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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작성자김종필라파엘|작성시간26.06.15|조회수31 목록 댓글 0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비록 대죄를 지었어도...

아합왕과 그의 아내 이제벨이 합세해서 간계를 꾸며 아무 죄도 없는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밭을 차지하는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 듭니다.

세상에 어떻게 한 나라의 왕이며 왕비란 자들이 그토록 비겁하고 옹졸하며 사악할 수 있는지? 인간이 얼마나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는지, 인간말종의 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느님은 정의롭고 공평하신 분, 악의 세력이 더 확장하고 활개를 치도록 마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를 통해 대죄인들에게 마치 철퇴처럼 강력한 펀치를 날리십니다.

”주님이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오...아합에게 딸린 사람으로서 성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하늘의 새가 쪼아 먹을 것이다.“

엘리야 예언자의 강력한 경고에 아합은 다행히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고개를 숙입니다. 자신의 옷을 갈기갈기 찢고 맨몸에 자루 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자루 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고, 풀이 죽은 채 돌아다녔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참 묘한 분이십니다. 그토록 사악하고 악랄한 아합이었지만, 갑작스레 한풀 꺾인 그의 모습에 강한 연민과 측은지심을 느낍니다. 그의 뉘우치는 모습에 당신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매일 밥 먹듯이 죄를 짓고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참으로 큰 위로와 힘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가슴을 치는 우리를 보시고, 진노하시고 벌하시려는 당신 마음을 바꾸십니다.

인류 역사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부족하고 부실한 왕이었지만, 그래서 부인 이제벨의 꼬임에 넘어가 인간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부끄러운 행동으로 하느님의 진노를 산 아합왕이었지만, 그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의 무게가 엄청납니다.

그는 비록 대죄를 지었지만, 예언자 엘리야의 경고에 즉시 행동을 바꾸었습니다. 하느님의 진노 앞에 크게 가슴을 치며 자신을 바짝 낮추었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진노는 그의 후대에게로 미뤄졌습니다.

우리의 악행으로 인해 크게 진노하시면서도, 가련하고 나약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너그러운 마음 앞에 깊은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할 수 있었는데 할 수 없었다고 믿었다면 
  
어느 회사의 입사 시험문제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당신은 폭우가 거세게 몰아치는 밤에 운전하고 있습니다.
마침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그곳에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1. 죽어가고 있는 듯한 할머니
2.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의사
3.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 
 
당신의 스포츠카에는 단 한 명만을 태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태우겠습니까?
선택 후 설명하세요.
당신은 위독한 할머니를 태워 그의 목숨을 우선 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의사를 태워 은혜를 갚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회가 지나고 나면 정말로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200명의 경쟁을 제치고 1등으로 채용된 사람이 써낸 답은 이렇습니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 가도록 의사 선생님께 차 키를 드리죠.
그리고 난 내 이상형과 함께 버스를 기다릴 겁니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답이 보이고 할 수 없다고 믿으면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위와 같은 문제를 맞힐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일 것입니다.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음란한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화를 절대 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다면 하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0살을 갓 넘은 마리아 고레티 성녀도 자신을 죽어가면서 자신을 수십 차례 찌른 청년을 용서하고 같이 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믿으면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고 하셨기에 우리는 그런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시카고에 사는 한 부자가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전문의인 로렌스 박사를 초빙했습니다.
로렌스 박사가 정성스레 이 아들을 치료하여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년도 부잣집 아들과 같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신문을 보고 로렌스 박사가 시카고에 머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의 어머니는 돈이 많지 않았기에 자신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 저명한 의사를 초대한다는 것은 꿈을 꿀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로렌스 박사는 산책하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 그 소년의 집에 잠시 들러 쉬기를 청했습니다.
로렌스 박사인 줄 몰랐던 소년의 어머니가 냉대하며 거절하여 병을 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이 어머니는 자신이 쫓아 보낸 사람이 로렌스 박사였음을 알고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사제로 불러주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거부하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혼자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할 수 없었다고 믿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사제가 되어보니 혼자 사는 것이 더 편한 것 같고 오히려 결혼해서 사는 것이 더 힘들어 보입니다.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길에 반드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은 영원한 후회를 남깁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이 보이지만, 할 수 없다고 믿으면 주님께서 도와주시려 해도 알아보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맙니다. 
 
