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바오로 사도의 오른팔 바르나바!
예루살렘에 본산을 두고 있었던 그리스도교 모공동체이자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최초로 정착되기 시작한 안티오키아 공동체에 큰 관심, 즉 기도와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교회는 신생 안티오키아 교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감독 한 명을 임명했는데, 그가 곧 바르나바였습니다.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으며, 바르나바는 별명입니다.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용기를 고취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그는 키프로스 출신이고, 직업은 레위계 성직자였습니다.
금수저 가문 출신으로 예루살렘에 금싸라기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수려한 용모에 탄탄한 학문, 깊은 신앙 등, 그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당시의 대세남이었습니다.
원래 바르나바는 열두 사도의 일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두 번 씩이나 사도라는 호칭으로 기록될 만큼, 교우들로부터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깊은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모두 팔아 사도들에게 갖다바쳤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된 그는 초대교회의 한 멤버로서 날개를 달고 열심히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의 큰 업적 중에 하나는 예루살렘 모 교회 공동체로부터 홀대받고 의기소침해 있었으며, 곤경 중에 처해 있던 바오로 사도를 찾아간 일입니다. 바르나바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르소로 바오로 사도를 찾아갔습니다. 바르나바는 긴장 관계에 놓여있던 예루살렘 모교회 공동체와 바오로 사도 사이를 부드럽게 중재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와 바오로 사도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만 1년 동안 의기투합했습니다. 두분의 합심 결과 안티오키아 교회 공동체는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신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교회 공동체 조직도 안정되고 강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르나바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노력으로 첫 번 째 해외 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었고,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의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바오로라는 큰 인재를 알아봤고 지지한 것이 아닐까요? 바르나바 사도는 지금은 비록 곤경 중에 처해 있지만, 바오로야말로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사로서 적임자임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를 찾아갔고, 용기를 불어넣고 격려했으며, 일으켜 세웠습니다.
또한 바르나바 사도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유다 세계를 넘어 이방인 세계로 문호가 활짝 개방될 수 있도록 바오로 사도와 함께 완고했던 예루살렘 모 교회 공동체를 설득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가 이 모든 일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가 착한 사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깊은 믿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10,7-13: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1. 바르나바의 소명과 정체성
사도행전은 바르나바를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이라고 증언한다. 그의 별명 “바르나바”(위로의 아들)는 단순한 애칭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요약한 영적 정체성이다. 그는 재산을 나누어 공동체에 봉헌했고(사도 4,36-37), 바오로 사도를 공동체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교회의 일치를 위해 다리를 놓았다. 이 점에서 바르나바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초대 교회가 성령의 인도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사도들의 덕행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만을 위해 살았다.”(In Acta Apostolorum Hom. 25 의역) 바르나바는 바로 이런 사도의 전형을 보여 준다.
2. 거저 받은 은총과 거저 주는 삶
오늘 복음의 핵심 말씀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8절)이다. 은총(Gratia)은 결코 거래적 보상이 아니라, 무상의 선물이다. 따라서 제자는 그 받은 은총을 다시 무상으로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받았으니, 그 선물을 다시 아무 대가 없이 주어야 한다. 은총은 나눌수록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충만해진다.”(Sermones de Gratia 의역) 바르나바의 삶은 바로 이 말씀의 살아 있는 증언이었다.
3. 사도의 단순함과 자유로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지팡이도, 여벌 옷도, 돈주머니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단순히 가난을 이상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자유로움을 가르친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주석한다. “그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떠난 것은, 인간적인 무기로 무장하지 않고 하느님의 힘으로만 싸우게 하기 위함이었다.”(Hom. in Matth. 의역) 또한 초대 교회의 문헌인 디다케는 참된 사도와 거짓 예언자를 분별하는 기준으로 탐욕과 이익 추구를 언급하며, 복음 선포자는 청빈과 무상이 본질이라고 가르친다(디다케 11,3-6 의역).
