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작지만 위대한 마리아의 Fiat!
천사의 전언 앞에 두 사람의 반응은 천지 차이였습니다. 사제이자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였던 즈카르야는 불신과 의구심으로 흔들렸지만, 마리아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특별한 표징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었지만, ‘봉황의 뜻을 뱁새가 어찌 알리요’ 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수용하였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은혜롭게도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1,30) 하느님은 마리아를 그냥 사랑한 것이 아니라 ‘총애’(寵愛)하셨습니다.
‘총애’란 말은 ‘특별히’ ‘유난히’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그 작음과 겸손함, 순수함과 소박함을 각별히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를 당신 구원사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도구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마리아는 순명의 모델입니다. 그녀는 하느님 뜻에 전적으로 순명하는 가운데 자신의 미래를 그분 손에 온전히 내맡깁니다. 천사 가브리엘과 주고받던 대화의 결론은 ‘예!’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는 언제나 순명을 요구하십니다. 성조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 조차도 번제물로 바칠 정도로 순명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아버지께 대한 순명으로 인한 것이었고, 이 세상을 떠나신 것 역시 순명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기쁘게 순명할 때만 참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단순하고 겸손 가득한 마리아의 순명에 대한 하느님의 상급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그 안에 거처하시는 새로운 도읍 예루살렘 성전이 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그 안에 끊임없이 살아계시는 계약의 궤로 재탄생합니다.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로운 초대,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하느님의 초대였지만, 기꺼이 응답한 마리아로 인해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은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 32-33)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 지극히 간단한 선언같지만, 단어 한 마디 한 마디가 지닌 포스가 엄청납니다. 마치 작열하는 태양이나 산더미처럼 높은 파도같이 장엄합니다.
마리아의 적극적인 동의와 협조로 인해 이제부터는 또 다른 형태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왕국이 건설될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시어, 그 시간을 끝없이 연장시키실 것입니다.
이제부터 건설될 왕국은 종래의 지상 왕국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영원한 왕국, 불멸의 왕국이며, 그 왕국의 장엄한 광채 앞에 지상의 왕권은 빛을 바랠 것입니다. 새롭게 왕좌에 좌정하실 왕은 만왕의 왕이 되실 것이며,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지니실 통치권은 한계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이토록 위대하고 장엄한 인류 구원 사업의 첫 출발점은 바로 마리아의 ‘Fiat’이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묻고 있습니까?
찬미 예수님!
제임스 애그리라는 분이 쓴 아주 흥미로운 우화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제목은 『독수리와 닭장』입니다.
어느 날 농부가 산에서 독수리 알 하나를 주워다가 자기 집 닭장에 슬쩍 넣어두었습니다.
얼마 후 알에서 새끼 독수리가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주변에 보이는 게
닭들뿐이니, 자기가 닭인 줄 알고 자랐습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흙을 파헤쳐 지렁이를 잡아먹고, 닭처럼 "꼬꼬댁"거리는 시늉을 하며 살았지요.
어느 날, 이 독수리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창공을 멋지게 활공하는 거대한 새가 보였습니다.
독수리는 넋을 잃고 말했습니다.
"와, 저 새는 정말 멋지다. 나도 저렇게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자 옆에 있던 늙은 닭이 핀잔을 줍니다.
"꿈 깨라. 넌 닭이야. 닭은 저렇게 못 날아."
결국 그 독수리는 평생 자기가 닭인 줄 알고 닭장 안에서 모이만 쪼다가 늙어 죽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 아닙니까? 만약 그 독수리가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물어봤다면 어땠을까요?
"나는 닭이라는데 왜 날개 길이가 2미터나 될까? 나의 발톱은 왜 이렇게 날카로울까?"
그때 누군가는 답했을 것입니다.
"너는 땅을 파라고 만든 게 아니라, 하늘을 날라고 만들어졌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지 않으면, 세상이라는 닭장이 규정한 대로 닭장 안에서만 살다가 죽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누구에게 묻고 계십니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질문을 던지는 그 대상이 곧 내가 믿는 '창조자'이거나 그로부터 파견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나 자신에게 묻고, 내 마음대로 산다면, 그것은 내가 나의 창조자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존재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창조자가 아닌 존재가 스스로 목적을 정하면,
결국 생존만을 위해 사는 짐승이 되거나, 쾌락을 좇다 당나귀가 되어버린 피노키오 꼴이 나고 맙니다.
동화나 영화로 유명한 '피노키오'를 보십시오.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피노키오를 만들었지만, 피노키오는 처음에는 제멋대로 움직이며 사고만 칩니다.
