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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작성자김종필라파엘|작성시간26.06.06|조회수45 목록 댓글 0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께서 당신께서 담당하시던 교구 내 가장 오지 본당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워낙 시골인데다, 오랫동안 본당 사제도 없어 신자들의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제 부족으로 인해 교구청에는 파견할 사제가 없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그 지역의 젊은 농부 한 사람을 뽑아 속성과정으로 사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사제로 서품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 본당 주임으로 발령을 냈습니다.

 

그러나 주교님의 마음이 영 껄끄러웠습니다.

괜한 짓을 했나 후회도 되었습니다.

속성으로 교육시킨데다, 실습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파견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주교님은 평복 차림으로 그 본당을 찾아가 그 사제가 미사 드리는 모습을 몰래 지켜봤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교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주교님은 그동안 수많은 사제들이 봉헌하는 미사를 봐왔지만, 그 사제처럼 세상 경건하고 진지하게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미사 드릴 때 그 사제의 눈은 별처럼 빛났고, 열정과 사랑이 가득 담긴 강론을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에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은 제단 앞으로 나아가 그 사제 앞에 무릎을 꿇고 강복을 청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주교님이란 것을 알게 된 사제는 깜짝 놀라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주교님께서 제게 강복해주셔야지, 어떻게 제가 주교님을 강복할 수 있단 말입니까?”

 

주교님은 다시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신부님이 나를 강복해주십시오.

저는 신부님처럼 열정과 사랑으로 미사를 드리는 사제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제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아니, 주교님, 한 사제가 어떻게 열정과 사랑 없이 미사성제를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게 말이 되는 것입니까?”

 

저만해도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열정 없이, 사랑 없이, 미사를 집전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저 습관처럼 타성에 빠져 앵무새처럼 경문을 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 성체성사에서 무슨 기적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겠지요.

사제가 열정이나 사랑 없이 미사를 집전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신자들도 열정과 사랑 없이

미사성제에 참여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아벨의 정성스러운 제사는 기쁘게 받아 들이셨지만 건성으로 바친 카인의 제사는 거부하셨습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봉헌인 성체성사에 온몸과 마음, 모든 에너지와 정성을 기울이는 성체 성혈 대축일이 되길 기원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성체가 신앙의 본질이 되게 하려면

찬미 예수님!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적이고도 무서운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가톨릭교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뼈아픈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분명 "성체가 아니면 구원이 없다, 생명이 없다"라고 목숨을 걸고 말씀하셨는데, 수많은 신앙인에게 성체성사는 그저 미사 중간에 치르는 하나의 거룩한 예식, 혹은 내 신앙생활을 치장하는 '액세서리' 정도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성체를 안 모신다고 해서 당장 내 삶이 죽을 것처럼 애통해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도대체 왜 성체성사의 의미가 이토록 축소되고 힘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왜 우리는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서도 영적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 치명적인 영적 질병의 원인을 파헤치고, 성체가 어떻게 우리를 완벽한 행복으로 이끄는지 깊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1940년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 르네 스피츠(Rene Spitz) 박사는 당시 고아원과 보육원에 수용된 아기들을 대상으로 생존과 발달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시설의 환경은 위생적으로 완벽했습니다. 아기들에게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칼로리와 영양소가 완벽하게 계산된 최고급 우유와 이유식이 공급되었습니다. 병균이 옮을까 봐 간호사들은 아기들을 안아주지 않고, 요람 옆에 우유병을 고정해두어 아기들이 스스로 빨아먹게 했습니다. 육체적인 생존에 필요한 '양식'은 100퍼센트 완벽하게 제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 완벽한 양식을 먹고 자란 아기들의 무려 37퍼센트가 2년 안에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한 것입니다. 살아남은 아기들조차 신체 발달과 지능이 심각하게 지연되었고, 허공을 보며 무의미한 몸짓만 반복하는 정서적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의학계는 이 병을 '호스피탈리즘(Hospitalism, 시설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스피츠 박사는 원인을 찾기 위해 또 다른 집단을 관찰했습니다. 바로 여성 교도소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는 아기들이었습니다. 환경은 고아원보다 훨씬 비위생적이었고, 영양분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아기들은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튼튼하고 명랑하게 자라났습니다.