사막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멩이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면, 당신은 내일 기쁘면서 또 후회스러울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 사람은 길에 떨어진 돌멩이 몇 개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날 주머니에 넣어 보니 그 돌멩이들이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같은 보석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어제의 그 목소리처럼 기쁘면서 후회스러웠습니다.
기쁜 것은 그 돌멩이들을 가져온 것이고, 후회스러운 것은 좀 더 많이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똑같을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만큼 기쁠 것이고, 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은 영원한 후회 거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완전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 앞에서 어떠한 것들은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복음마태 5,43-48: 원수를 사랑하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절정을 제시하신다단순히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원수까지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요구하신다이 계명은 인간의 본능을 넘어서는 것이지만바로 그 지점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드러난다“원수를 사랑하여라.(44이 말씀은 우선 원수를 위해서라기보다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그에게 해를 끼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Enarrationes in Psalmos, 109, 4 요약증오는 상대방보다 나 자신을 먼저 병들게 한다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할 때우리는 증오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셨다“아버지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이 기도는 그분이 삶과 죽음으로 보여 주신 실천이었다초대 순교자 스테파노도 같은 사랑을 드러냈다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님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라고 기도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가리켜 “스테파노는 말로만이 아니라죽음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닮았다.(Homilia in Acta Apostolorum, XVII 참조)라고 평가한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45성 아타나시오는 이를 이렇게 풀이한다“태양은 차별하지 않는다하느님의 은혜도 그러하다그 빛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일 뿐이다.(Orationes contra Arianos, II, 67 요약따라서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하느님의 자비에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48)라고 말씀하신다이는 하느님의 절대적 완전성에 도달하라는 것이 아니라자비와 사랑의 완전성을 닮으라는 것이다교리서도 이렇게 설명한다“사랑은 모든 덕의 원천이다사랑은 모든 것을 인내하고모든 것을 믿으며모든 것을 바라고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사랑은 그 자체로 완전성이다.(1827)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의지의 선택이다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우리는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할 수 있다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요구를 한다그러나 바로 그 불가능 속에서 은총의 가능성이 열린다원수를 사랑할 때우리는 단순히 더 착해지는 것이 아니라그리스도를 닮아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오른 사람은 1953년 정상을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정말로 정상에 올랐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정상 도착을 증명한 사진에는 에드먼드 힐러리가 아닌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 혼자였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각종 인터뷰에서 ‘함께’ 정상에 올랐다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에드먼드 힐러리의 사진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 의심했습니다. 이 의문이 점점 커지자, 에드먼드 힐러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메라 작동법을 알려주기에 에베레스트 정상은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텐징이 카메라를 다루지 못했기에 힐러리가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텐징만 사진에 남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지고 있는 사진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 사진을 과연 누가 찍어줬는지를 생각합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사진에 있는 사람만을 기억합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을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 사진을 남긴 결정적인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삶 안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없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렇게 우리를 돕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는다고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그런 사랑을 우리 역시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3.44)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웃의 범위를 자기 민족, 같은 교파로 좁히고, 이방인이나 적대자들은 하느님의 원수이므로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한적인 사랑으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성품을 닮은 진짜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마태 5,45 참조).

 

주님의 자녀는 하느님을 닮아서 끼리끼리의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자기가 받을 보답이나 상대방의 태도에 좌우되지 않는 주도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참된 사랑은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빛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믿음은 진짜 믿어져서가 아니라, 믿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시작된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6.16.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모든 이들을
차별없이 비추는
예수 성심의
가리지 않는
햇살입니다.

오늘의 원수가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성장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 사랑에
다가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원수 사랑의 근거는
하느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원수 사랑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가는
사랑과 용서의
참된 여정입니다.