4. 교회의 가르침과 오늘의 적용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은 이렇게 강조한다. “평신도들은 받은 은혜를 거저 나누며, 말과 행실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세상을 복음의 정신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3항 요약) 바르나바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거저 받은 자로서, 공동체를 세우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며, 일치를 위해 힘쓴 참된 교회의 모델이 되었다. 오늘 우리 역시 같은 부르심을 받고 있다.
5.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성 바르나바의 삶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받은 은총을 ‘내 것’으로 움켜쥐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을 계산하거나 보상과 교환의 차원에서 이해하지는 않는가? 내가 가진 시간과 재능, 재물을 거저 나누며 이웃에게 ‘위로의 아들·딸’로 살고 있는가? 바르나바처럼 우리의 존재가 공동체 안에서 ‘위로와 평화의 통로’가 될 때, 우리는 복음의 진정한 증인이 될 수 있다.
6. 맺음말
성 바르나바는 자신의 소유와 삶 전체를 거저 내어주며, 복음을 위하여 마침내 피까지 흘린 증인이었다. 오늘 우리도 그의 전구를 청하자. 우리가 받은 은총을 거저 나누고, 세상에서 하늘 나라를 드러내며,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작은 사도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8절)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가 모은 참모는 대부분 대통령 자리를 놓고 싸우던 라이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내각을 사람들이 ‘적수들이 모인 팀’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뛰어난 정치가들이지만, 링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을 모아 링컨은 하나의 팀이 되게 했습니다. 그 방법을 역사학자들은 그의 유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겸손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상원의원 선거를 위한 공개 토론에서 상대 후보가 링컨을 향해 ‘이중인격자’라며 비난했습니다. 이 말에 링컨은 웃으면서 “솔직히 제가 두 얼굴의 이중인격자라면 이따위 얼굴을 내놓고 다니겠습니까?”라면서 스스로 자기 비하를 합니다.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유머로 풀어나갔습니다. 그래서 적대자들과도 함께 최고의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화내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화합의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이를 위해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 겸손이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모두를 포용하시고 이로써 하나의 팀을 만드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님의 모습을 우리 역시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철저히 자기를 낮추는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오늘은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입니다. 성인께서는 자기 재산을 모두 팔아 초대 교회 공동체에 바치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선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철저히 주님의 말씀을 따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 10,7)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메시지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상이나 철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명을 그대로 이어받아 수행하는 대리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돈, 여행 보따리, 여벌의 옷, 심지어 신발과 지팡이조차 지니지 말라고 하시지요. 이는 물질적 준비에 의존하지 말고, 선교 여정을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와 돌보심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태 5,12)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를 낮추는 사랑을 갖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이를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가요?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잘 전하고 있을까요? 자기를 낮추는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무신자들이 거부하는 하느님은 감사하게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왜곡된 하느님 상이다(카를 라너)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6.11.목.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물이 고이면 썩고,
흐를 때 비로소
맑아집니다.
우리의 삶 또한
철저히 거저 받음에서
시작됩니다.
맑은 하늘도 거저이고,
시원한 바람도 거저이며,
빛나는 유월의 햇살도
거저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주신 선물입니다.
나눔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길입니다.
하느님께 거저 받은 사랑을
세상에 거저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 성장하고,
사랑을 나눌 때 성숙해집니다.
은총은 움켜쥘수록 줄어들고,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신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은총은 소유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누라고 주어진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계산과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손해와 이익의 경계를 넘어서는
참된 자유로 이끄십니다.
받은 은총을 기억하는 사람은
감사하며 살고, 감사하는 사람은
기쁘게 나누며 살아갑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참된 사명입니다.
참된 신앙은 거저 받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저 나누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사도11,21ㄴ-26;13,1-3 마태10,7-13
하느님의 선물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인 우리들”
“삶은 선물이냐 짐이냐?”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할 질문입니다. 누구나 원하는바 짐이 아닌 선물 인생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로 살 때 선물인생입니다. 아주 예전 써놨던 자작 애송시 <메꽃>이 아름다운 선물인생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6-8월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팔꽃 비슷한 야생화가 메꽃입니다.