차이가 무엇이었을까요? 고아원의 아기들은 차가운 유리병에서 '음식(칼로리)'만 먹었지만, 교도소의 아기들은 엄마의 품에 안겨 엄마의 심장 박동을 들으며, 눈을 맞추고 체온을 나누며 양식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실험은 인류에게 아주 명확한 진리를 선포합니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주는 양식은 단순한 영양분이 아니라 '어머니의 생명' 그 자체입니다. 아기가 엄마의 젖을 갈구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배가 고파서가 아닙니다. 그 젖을 통해 엄마의 따뜻한 품을 느끼고, '엄마와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관계'를 확인하며 그 사랑 안에 '머물고 싶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입으로 들어오는 칼로리가 아니라, 나를 품어주는 거대한 사랑과의 '연결(머무름)'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성체성사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 중학생 아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해서 매일 저녁 정성껏 따뜻한 밥상을 차립니다. 어머니의 유일한 바람은 아들이 밥을 먹으며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잘거리며 이야기하고, 엄마와 눈을 맞추며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엄마가 내일 사주기로 약속한 '최신형 스마트폰' 생각뿐입니다. 아들은 식탁에 앉자마자 스마트폰 모델을 검색하며 밥을 마시듯 욱여넣습니다. 엄마가 "밥 맛있니?" 하고 물어도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일 뿐, 마음은 온통 대리점에 가 있습니다. 밥투정까지 부립니다.

이 아들에게 엄마가 차려준 정성스러운 밥상이 무슨 생명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밥은 그저 스마트폰을 얻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통과 의례요, 엄마의 식탁은 지루한 대기실에 불과합니다. 사랑이 빠져버린 양식은 의미를 상실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교회의 민낯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미사에 나와 성체를 모시면서도, 정작 예수님이라는 분 자체를 사랑하고 그분과 머무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온통 주님이 주실 수 있는 '스마트폰', 즉 내 사업의 성공, 내 자녀의 명문대 합격,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건강, 벼락부자가 되는 로또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세상에서 얻어낼 세속적인 축복이 더 우선순위가 되었을 때, 성체성사는 자연스럽게 귀찮은 액세서리로 전락하고 맙니다. 빵을 주시는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내 탐욕의 배를 채워줄 기적만을 구걸하니 우리 영혼이 시설에 수용된 고아들처럼 영적 아사(餓死)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주님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들에만 미친 듯이 매달리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영혼의 본질적인 정체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인간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욕구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출발합니다.

거리를 떠도는 고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아는 늘 불안합니다. 오늘 밤에 잘 곳이 있을지, 내일 먹을 빵이 있을지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고아의 본능은 항상 주변의 것을 '긁어모으고 소유하는 것'을 향합니다. 내가 많이 가져야만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상속자, 곧 '하느님의 친자녀'라는 정체성을 완벽하게 깨달은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내 아버지가 우주의 주인이신데, 내가 내일 먹을 빵 걱정을 하겠습니까? 하느님이 내 아버지임을 진짜로 믿는다면, 그는 더 이상 세상의 얄팍한 돈이나 성공, 타인의 평가에 목매달지 않습니다.

우리가 엉뚱한 스마트폰(세상의 욕망)에만 집착하며 성체성사를 무시하는 이유는, 내가 '하느님의 자녀'요 '또 다른 그리스도'라는 이 압도적인 정체성을 아직 믿지 못하고, 여전히 내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의 고아'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하는 모든 은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시며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만나는 그들이 하느님의 특별한 돌봄을 받는 '선택된 자녀'임을 증명하는 거룩한 하늘의 양식이었습니다. 엄마의 젖과 같은 것이었지요.

그런데 민수기 1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끔찍한 불평을 쏟아냅니다. "아, 고기 좀 먹어 보았으면!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지금 우리 눈에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기운이 다 빠져버렸구나." (민수 11,4-6 참조).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만나)을 먹으면서도,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이집트의 노예'라는 비참한 정체성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거부하니, 하느님이 주신 거룩한 양식이 입에 맞을 리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유인의 양식인 만나를 버리고, 노예 시절에 채찍을 맞으며 주워 먹던 파와 마늘(세상의 자극적인 욕망)을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결국 그 영적 이식증에 걸린 자들은 약속의 땅에 단 한 명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의 모래 무덤 속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출처: 『주석 성경』 민수기 11장)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의 쓰레기 같은 욕망을 끊어내고, 내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완벽한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해답이 바로 '올바른 성체성사'입니다. 올바른 성체성사를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나는 누구인가?’를 해결하기 위해 다가가야 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머물고 싶은 마음’입니다. 성체가 좋다면, 성체조배는 더 좋습니다. 하느님 자녀 됨의 마음을 더 오래, 깊이 간직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 복음 강해』에서 이렇게 일갈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빵을 먹는 자는, 빵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먹는 것입니다. 빵을 주신 분을 영혼의 안방에 모시지 않고 빵의 단맛만 빨아먹고 도망치는 자는, 결코 생명의 식탁에 영원히 앉을 수 없습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복음 강해』).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요한 6,51-58: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