원수를 붙들고 있는
고통의 마음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원수를 만들어내는
우리 마음을
하느님 사랑에 맡기며
하느님의 마음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원수 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키기 전에
우리 자신을 더 큰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길입니다.

원수 앞에서도
하느님을 잃지 않는
하느님의 사람이길
기도드립니다.

복음의 완성은
원수를 증오로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수를 위해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용서의 눈물 뒤에는
언제나 하느님의 햇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지만

세상을 무대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때문에 제일 조심해야 할 일은

세상을 살아가되

세상 사람과 같지 않아야 한다는 것,

세상 사람처럼 

살지 않아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온 세상을 차별 없이

온 마음을 열어

전부를 사랑하고 품어주어야 할 사명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세상의 죄에 섞여서

죄를 짓는 삶에 동화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되

단짝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나의 전부를 온전히 그분께 드릴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전부를 맡아

새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온 우주가 모두 그분의 것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2026.6.16.연중 제11주간 화요일

1열왕21,17-29 마태5,43-48

우리 인간의 궁극의 평생 과제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

“주님을 길이길이 의지하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바위이시다.”(이사26,4)

어제 우리는 제1독서 열왕기 상권에서 돌에 맞아 죽은, 참으로 억울한 나봇의 충격적 죽음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합의 탐욕과 이제벨의 잔인한 처사에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악인의 절정을 목격했습니다. 정말 천인공노할 완전범죄였고 도저히 인간이라 할 수 없을 경우였습니다. 하느님 앞에 완전범죄는 없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를 통한 아합과 이제벨에 대한 의노義怒하시는 하느님의 심판 예고가 참 엄중합니다.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게서 잘라 버리겠다.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이제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아합이 뉘우치자 주님은 일시 재앙을 보류하지만 후대에 재앙이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겪는 시련이나 어려움은 죄에 대한 보속일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겸손히 배우고 비우는 계기로 삼을 때 전화위복의 축복일 것입니다.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

후회해도, 뉘우쳐도 늦었습니다. 이들이 후대에 받을 죄과의 보속이 참 엄중합니다. 아합과 이제벨은 그대로 우리의 반면교사가 됩니다. 참으로 고귀하고 존엄한 인생을 절대로 이런 악인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래서 오늘 복음의 가르침이 참 고맙습니다. 참으로 천사와 악마의 양극단 사이에 있는 가능성으로의 인간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평소 제 지론이 생각납니다.

“인생광야여정에서 인간에게는 세 가능성이 존재한다. ‘성인이 되느냐, 폐인이 되느냐, 괴물이 되느냐 셋 중 하나다.’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 되지만 잘못 미치면 폐인이, 괴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고자하는 구도자들에게 삶은 노화의 여정이 아니라 배움의 여정, 성화의 여정이라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한번뿐이 없는 소중한 인생 하느님을 닮아 참사람의 성인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을 대변한 예수님의 인간에 기대 수준은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이에 대한 결정적 답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늘 아버지의 우리 인간에 대한 기대 수준이 참 높습니다. 평생 배움의 여정에 평생과제가 부과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로 하늘 아버지를 닮아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명령입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책임이자 의무 사항임을 깨닫습니다. 하늘 아버지를 닮아 거룩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셋 인듯하나 실은 하나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바로 거룩한 사람이요 완전한 사람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둥글둥글 온전한 사람, 바로 원만圓滿하고 원숙圓熟한 사람입니다. 바로 다음 <배>와 <원숙圓熟>이란 시가 그 전모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어쩜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꽃도 아름답지만 열매는 더 아름답다

화사한 꽃도 좋지만 성숙한 열매의 그윽한 향기는 더 좋다

긴 안거동안 봉투 안 어둠속에 숨어 커오던 배 형제들!

마침내 인고의 세월 지나 가을 해제 때 되니

봉투는 저절로 터지고 둥글둥글 황금빛 찬란한 열매 얼굴로 환히 드러냈다

나는 들었다, 침묵 중에 터져 나오는 환희의 오도송悟道頌!

