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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11월 8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작성자김종필라파엘|작성시간25.11.07|조회수62 목록 댓글 0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작은 삶을 위대하게 사신 예수님!

이 땅에 내려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일관되게 보여주신 삶의 노선이 하나 있으니, 작음에 대한 큰 가치와 의미부여, 곧 작음의 추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 생활 내내 그 어떤 작은 것 하나라도 하찮게 여기신 적이 없습니다.

30년간 지속된 나자렛에서의 숨은 생활, 작은 자로서의 삶을 조금도 소홀히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루를 평생처럼, 순간을 영원처럼, 조용하지만 정성껏, 최선을 다해 나자렛에서의 작은 삶을 위대하게 사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들의 대표 격인 어린이들이 당신께 다가오는 것을 언짢아하시며 쫒아 내는 제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어린이들이 당신께 가까이 다가오도록 하신 후 한 명 한 명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주셨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당시 유다인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또 다른 작은이들이었던 장애인들, 악령 들린 이들, 불치병 환자들에게 다가가 정성껏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시는 과정에서도 당대 잘 나가던 큰 사람들이었던 유다 고관대작들, 대사제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가운데서가 아니라 이름 없던 학벌 없던 시골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십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

윗분들, 높은 분들, 크신 분들 보면 대체로 큰 것들, 많은 것들, 엄청난 것들에 혈안이 되지, 작은 것들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것이 통상적인 모습인데 예수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시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크기로 따지면 이 세상 그 어떤 인물보다 크신 예수님이시지만 작은 것들, 작은 사람들, 작은 사건들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고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시며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시니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한 가난한 인간의 작은 외침, 절박한 부르짖음에도 귀 기울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상처 입은 한 영혼의 작은 상처에도 큰 연민과 측은지심을 지니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찮아 보이는 것들, 정말 작은 것들도 그분께는 아주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것 너무나 은혜롭지 않습니까? 나같이 보잘것없는 한 인간의 작은 고통도 그분께는 아픔이고 상처라는 사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시는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바는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은 계명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것.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인연 하나라도 귀히 여기는 것. 매일 되풀이되는 작은 일들, 작은 봉사, 작은 만남에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 결국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된다면 크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어서 구원됩니다. 그러니 우리의 작음에 대해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작아지는 우리의 모습에 안타까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작음에 감사하고, 보다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내가 가진 무엇은 그저 ‘운’ 때문입니다

 

베토벤에게는 크리스토프라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투기에 열중하여 대단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모은 돈으로 땅을 사재기하여 자칭 ‘토지 소유자’라 칭했습니다.

언젠가 베토벤이 돈에 쪼들려 견디다 못해 동생에게 통사정했습니다.

얼마 후에 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습니다.

 

“지금은 매우 살기 어려운 세상이며 이때를 이겨 나가려면 누구나 있는 힘을 다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형님이 선택한 직업은 딱하게도 죽기에는 부족하고 살기에는 더욱 모자라는 수입밖에 안됩니다.

따라서 형님이 지금과 같은 딱한 처지에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형님 자신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형님을 도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동생, 토지 소유자 크리스토퍼 올림.”

 

이런 답장을 받자 분을 못 참은 베토벤은 단숨에 다음과 같이 한 줄짜리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네 돈은 필요 없다. 네 설교는 더욱 필요 없다. 두뇌의 소유자 루드비히.”

 

여러 해 동안 일본 납세액 1위를 달렸던 거부 사이토 히토리는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지만

일본 최고 부자이자 성공한 사업가로서 언론에 얼굴 등 자세한 신상이 공개되지 않아

‘괴짜 부자’, ‘별난 사업가’ 등으로도 불립니다.

그에게 그토록 많은 돈을 번 이유를 물으면 그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합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재물은 ‘운’ 때문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 재물 운이 자신에게 오도록 받아들일 자세로 살 뿐이라고 말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재산을 많이 모을 수 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운 좋은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을 이깁니다!”

 

소유는 운 때문입니다.

운 좋으면 받고 운 없으면 못 받고, 운 좋으면 살고 운 나쁘면 죽는 게 인생입니다.

인간은 실제로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생명도 단 1초도 더 늘릴 수 없고, 머리카락 단 한 개도 더 나게 할 수 없습니다.

