없이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가 2:24에서 확인했듯이,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알고 계시기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찾아온 목적, 그의 생각, 그의 내면, 영적 필요, 특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그의 말에 맞장구치지 않고, 직접 그를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예수의 가르침에, 니고데모는 당황하지 않고 반응합니다. 4절에,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니고데모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 자체에는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니고데모를 포함한 당시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하시고 다스리실 메시아 왕국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흔히 메시아 대망 사상이라고 부릅니다(참고, 7:13~14).

 

6) 이러한 기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씀이 행 1:6(186p)입니다. 찾아서,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여러분이 3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스라엘의 회복과 연결해서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당시에 유대인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자기 나라가 회복(독립)될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식민지로 살아간다는 것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니고데모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기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니고데모가 의문을 가진 것 거듭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다시 묻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두 번째로 자기 어머니의 태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것).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니고데모의 어리석은 질문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는 거듭남의 가능성을 물은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듭남의 유일한 가능성을 한번 더 가르쳐 주십니다.

7) 5~7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이 말씀이 니고데모에게는 분명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리고 이어서, 6, 7절에서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예수님의 이런 말씀에, 9절을 보면, 니고데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그리고 10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 예수님이 성경에 없는 새로운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말씀은 이미 구약에서 약속된 새 언약의 내용인데, 너는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9) 그럼, 구약 성경 어디에 나올까요? 36(1208p)을 열어보겠습니다.

36:25~27을 함께 읽겠습니다.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여기서, 25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를 모든 더러운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26절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며(내면의 새로움),

27절은 하나님께서 내 영”, 곧 성령을 우리 안에 두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게 되고,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행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며,

물과 성령의 사역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스스로 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씻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과 마음을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주의 율례와 규례를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25~27절의 주어는 주 하나님”(אֲדֹנָי יְהוִה)).

 

따라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근본적 이유는 겔 36장을 그대로 이해시키기 위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36장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10) 한 군데만 더 확인하고 마치겠습니다. 37장을 열어보겠습니다.

37:1~6을 함께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2절에 보면,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즉 생명력이 아예 없는 상태입니다. 근데, 4, 5절을 보시면,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4)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5)

10절을 보시면, 실제로 마른 뼈들이 살아납니다.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 하나님께서 생기를 넣으시자 죽은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다.

살아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만이 살리실 수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만이 살리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경험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첫째, 여러분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거듭남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 주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둘째, 자신이 거듭난 사람임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그 확신은 막연한 느낌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는 마음, 그리고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열매가 있을 때 우리는

거듭남의 은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36:27 말씀에,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따라서, 거듭난 사람은 말씀에 대한 순종의 삶으로 입증됩니다.

순종이 거듭남의 원인은 아니지만, 거듭남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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