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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상)how

47h-10-46-사랑의교회 건축! 받아 들임과 내려 놓음.

작성자성령의 새바람(늘사랑)|작성시간10.11.10|조회수31 목록 댓글 0

 

47h-10-46-사랑의교회 건축! 받아 들임과 내려 놓음.
성령의 새바람(늘사랑) | 2010.02.1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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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새벽 기도회 때 사랑의교회 한 부목사님의 설교가 기억이 납니다.

 

내려 놓는다는데, 도대체 뭘 내려 놓느냐며,

또, 더 내려 놓는다는데 도대체 뭘 더 내려 놓느냐며 약간은 격양된 목소리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어느 선교사님께서 쓰신 책 제목이 순간 떠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격양된 목소리로까지 말씀하실 필요가 있을까?는 생각을 하며,

더 기분이 언짢았던 것은 내려 놓음과 더 내려 놓음에 대해 왠지,

그시간을 빌어 공개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 처럼까지 들렸다는 것이였습니다.

어쨌든, 귀에 참 많이 거슬렸던 말씀이셨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 다 되어 가는 이빨과의 전쟁!!!

이번 사랑의교회 건축에 대한 글들을 올리던 시기와 맞물려 솔직히 제 이빨에 대한 신경 보다

사랑의교회 건축에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다 쏟으며

신경이 온통 사랑의교회와 한국교회로 향해 있었습니다.

 

이미 오랜시간 조금씩 썩었던 유치로

(영구치가 나지 않아 20년이 넘도록 아니, 그 시간의 두 배가 되는 시간 동안)

살아 오며 올 2010년 1월이 들어서며 두 세 주가 넘도록

깍두기 하나를 제대로 씹어 먹지 못하는 아픔을 견디며

근 한 달이 다 되는 시간 동안의 씨름을 끝으로, 결국, 이빨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임플란트와 임플란트 보다 많이 저렴한 브릿지 사이에서의 갈등!!!

그러나, 결국... 비용이 많이 드는 임플란트를 외면하고 브릿지를 결정하였습니다.

 

설을 지나 브릿지를 하기 위해 찾은 시간, 

2010년 2월 17일 생이빨 두 개를 갈기 직전,

정말, 멀쩡한 생이빨 두 개를 진짜 갈아야 하나는 생이빨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제 마음 속에서는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서

"그 때, 이빨 색으로 하신다고 하셨는데, 이빨 색으로 하실거죠?"라는 질문을 해 오시는 바람에

저는 금이나 임플란트가 더 좋지 않냐며 시술대에 누운 상태로 상담(?)이 들어 갔습니다.

그리곤, 브릿지(세 개 비용)보다 두 세배 더 비싼 임플란트였지만,

멀쩡한 생이빨 두 개를 갈수는 없다는 생각에 순간, 임플란트를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결정을 다시 뒤 엎은 것은... ㅠ_ㅠ;

의사 선생님께서 시술대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이빨 색으로 하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잘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멀쩡한 생이빨 두 개를 모두 갈아 버리고 말았습니다.ㅠ_ㅠ;

사실, 비용 문제가 더 컸었죠^^

 

정말, 순간의 선택! 순간의 결정이...

지금은... 완전 망했다(?)는 기분마저 들고 있습니다. ㅠ_ㅠ;

한 주 내내 불편한 느낌의 임시 이빨 세 개가 제 입 속에서 기분을 아주 흐려 놓고 있습니다.ㅠ_ㅠ;

브릿지(썩은 이빨 한 개를 빼고 양쪽 멀쩡한 이빨 두 개를 갈아서 연결하여 씌우는 치료)라는 것을 하면,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니,

왜 그 때, 그런 결정을 한 걸까?는 후회 막심(?)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지요.ㅠ_ㅠ;

 

그런데.... 한 가지... 조금씩 마음에 안정을 찾고 있는 것은...

받아 들임과 내려 놓음에 대한 묵상이 저절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불편한 임시 이빨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얻어진 받아 들임과 내려 놓음이였습니다.

 

이제 남은 짧은 여생(?)동안 불편한 브릿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이미 생이빨 두 개가 원상복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과

불편한 브릿지로 제대로 먹지 못할 음식들에 대한 마음을 내려 놓음이였습니다.

 

음식에 대한 욕심을 내려 놓는 것!

불편한 브릿지에 대한 단점보다 장점을 빨리 받아 들이는 것!

 

불편함을 통해 다른 사람에 대한 아픔을 배우며 고난(?)을 아는 자가 되는 것!

내가 아프지 않으면 아픈 사람의 심정을 모를 것이며,

내가 고난 당하지 않으면 고난 받는 자들의 심정 또한 모를 것이며,

내가 배고프지 않으면 배고픈 자의 심정을 모르듯... 

 

그렇게, 다음 세대들도 지금 現사랑의교회에서 겪는 불편함과 어려움 속에서

미래를 향한 더 건강한 비전과 사명을 가진 자들로 세워지지 않을까요?

혹, 너무 무리한 각론일까요?

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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