 

죽을 때 무엇을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까지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생명을 다시

찾아가시면 그 사람은 자신이 소유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놓고 떠나야합니다.

가져갈 수 없으니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입니다.

 

만약 베토벤의 동생이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것으로 형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생은 투기로 번 돈이 자신의 노력으로 합당히 벌었기에 자신이 당연히 소유해야 하고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은 형은 가난한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가장 위대한 음악가인 형을 잃었습니다.

 

무언가를 소유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 여겨서 남에게 주기가 아깝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롭지 않다고 여기면 쉽게 줄 수 있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사귀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재물을 불의하게 여겨야 나누어줄 수 있고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불의하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합당하지 않은데 가지고 있으면 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운이 좋아 가진 것들이 불의한 재물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 것이기에 우리 소유는 다 불의한 재물입니다.

주님 것을 내가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김제동 씨가 못생긴 사람이 없으면 잘 생긴 사람도 있을 수 없다면서 조인성 씨 앞에서 그를 면박 주는 강의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그 얼굴과 그 키와 그 모든 외모를 자신이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사람들이 운이 좋아 더 받은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인정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운 나쁜 것이 그 사람 탓은 아닙니다.

복권에 당첨되지 못했다고 그것을 그 사람 탓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일까요?

내가 굶어 죽는 곳이나 전쟁의 고통 속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나의 노력 때문일까요?

다 운이 좋아서 그럴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갈 때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수없이 굶어 죽어갈 때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우리를 친구라 여겨줄 수 있을까요?

참다운 나눔은 나의 것이 합당해서가 아니라 그저 운으로 주어진 불의한 재물임을 알 때 시작됩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6,9-15: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불의한 집사의 비유를 이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9) 주님은 재물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지 않으신다. 오히려 재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사도 바오로는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1티모 6,7) 우리가 가진 재물, 재능, 시간은 본래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선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관리자로서 사용해야지, 주인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가르친다: “네가 가진 것은 네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것이며, 너는 단지 관리인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창고가 바로 네 창고다.”(Sermo 86) 우리가 나누지 않는 재물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지만, 사랑으로 나눈 재물은 영원한 삶으로 옮겨져 하늘의 보화가 된다(마태 6,20 참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친구는 단순한 인간적 관계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우리가 그들에게 베풀 때, 실제로는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마태 25,40).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가진 것을 가난한 이에게 내어주어라. 그러면 그가 천국의 문 앞에서 네 친구가 되어 너를 맞이할 것이다.”(Homiliae in Matthaeum, Hom. XIX) 재물은 사라질 때가 오지만, 우리가 재물로 나눈 사랑은 우리를 영원한 거처로 인도하는 친구가 된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13) 재물은 본래 선물이지만, 그것이 우상이 될 때 우리는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노예가 된다. 교리서는 경고한다. “탐욕은 우상 숭배와 같다. 재물에 대한 끝없는 욕망은 하느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2534-2536항 요약) 우리가 재물의 올바른 주인이 되는 길은 그것을 사랑이 지배하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자선을 통해 재물을 다스릴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재물의 본래 목적을 일깨워 준다. 재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고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도구이다. 우리가 재물의 종이 되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재물의 주인이 되어 사용할 때, 그것은 영원한 보화를 준비하는 길이 된다. 나눔 속에서 얻는 참된 자유, 그리고 가난한 이 안에서 만나는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섬겨야 할 한 분 주님을 닮아가는 길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예전에 유럽 여행을 신부들과 함께 갔다가 2층 관광버스를 탄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타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여행 중인 다른 신부들도 마찬가지였지요. 이층에서 편안히 앉아 주변 경관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신부가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신기해. 운전사도 없는데 차가 가고 있어.”

 