 

1. 성체의 신비: 하느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얻는 백성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이다. 이 대축일은 단순히 성체의 신앙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교회의 중심인 성체성사의 신비를 새롭게 깨닫고 그 생명 안에 살도록 부름을 받는 날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을 살린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 8,3)라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들의 배고픔을 채운 것은 만나였지만, 그 만나는 말씀의 표징이었다. 그 말씀은 하느님의 약속이었고, 그 약속은 하느님의 충실함 안에서 성취되었다. 이제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요한 1,14) 그리고 그분은 더 이상 하늘에서 떨어지는 음식이 아니라, 직접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주셨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의 신비다.

 

2.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 생명의 실재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51)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드러나는 계시의 핵심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을 아멘이라 응답하며 받는다. 그러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는 것은, 너희 자신이 그분이 되기 위함이다.”(Sermo 272 요약) , 성체는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이며, 그분을 받아 모신다는 것은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는 실제적 친교를 뜻한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는 교리 교육서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빵과 포도주가 단순한 상징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간구로 인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너는 단순히 감각으로 보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여라.”(Catecheses Mystagogicae IV, 36)

 

3. 그리스도의 몸과 피: 완전한 자기 증여

 

유다인들은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52)라며 놀란다. 이는 인간의 이해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신비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신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55) 이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신 사랑의 절정을 뜻한다. 유다 율법에서는 피가 생명이라고 하여(레위 17,11), 피를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당신의 피, 곧 생명 자체를 우리에게 내어주심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에 우리를 참여시키신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성체성사는 십자가의 희생을 현재화(現在化)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완전히 전달하는 표징이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가장 완전한 길이다.”(Summa Theologiae III, q.73, a.3) 이 피는 용서의 피이며, 생명의 피다. 우리는 그분의 피를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고, 그분 안에 머무르게 된다.

 

4. 성체의 생명: 영원한 생명에의 참여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51,54,58)라고 강조하신다. 이는 단순한 내세적 약속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부활 생명의 참여를 뜻한다. 성체를 모실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실제로 참여하고, 그분의 사랑과 일치를 살아간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증언한다. “우리가 그분의 피와 살을 받아먹음으로써, 우리 육체도 부활할 것이다. 성체성사는 썩지 않는 생명을 우리 안에 심는 씨앗이다.”(Adversus Haereses, IV,18,5) 이처럼 성체는 우리 몸의 부활과 하느님의 생명에의 참여를 약속하는 구원의 성사다.

 

5. 성체와 교회의 일치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7) 성체성사는 단지 하느님과의 일치만이 아니라, 서로 간의 일치와 형제적 사랑의 원천이다. 성체는 교회를 하나로 만들고, 교회는 성체 안에서 자신을 인식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교회는 성체로 산다: Ecclesia de Eucharistia”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성체성사는 교회를 세우며, 교회는 성체성사를 세운다. 교회가 성체를 거행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새로운 인류가 태어난다.”(21) 그러므로 성체 안에서의 일치는 단순한 감정적 유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우리를 묶는 신적 일치의 실재다.