그가 나무 인형의 껍질을 벗고 '진짜 소년'이 된 것은 언제입니까? 바로 창조주(제페토)가 보낸 푸른 요정에게 길을 물었을 때입니다.
"어떻게 해야 진짜 소년이 되나요?" "용감하고 정직하고 남을 위하라." 피노키오는 그것을 원했던 것이 제페토 아버지임을 깨닫고는 그를 찾아나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막연히 "하느님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만남이 아닙니다.
나를 만드신 분께 "저를 무슨 용도로 만드셨습니까?
제가 오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묻는 것, 그 질문이 바로 접속 코드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설계'의 힘은 놀랍습니다. 헝가리의 교육학자 라슬로 폴가의 사례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는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세 딸을 낳기 전부터 '체스 챔피언'으로 키우겠다고 설계했습니다.
딸들은 아버지의 설계와 믿음을 받아들였고, 실제로 세 딸 모두 세계적인 체스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물론 인간이 인간을 완벽하게 설계할 수는 없기에 인권 침해의 논란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 아버지의 설계도 자녀의 인생을 이토록 바꾸는데, 하느님의 설계는 얼마나 완벽하겠습니까?
형제끼리 뭘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부모가 옆에 있는데.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바로 이 '질문의 영성'을 보여주십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덮어놓고
"네, 알겠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성과 현실을 바탕으로 설계자에게 되물었습니다.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불신이 아닙니다.
"당신의 설계가 제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합니까?
매뉴얼을 알려주십시오"라는 적극적인 요청입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라는 구체적인 답변을 들었을 때, 비로소 마리아는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며 자신의 인생 운전대를 창조주께 넘겨드렸습니다.
반면, 묻지 않고 자기 생각(Ego)대로 살았던 존재들의 슬픔을 보여주는 우화도 있습니다.
영미권 전래 동화인 『세 그루 나무의 꿈』 이야기입니다.
세 그루의 나무는 각자 꿈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보석 상자가, 둘째는 왕을 태우는 거대한 배가, 셋째는 산 꼭대기에 서 있는 높은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목수들은 그들을 베어다가 첫째는 여물통으로, 둘째는 비린내 나는 낚싯배로, 셋째는 사형틀로 만들었습니다.
나무들은 꿈이 좌절되었다고 울었습니다.
하지만 설계자의 뜻은 달랐습니다. 여물통에는 세상 가장 귀한 보석인 아기 예수님이 뉘였고,
낚싯배에는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이 타셔서 설교하셨으며, 사형틀은 온 인류의 구원을 가리키는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내 꿈보다 설계자의 뜻이 훨씬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도 처음에는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라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예레미야 1,5)
예레미야가 창조자를 만난 순간은, 자신의 부족한 현실을 보았을 때가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그려진 하느님의 설계도를 확인했을 때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창조자가 아닌 존재가, 창조자에게 묻지도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고장 난 내비게이션을 들고 길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함부로 묻지 마십시오.
이 질문은 창조자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입니다.
하느님에게 물을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그 계획을 세우신 창조주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반드시 그것을 알려줄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거울을 보며 나에게 묻지 말고, 하늘을 보며 그분께 물어보십시오.
"주님, 오늘 저를 어디에 쓰시려고 깨우셨습니까?
어떻게 해야 당신이 의도한 '진짜 나'가 됩니까?"
아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26-38: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 은총이 가득한 이, 마리아
천사의 인사,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28절)는 성경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독특한 인사이다. 이는 마리아가 단순히 은총을 받은 여인이 아니라, 은총 자체로 가득 찬(κεχαριτωμένη), 즉 은총 안에서 새롭게 지어진 존재임을 나타낸다. 성 에페소 공의회(431년)는 이 말씀을 근거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고백했다. 하느님이신 아들이 마리아 안에서 인성을 취하셨기 때문에, 마리아를 단순히 예수님의 인간적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르게 된 것이다.
2. 하와의 불순종을 되돌린 마리아의 순종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하와가 불순종으로 인간을 죽음에 넘겼지만, 마리아는 순종으로 인간을 구원에 넘겼다. … 하와의 매듭은 마리아의 믿음으로 풀렸다.”(Adversus Haereses III,22,4) 즉, 하와는 천사의 유혹에 귀를 기울여 넘어갔지만,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인류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래서 교부들은 마리아를 “새 하와”라 불렀다.
3. 성령의 역사와 성체성사
천사는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35절)라고 말한다.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 잉태되었듯, 오늘도 성령은 미사 때 빵과 포도주 위에 내리신다. 성 요한 다마스쿠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성령께서 거룩한 동정녀 위에 내려오신 것처럼, 지금도 성령은 제대 위에 내려오시어 제물을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신다.”(De fide orthodoxa IV,13) 따라서 마리아의 태중에 그리스도께서 오셨듯이, 매번 성찬례 때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의 안에 오셔서 머무신다.