이 신부의 말처럼 운전사가 없는 것일까요? 전자동 자율 주행 차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운전사는 우리가 있는 2층이 아니라 1층에 있었던 것입니다. 1층의 운전사가 보이지 않으니, 운전사 없이 앞으로 가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피조물이 전지전능하신 분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볼 수 있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일 수 없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또 팔짱을 끼고 그냥 보고만 계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은총과 사랑을 주십니다. 단지 우리가 이를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하느님을 깨닫는 방법은 하느님의 일을 했을 때 가능합니다.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부족해도 조금씩 하느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보다 하느님을 느끼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먼저 해야 했습니다. 많은 성인 성녀가 그렇게 하셨고, 실제로 안에서 커다란 기쁨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 복음인 ‘불의한 집사’ 비유에 이어서, 재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를 설명하십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라.”(루카 16,9)라고 이야기하시지요. 세상의 재물이 종종 불의, 탐욕, 불공정과 연관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대비되는 세속적이고 일시적인 가치를 가리키기에 불의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의한 것으로 친구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언젠가 사라질 이 세상의 재물들을 하느님 뜻에 맞게 자선, 이웃 사랑 등으로 사용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으로, 성실하게 다룬다는 것은 하느님 뜻에 맞게 사용할 때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뜻에 맞게 사용할 때, 하느님께서 가장 귀한 참된 것을 맡긴다는 약속하십니다.

 

세상 삶 안에서 하느님을 느끼려면, 하느님의 일을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보다 세상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으로부터 얻게 되는 참 기쁨을 얻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로부터 멀어질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이해하지 못한 것은 소유하지 못한다(니체).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11.08.토.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두 마음으로는
한 사랑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재물은
우리를 묶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풀어주십니다.

재물은
이와 같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는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일 뿐입니다.

신앙은
기도만이 아니라,
물질의
사용 방식을
통해서도
뚜렷이
드러납니다.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의지하는
신앙은 곧
우상숭배로
빠져듭니다.

재물은
인간의 욕망을
가장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입니다.

재물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기는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익보다 관계가
성공보다 진실이
중요합니다.

재물은 우리의
주인이 아님을
깨닫는
삶과 죽음의
여정입니다.

돈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일부가
아니라,
삶 전체이시며
중심이십니다.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감사의 오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하느님을 통한
마음의 부자가
진짜 부자입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우리 마음을 환히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오늘,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고 
이르십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것이 
잔뜩 쌓였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주님의 권고이니, 
흘려듣기가 어렵습니다.

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의 재물과 하늘의 하느님을 향한
마음속의 비중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비교하고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능사인 
세상에서
무한경쟁에 시달리며 지쳐있는 우리에게
더불어, 
함께 살아갈 것을 일깨운 것이라 깨닫습니다.

당신께서 선물해 주신 이 세상은
결코 상대를 짓누르고
이겨야 살아남는 정글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넘어진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가진 것을 쪼개어 나누어
함께 기쁨을 누리며
친구가 되는 곳이라는 진리의 선포라 느낍니다.

이렇게 서로 상대의 기운을 북돋워 줄 때,
우리는 서로에게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주님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이는
참 행복한 세상을 함께,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굿뉴스

 

로마16,3-9.16.22-27 루카16,9ㄴ-15

 

하느님 중심의 삶

“돈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람이 먼저다”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영영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시편145,1)

 

오늘 시편 화답송 후렴입니다.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얼마나 부지런한 레오교황인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못지 않게 근면 성실한 말그대로 하느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입니다. 어제 교황청에서 하루만 만남시 주신 중심 메시지만도 무렷 다섯입니다.

 

“사업가들이나 전달자들은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중독을 막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찾아야 한다.”

“다스림에서 침체를 피하고, 형제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라.”

“AI(인공지능)은 창조주 하느님의 의도를 반영해야 한다.”

 

모두가 시의적절한 조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기반을 두라는 말씀들입니다. 어제 만난 피정중인 미카엘라 자매의 삶도 감동적이었습니다. 20대 말 중국땅 연길에서 30대 말 전남 함평의 알콜중독 형제에게 시집와서 4년 방통대도 졸업하고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가족을 다 살리고 성가정을 이루어 사는 자수성가형 주님의 용사같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이름 뜻에 손색없는, 하느님 중심의 영적승리의 삶을 살았던 미카엘라 자매였습니다. “사랑밖에 길이 없었네” 책을 독료했다며 두 시를 곡을 넣어 노래도 불러 줬습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1997.2. >

 

<하늘>이란 시에 이어 노래한 <하늘길>이었습니다. 두 시 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노래한 시입니다.