태양도 배 자식들이 마냥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가을 햇살

환히 내리 쏟고 있었다”<1998.9.5.>

지금서야 나누는 놀랍게도 28년전, 제 나이 50세때 작품입니다. 둥글둥글 탐스렇게 익어가는 배 열매들이 고맙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저절로 탄생된 <배>시詩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대로 성화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어 <원숙圓熟>이란 자작시입니다.

“가을 열매들은 태양의 자식들
호박, 배, 사과....
태양을 닮아 둥글둥글 환하다
사람도 사랑으로 익어 열매되면
얼굴도 마음도 글도 말도 행동도 하늘 아버지 닮아
둥글둥글 환하다”<1998.9.10.>

*시작노트; 둥근 태양 아래 둥글둥글(圓) 황금빛 얼굴로 찬란하게 익어가는(熟) 배 열매들을 보고 원숙圓熟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늘 아버지가 기대하는 당신을 닮은 완전한 사람은 태양의 자식들인 배 열매들처럼 잘 익어 온전하고 원숙한 모습의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바로 앞서의 주님의 복음 말씀이 답을 줍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예수님이 말씀이 정답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내 눈에 원수요 박해자이지 하느님 눈에는 다를 수도 있고, 원수와 박해자들에게도 내가 모르는 피치 못할 사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답은 아가페 사랑과 기도뿐이요 하늘 아버지께 맡겨드리는 것뿐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우리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하십니다. 결코 값싼 은총이 없듯이 값싼 하늘 아버지의 자녀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모두에게 차별 없이 공평무사公平無私,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하늘 아버지를 닮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아버지의 우리에 대한 기대 수준은 이렇듯 높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 희망,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하늘 아버지의 우리에 대한 믿음, 희망, 사랑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자랑이듯 우리 역시 하느님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각이 철저할 때 아합이나 이제벨 같은 괴물의 출현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폭포수 같은 말씀도 우리의 일체의 변명이나 핑계를 봉쇄합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한다.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한다.”

마치 취미가 같은 동호회처럼 우리의 유유상종 끼리끼리의 이기적 폐쇄적 사랑을 참으로 부끄럽게 합니다. 이웃 모두에게 차별 없이, 경계 없이 활짝 열려 있는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바로 이타적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 사랑을 닮아가는 우리의 성화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마지막 최종 평생과제를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 아멘.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5,44) 
 
'완덕이란?' 
 
오늘 복음(마태5,43-48)은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5,44-45)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마태5,46-47)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 
 
'산상설교의 말씀(마태5-7장)'은 오늘 복음처럼 어떤 해석이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내용이 짧고 간결해서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실행이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바라봅니다.
하느님의 완전한 드러남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십자가를' 자주 바라봅니다.
그 큰 사랑 안에 머무르려고 노력합니다.
거기에서 '원수를 사랑하는 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원수를 사랑하셨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그리스도인들은 완덕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예수님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온전한 일치'가 바로 '완덕'입니다. 
 
(~ 욥기38,41) 

 

복음말씀

1독서

<너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21,17-29

18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임금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는 지금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에 내려가 있다.

19 그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살인을 하고 땅마저 차지하려느냐?’

그에게 또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20 아합 임금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이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21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서 잘라 버리겠다.

22 나는 너의 집안을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집안처럼,

그리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안처럼 만들겠다.

너는 나의 분노를 돋우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23 주님께서는 이제벨을 두고도,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이제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아합에게 딸린 사람으로서 성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하늘의 새가 쪼아 먹을 것이다.’”

25 아합처럼 아내 이제벨의 충동질에 넘어가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 자는 일찍이 없었다.

26 아합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인들이 한 그대로

우상들을 따르며 참으로 역겨운 짓을 저질렀다.

27 아합은 이 말을 듣자,

제 옷을 찢고 맨몸에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자루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고, 풀이 죽은 채 돌아다녔다.

28 그때에 티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

29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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