 

6. 성체의 목적: 우리가 그리스도가 되도록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체의 신비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아멘이라 대답한다. 그대의 아멘나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응답이다.”(Sermo 272 의역) 성체성사는 우리를 단순히 은총 상태로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어 세상 안에서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는 성사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의 존재론적 목적이며, 신화(神化, theosis)의 길이다.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1요한 3,2) 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살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7. 결론: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정이자, 교회의 생명 중심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일치하고, 형제들과 일치하며, 부활의 생명에 참여한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단순한 전례의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하느님 현존의 신비다. 성체이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미사 때마다 이렇게 고백하자. “주님, 제 안에 오시기를 원하시는 당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제 삶이 당신의 몸이 되어 세상에 당신을 전하게 하소서.”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보통 ‘손님은 왕이다’라면서 고객 중심의 운영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매장의 점원들은 손님에게 도도하고 쌀쌀맞게 대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오히려 고객이 점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구하기 힘든 유명 가수 콘서트 티켓을 주고, 여기에 비행기표까지 얹어준다고 합니다. 말이 안 되죠? 실제로 있습니다. 에르메스 벌킨 백 판매장에서는 그렇다고 합니다.

 

이 가방의 가격은 수천만 원에 달하고, 돈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살 수 있는 가방도 아닙니다. 손에 넣으려면 보통 1년 이상 기다려야 하고, 그전에 에르메스의 다른 제품 여러 개를 사야 하고, 점원에게도 잘 보여야 합니다. 이곳 점원의 불친절을 오히려 “역시 고급 매장은 달라.”라고 말합니다.

 

명품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요? 제작 비용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제품의 기능,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품위와 자존심이 아닐까요? 이런 명품보다 더 특별한 품위와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가장 커다란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이합니다. 성체성사의 제정과 그 신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 대축일에 교회는 요한복음의 ‘생명의 빵’을 선포합니다. 이 부분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그래서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51)라고 선포하시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 6,52)라면서 거센 반발을 보입니다. 율법에서는 동물의 피조차 마시는 것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하물며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예수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단순히 비유이고 상징이라고 해명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강하게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라고 말씀하시지요. 반드시 우리가 주님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보통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은 소화되어 나의 일부가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양식인 성체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성체가 우리 안으로 들어와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 안으로 흡수되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성체가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귀하고 특별합니다. 이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체를 모심으로 특별해졌습니다. 그 특별함을 담아 고귀함과 품위를 드러내는 명품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이 세상에 잘 살려고 왔지, 오래 살려고 온 게 아니야(최윤필).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6.07.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 6,55)

성체 성혈의 신비는
하느님과 하나 되어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하느님 사랑입니다.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자기증여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우리가 참여하게 됩니다.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체성사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입니다.

우리와 하나 되시기 위해서
살과 피로 오십니다.

성체성사는
가톨릭 신앙의
중심입니다.

우리를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생명의
거룩한 가치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생명을 세상 안에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매 순간 사랑으로
깨어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사랑으로 살아내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삶이 곧
성체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삶이고,
그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의 생명으로 만나는
사랑의 가장 좋은
감사의 신비입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가끔 힘이 빠지고 지칠 때,

오늘 예수님의 마음을 떠올리곤 합니다.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외치시던

예수님의 표정을 그려보곤 합니다.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우리 마음을 좀 외롭게 하더라도

우리 심사를 심히 괴롭게 하더라고

우리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더라도 개의치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유혹도 이겨낼 것을 약속하신 주님께

내 몸을 빌려드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오신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늘 승리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저렇다...

말도 많고 해석도 다양한 삶의 정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닌 사랑과 믿음이 세상을 살리는

예수님의 밑천입니다.

명심합시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6,55)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자!' 
 
오늘 복음(요한6,51-68)은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6,51.55)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성 목요일 저녁에 최후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온 존재를 내어 놓으신 사랑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매일 사제의 손을 통해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기념하고 묵상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가는 힘'이며,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힘'입니다.
그 힘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매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십니다. 
 
'우리는 이 지극한 사랑의 현존을 얼마나 믿고 있으며,
이 사랑을 먹으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가?' 
 
성체성사, 곧 미사의 본질은 성체를 합당하게 받아모시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고 부활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이 미사에 참여하는 근본이유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사제를 존경해야 하는 근본이유입니다. 
 
이 근본이유 때문에 우리는 미사에 기쁘게 참여하고,
사제와 함께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미사에 참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고맙습니다! 
 
첫 영성체를 하는 어린이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놀라운 성찬의 성사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성체 성혈의 신비를 공경하게 하소서."(본기도) 
 
(~ 욥기14,22) 

 

 

복음말씀

1독서

<하느님께서는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몰랐던 양식을 먹게 해주셨다.>

신명기의 말씀입니다.8,2-3.14-16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4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15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

16 또 그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너희가 먹게 해 주신 분이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51-58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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