 

“참 많이도 굽었다

 하늘빛 찾아가는 길

 순탄대로 곧은 길만은 아니다

 첩첩의 장애물 나무들옆 좁은 틈바구니

 하늘빛 찾아

 이리저리 빠져나가다 보니

 참 많이도 굽었다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다

 거룩한 아름다움이다

 살아있음이 찬미와 감사다

 하늘빛 가득 담은 

 소나무야!”<2001.4.21.>

 

자매의 곤고했던 하느님 중심의 삶을 반영하는 시인지 참 진지하게 온 정성을 다해 불렀습니다. 참으로 시종여일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이들은 하느님 친히 보호자, 인도자되어 함께 해 주심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다음 시편도 이를 입증합니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그 지팡이에,

 시름은 가시어서 든든하외다”(시편23,4)

 

공자의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웃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덕 대신 하느님 중심의 믿음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좋은 믿음에 좋은 이웃이 계속 연결됨으로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해 강조하는바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의 우선순위입니다. 오늘 복음도 전부 돈과 관계된 것입니다. 재물이나 돈의 거부가 아닌 올바른 사용을 강조합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삶에 중심이 둘 일 수는 없습니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돈의 거부가 아니라 하느님과 돈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영적일수록 현실적입니다. 하느님의 중심의 삶에 충실할수록 땅의 현실에도 충실하여 재물 관리에 만전을 기하되 절대 인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돈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람이, 공동체가 먼저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듣고 비웃자 예수님의 경고 말씀이 우리에게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형오스러운 것이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자는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돈을 좋아하는 돈 중심의 사람은 교만할 수 뿐이 없고, 하느님께는 참으로 혐오스러운 모습입니다. 

 

언젠가 어느 자매가 먹을 것을 예상하며 무엇을 좋아하느냐 묻길래 순간 ‘돈을 좋아한다’ 말할까 하다가 ‘자매를 좋아한다’ 말했고, 즉시 ‘하느님을 좋아한다’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좋아할 때 저절로 초연하고 자유로운 무욕의 품위있는 삶에 분별력의 지혜도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의 교육도 <돈맛>보다는 <하느님맛>을 들이도록 훈련해야 함을 봅니다. 재물을 맘몬이라 불렀듯이 재물은, 돈은 사람을 노예화 중독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옛 고려말 충신 최영 장군의 어록도 생각납니다. 그러니 돈 중심의 <이해관계>로 살것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형제애 관계>로, <의리관계>로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관계가 참 놀랍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복음 선포 활동을 통해 형제애로, 의리로 맺어진 관계들입니다. 로마서를 끝내며 나누는 끝인사와 권고가 끝이 없습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느님 중심의 믿음을 굳건히 하며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과의 우정을 깊이 해줍니다. 마지막 바오로 사도의 장엄한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로마16;25,27).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루카16,9ㄴ) 
 
'재물의 올바른 사용인 자선!' 
 
오늘 복음(루카16,9ㄴ-15)은 세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곧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여라.',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의 참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 단어가 '재물'입니다. 오늘 복음은 '재물의 올바른 사용인 자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16,9) 
 
예수님의 이 말씀이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말씀으로... '내가 살아 생전에 자선을 베풀면, 자선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 훗날 나를 기억해 줄 것'이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16,13) 
 
재물은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재물은 하느님께 속해 있는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재물이 주인이 되는 것, 그래서 하느님의 자리에 재물이 자리잡고 있는 것, 이것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돈과 재물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생각했고, 재물의 소유는 그가 의롭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부지런히 돈을 추구했고, 그렇게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겼던 것입니다. 
 
'재물은 주인이 아닙니다.'
'재물은 하느님의 종이며, 가난한 이들을 통해서, 곧 자선을 통해서 하느님께 되돌려져야만 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자선에는 '물질적인 자선'이 있고, '영적인 자선'이 있습니다. 영적인 자선은 '영적인 것을 나누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너를 위해 바치는 기도'입니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위령성월'입니다.
죽은 이들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합시다! 
 
(~ 2열왕8,29) 

 

복음말씀

1독서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6,3-9.16.22-27

형제 여러분, 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4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하여 주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5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도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내가 사랑하는 에패네토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번째 사람입니다.

6 여러분을 위하여 애를 많이 쓴 마리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7 나의 동포이며 나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뛰어난 사도로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8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암플리아투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협력자인 우르바노와

내가 사랑하는 스타키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16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22 이 편지를 받아쓴 저 테르티우스도 주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23 나와 온 교회의 집주인인 가이오스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이 도시의 재정관 에라스토스,

그리고 콰르투스 형제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24)·25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26 이제는 모습을 드러낸 이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도록,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7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9-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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