“이 가지 저 가지
가리지 않고
하늘로 가는 여정의 다리로 삼아
분홍색 소박하게
하늘 사랑 꽃 피어 내며 하늘로
또 하늘로
오르는
주님의 사랑
메꽃!”<1997.8.21.>
무려 여기 요셉수도원에서 29년 전, 49세 때 쓴 시지만 시공을 초월하여 여전히 공감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다운 자유롭고 홀가분한 선물 인생을 상징하는 메꽃입니다. 오늘은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입니다.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로서 성인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이 다음 묘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안티오키아 교회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성인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니 천리향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바르나바 사도였음을 봅니다. 타르수스로 가서 잠시 고립되어 있던 바오로를 구출해온 바르나바에게서 그의 착한 심성도 엿볼 수 있습니다. <위로의 아들>, <격려의 아들>이란 바르나바 이름 뜻대로 배려 깊고 낙천적인 성격의 인물이었습니다. 바르나바는 새로 개종한 바오로를 도와 그와 함께 잠시 1차 선교여행에 동반했으며 전통은 그가 60년대 치프러스에서 순교했다고 전합니다. 다산 정약용 현자의 조언이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웁니다.
“비범한 진리는 찰나의 깨달음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축적된다.”
“궁리窮理란 심오한 이치를 탐색하며 만 가지 변화를 섭렵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행하는 도리를 헤아려 말없이 마음속에서 살피는 것이다.”
참으로 평범한 일상을 깊이 있게 주님의 직제자에 손색없이 주님의 제자다운, 사도다운 삶을 살다가 순교한 바르나바 사도야 말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 파견 받는 사도들을 통해 하느님의 선물로서 그들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제자이자 사도로서 이들의 선물인생의 특징을 살펴봅니다.
첫째, 분명한 “목표 의식과 방향”을 지니는 것입니다.
우선적인 것이 삶의 궁극 목표와 방향입니다. 목표와 방향이 선명해야 방황하거나 표류함이 없는 역동적인 삶이 됩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합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이미 지금 도래하기 시작한 하늘나라를 살 때 역동적인 복음 선포의 삶입니다.
둘째,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참 자유로운 선물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고,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거저 받은 선물 인생, 모두 날마다 나누며 살라는 것입니다. 앓는 이들, 죽은 이들, 나병환자들, 마귀들이 상징하는바 참 깊고 넓습니다. 도대체 여기게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유형무형의 앓는 이들이요 죽은 이들이요 갖가지 종류의 나병환자들이요, 마귀 들린 이들이 바로 오늘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어둡고 병든 실상입니다.
셋째, 환대의 사랑에 자신을 맡기고 무소유의 영성으로 홀가분한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할 때 저절로 무소유, 무욕의 삶입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말 그대로의 무소유는 힘들더라도 무소유와 무욕의 정신과 영성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무욕의 지혜, 무욕의 자유입니다. 탐욕의 무지가 우리를 눈 멀고 무겁고 불편하게 합니다.
넷째, 주님의 평화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참 좋은 선물이 주님의 평화입니다. 주님의 제자다운 사도다운 삶이 평화의 선물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평화를 전하는 삶, 이웃에게 존재 자체로 주님의 평화가 되는 삶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평화가 이들을 치유하고 온전하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요,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가 우리의 영예스런 신원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참 좋은 사랑의 선물인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사도로 살게 해 주십니다. 아멘.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8ㄷ)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착한 사도가 되자!'
오늘 복음(마태10,7-13)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7-8)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태10,9-10ㄱ.12)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열두 제자들이 드디어 세상 안으로 파견됩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지만, '사도'는 '세상 안으로 파견된 이'로서, 예수님을 따름과 동시에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제자인 동시에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가야 하고,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을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 사도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실했던 '성 바르나바 사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독서(사도11,21ㄴ-26; 13,1-3)는 바르나바 사도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11,24)
'그리스도인'은 어떤 지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도가 되려면 지금 여기에서 내가 먼저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바르나바 사도처럼 착해야 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 자체가 복음화'입니다.
오늘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착한 사도가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 욥기27,23)
복음말씀
제1독서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1,21ㄴ-26; 13,1-3
그 무렵 21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