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은 20장 다음으로 짧은 장입니다.
그리고, 16장과 17장에는, 요셉 자손이 가나안 땅을 분배받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1~4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샘 동쪽 곧 여리고 곁 요단으로부터 광야로 들어가
여리고로부터 벧엘 산지로 올라가고
2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렉 족속의 경계를 지나 아다롯에 이르고
3 서쪽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족속의 경계와 아래 벧호론과 게셀에까지 이르고 그 끝은 바다라
4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
우선, 1~4절에는 요셉 자손이 받은 기업의 전체 경계가 나옵니다.
12지파가 받은 기업을 지도상에서 보면, 어제 확인했듯이 유다 지파가 받은 땅은 가나안 남부 지역에 위치합니다. 그 위에는 베냐민 지파의 기업이 있고, 그 위에는 에브라임 지파, 그 위에는 므낫세 지파의 기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1절에서 말하는 요셉 자손은 므낫세와 에브라임, 곧 두 지파를 포함하는 명칭입니다.
그래서, 4절을 보면,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두 아들인 동시에 야곱의 손자들).
이렇게 요셉 자손이 두 지파가 된 것은 역사적으로 족장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입양했기 때문입니다(창48:5, “내가(=야곱)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따라서, 기업을 받지 못한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 요셉을 대신하여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넣으면 기업을 분배받는 지파 수는 다시 열둘이 됩니다.
그리고 5~9절에는 요셉 자손 중,
에브라임 자손이 받은 기업의 경계와 그 안에 포함된 성읍 및 마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5절만 함께 읽겠습니다.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지역은 이러하니라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호론에 이르고”
말씀드렸듯이, 5~9절은 에브라임 지파가 받은 기업의 경계라면, 므낫세 반 지파가 받은 기업의 경계는 17장에 나옵니다.
근데, 요셉의 두 아들 중, 첫째가 므낫세이고, 둘째가 에브라임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는 출생 순서에 따라, 므낫세가 에브라임보다 먼저 언급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을 받는 순서도 에브라임보다는 므낫세가 먼저 나와야 하지만, 그 반대로 나옵니다. 이것은 야곱의 축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창 48장에는 요셉의 두 아들이 할아버지 야곱에게 축복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므낫세가 장남이었기에, 야곱의 오른손이 므낫세의 머리 위에, 왼손이 에브라임 머리 위에 두는 것이 맞지만, 오히려 야곱은 자신의 팔을 엇바꾸어 오른손을 에브라임 머리 위에, 왼손을 므낫세 머리 위에 두고, 축복합니다.
물론, 요셉은 이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야곱에게,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48:18)라고 간청하였지만, 결국 야곱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19)
즉, 야곱은 축복의 순서에서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운 것입니다(20).
그러므로, 4절에 나오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출생 순서에 따른 표현이라면, 16장에서 에브라임이 먼저 기업을 받고, 17장에서 므낫세가 뒤따라 기업을 받는 것은 야곱이 했던 축복의 순서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15장에서 유다 지파가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던 것처럼(15:63), 에브라임 지파도,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 족속은 에브라임 가운데 함께 거주하며 노역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제 말씀드렸듯이, 신 7:2에서,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쫓아내지 않은 이유를 10절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삿 1:28을 보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즉,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기보다는 그들을 노동력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못 쫓아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안 쫓아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도 에브라임 지파도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주신 기업을 완전히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여부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것에는 늘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 참 많습니다. 모든 이유의 중심에는 “자기 사랑, 자기 유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그리고 약 1:22에도,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오늘 하루도 말씀을 행하는 자로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