4.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마리아의 “응답”(Fiat!)은 믿음의 가장 큰 모범이다. 성 베르나르도는 묵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온 세상의 구원이 당신의 응답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 ‘예’라고 말씀하십시오. … 온 창조가 그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In laudibus Virginis Matris Hom. 4,8) 마리아의 믿음은 단순히 개인적 순종이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5. 결론 – 우리 삶의 “응답”
마리아는 특별한 초인적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한 시골 처녀였지만, 그 평범함 안에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고백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부르심이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의 믿음은 교회의 길이 되었다.”(Redemptoris Mater 5항) 우리가 일상에서 “주님,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할 때, 하느님은 우리 안에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써 내려가실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동남아 일대에 큰 태풍이 일어 엄청난 피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망, 실종이 자그마치 7,000명 이상이었고, 2백만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경제적 피해는 28조 원에 달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사람들은 열심히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함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찾아온 봉사자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땀을 흘리며 복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어떤 서양인들이 이곳을 찾아 물놀이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저 사람들은 인간도 아냐.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놀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현지 반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폐허가 된 이곳까지 와서 돈을 쓰는 관광객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입으로만 동정하는 사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했습니다. 비판을 통해서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에 대해서도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나의 작은 머리로 하는 판단이 하느님의 일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 탄생 예고’의 내용입니다. 구세주가 세상에 오시는 결정적인 순간이자, 인류 구원의 여명이 밝아오는 장면입니다. 먼저 천사가 성모님을 찾아온 사건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태어날 아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선포하지요. 그 이름을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인 ‘예수’라고 알려주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 겸손을 드러냅니다. 이에 천사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라고 대답합니다. 성모님의 대답은 아주 명확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자신을 온전히 낮추어 하느님의 소유임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자유 의지를 하느님 뜻에 완전히 일치시키는 순종을 보여주십니다. 성모님의 이 모범을 우리 역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하느님의 일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일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에픽테토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12.20.토.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루카 1,31)
먼저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잉태란
없음에서
있음으로
건너가는
첫 순간입니다.
잉태는 사랑을
배우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기다림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기다림 자체가
우리 삶의
거룩한 시간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간이
사실은 구원의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당신을
우리들에게
맡기십니다.
믿음은 서두르지 않고,
사랑을 신뢰합니다.
잉태는 서두름을
거부합니다.
잉태를
존중한다는 것은,
성숙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잉태되도록
허락하는
우리의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가장 연약한 희망이
우리를 구원하는
참된 희망입니다.
잉태와 성탄은
하나의
구원 사건을
이루는
시작과 완성입니다.
성탄은
잉태 없이는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잉태와 성탄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잉태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만나는
참된 기쁨입니다.
기다림과
인내로 빚어지는
참된 기쁨입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엄청난 응답으로
세상에 구세주를 선물하신
마리아의 삶을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온 삶을 봉헌했고 극진한 믿음을 살았음에도
결코 평탄하지 않았던 일생을 기억합니다.
마리아의 삶에서
오해와 두려움과 위험과 아픔을
면제해주지 않으신
주님의 뜻을 헤아려봅니다.
그리고 느낍니다.
긴 세월, 곤고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
성모님께도
주님의 뜻을 곰곰이 생각하며
간직하려는 믿음의 열정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끊임없이 묻고 또 물으며
거푸거푸
끊임없이 기도드리며 매달리는
어둠의 시간도 거쳤을 것입니다.
오늘, 하느님의 알 수 없는 뜻을
기꺼이 수용하였던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하느님의 뜻에도
“예”라고 응답해 드리기 위해서
우리 성모님,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성모님처럼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성모님을 닮은
눈물의 기도를 바치며
제 삶을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해 주시기를 열망하겠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입었다."(루카1,30)
'마리아의 순종인 피앗(fiat)!'
오늘 복음(루카1,26-38)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입니다.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리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1,30-32)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1,34)라는 마리아의 응답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잉태 소식은 참으로 엄청난 소식입니다. 처녀 마리아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소식입니다.
천사가 친척 엘리사벳의 잉태 소식을 전하면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1,37)라고 말하자, 마리아가 예수님의 잉태를 받아들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마리아의 순종인 피앗(fiat)!'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먼저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1,34)
하느님의 일은 내 힘으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의 힘, 성령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에서 나오는 힘으로 '순종'합니다.
믿음의 힘, 성령의 힘으로 두려움을 물리치고, 하느님 부르심에 우리도 마리아처럼 순종합시다!
복음말씀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7,10-1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