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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작성자김종필라파엘|작성시간26.06.16|조회수28 목록 댓글 0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부풀릴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나를 있는 그대로!

 

젊은 시절 돌아보니 저도 참 많이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습니다. 장상들에게는 모범생 이미지를, 후배들에게는 좋은 선배 이미지를 심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고, 남의 시선에 의존하며 사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과대포장된 나로 살려하다보니 하루하루가 참 피곤했습니다. 이제 조금 나이가 들고 철이 들다보니, 그런 것들이 다 부질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부풀릴 일도 없고, 내세울 일도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부족한 내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냅니다. 놀랍게도 삶이 참 편안해졌습니다.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제자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신 이웃을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세 가지 임무-자선•기도•단식-의 바람직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명쾌하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자선•기도•단식의 실천에 있어 ‘위선자들’의 모습을 배격하라고 크게 강조하십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위선자들, 거짓 신앙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허영심과 허세, 자기 과시욕으로 가득했던 부자들은 쥐꼬리만한 적선을 하면서도, 그것을 크게 떠벌이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습니다. 소리소문없이 예의바르게 자선을 베풀지 않고, 공개된 자리에서, 플랜카드도 크게 내건 다음, 사람들 잔뜩 불러놓고, 그렇게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의 자선을 진정한 의미의 자선이 아니었습니다. 궁핍한 사람들의 비참한 처지를 이용해, 은근히 자신들의 관대함을 과시하면서, 스스로를 높이 치켜세우는 가장 비인간적, 비신앙적인 이벤트를 펼쳤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을 꿰뚫어보시는 예수님 앞에 당대 위선자들이 펼쳤던 치졸한 자선의 행태는 차마 견뎌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위선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지적은 아주 날카롭습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우리는 자선•기도•단식의 실천에 있어 위선자의 반대편, 대척점에 서 있는 누군가를 찾아봐야겠습니다. 그 사람은 겸손한 사람, 진실한 사람,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이겠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베풀었던 작은 사랑의 실천 앞에 언제나 겸손해야겠습니다. 진실해야겠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칭찬한다면 이렇게 대응해야겠습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종일 뿐입니다. 솔직히 저는 아무 것도 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다 하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함께 한 동료들, 이웃들이 도와줘서 가능했습니다.

 

이웃들을 향한 자선을 베풀 때, 우리는 한 가지 진리를 결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자선을 베풀려는 상대방은 변장하고 찾아오시는 하느님이라는 진리를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천사들이라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모든 부(富)는 모두 내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온 것이라는 진리를 기억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 하느님께로 되돌려 드린다는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어야겠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자선을 우리의 지난 죄를 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보속이며, 동시에 하느님 나라에 보화를 쌓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2열왕기 2,1.6-14   마태오 6,1-6.16-18 
 
​타인은 지옥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소설작가 지망생이자 사회 초년생 주인공이 월세가 싼 어느 허름한 고시원에 들어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 고시원에서는 계속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직장에서도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애인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지만, 너무 예민하다며 그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상한 일을 고시원의 한 친구에게 털어놓습니다.
그 친구만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고 공감해줍니다.
그런데 사실 그 친구가 이 모든 살인사건의 주범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타인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그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에 익숙해져 갑니다.
그래야 혼자만 타인으로 머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살인을 저지르는 데 쾌감을 느끼는 괴물이 됨으로써 비로소 그 사회에 속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부는 정말 일심동체인가요, 아니면 가끔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나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몇 년 전부터 우울증약을 먹고 상담을 받습니다.
저녁에 피곤해서 들어오면 그냥 의미 없이 TV를 돌려보다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약을 먹어도 크게 호전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집에 둘이 있어도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있을 땐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둘이 있어도 자신에게 짜증만 낼뿐 다정한 미소를 짓는 적은 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타인과 함께 지내는 것은 지옥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타인처럼 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이 지옥이라면, 친구와 머물 땐 천국이 됩니다.
누가 타인이고 누가 친구일까요?
타인은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입니다.
친구는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나에게만 신경 써 주는 사람입니다. 
 
유럽에서는 남녀가 길거리에서 애정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합니다.
마치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 같게 행동합니다.
이런 상태라면 둘은 천국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를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둘의 그런 모습에서 소외를 느끼고 그러면 지옥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제한된 에너지를 몇몇 사람에 쏟아버릴 때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켜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관계에서 우리는 천국도 느끼고 지옥도 느낍니다.
타인을 좋아하여 지옥을 체험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타인으로 만들어 남도 지옥에 살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타인으로 만들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관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는 안 됩니다.
우선 세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소외되고 세상 모든 사람이 타인이 된다고 해도 상관없는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를 맺어줄 능력이 있으신 분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먼저 하느님과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가운데 세상으로 관계를 넓혀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신경 쓰다가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그 사람은 자신의 모든 행복을 사람들에게 걸어야 해서 자신을 타인 취급하는 이웃들에게서 큰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이와 관련된 아주 좋은 예화가 나옵니다.
행복은, 마치 숟가락에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그것이 흘리지 않고 들고 다니며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숟가락 위의 기름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며 에너지가 남는 만큼 이웃과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이웃과의 관계에 집중하면 숟가락 위의 기름이 쏟아지고 그러면 내가 하느님을 소외시키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잃었기에 결국 자신을 타인 취급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애정을 구걸하러 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그도 그 외로움 때문에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선행도 이웃이 아닌 하느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 하고,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식할 때도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웃에게 먼저 신경 쓰면 숟가락의 기름이 흐르는 것도 모릅니다.
숟가락에 기름이 흐르게 한다는 것은 내가 하느님을 타인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누구도 자신을 친구로 여겨주지 않는 세상에서 영원한 타인으로 지옥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라디오를 들을 때 두 주파수를 동시에 들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타인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우선은 세상을 타인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이 먼저 친구가 되면 그 기쁨과 계명으로 어떤 누구도 타인으로 만들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선은 주님과의 관계를 위해 세상 사람들을 향한 신경을 끊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림을 보는 것보다 숟가락 위의 기름이 더 중요합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복음: 마태 6,1-6.16-18: 올바른 자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외형적인 행위보다 마음의 자세, 즉 내적 정직과 겸손을 강조하신다. 자선과 기도, 단식 등 신앙생활의 행위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교 속에서 행해져야 참된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1절)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에 대해 말한다. “참된 자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De Sermonibus Domini in Monte, 1,5 참조) 즉, 오른손과 왼손의 비유는 우리 마음의 이중성을 보여 준다. 오른손(의로운 마음)은 왼손(세상의 눈)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칭찬을 받기 위해 자선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적 계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선행이 아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골방에서 조용히, 하느님께만 향하는 기도여야 한다.(6절) 바오로 사도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콜로 4,2)라고 권고한다. 기도는 단순한 말의 반복이 아니라, 하느님과 나 사이의 친밀한 교류이며, 천사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하늘의 경배와 일치를 의미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겉치레가 아니라, 마음의 진실이다. 겉으로 행한 기도는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Homiliae in Matthaeum, 19,4 요약) 
 
예수님께서는 단식할 때도 남들에게 보이려 꾸미지 말라고 하신다.(16-18절 참조) 얼굴을 찌푸리고 연민을 자극하는 단식은 자신을 높이려는 행위일 뿐,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단식이 아니다. 교리서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기도, 자선, 단식은 외적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마음의 정직으로 하느님께 드려질 때 참된 가치가 있다.”(1969항 참조) 
 
나는 자선을 행할 때 하느님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칭찬을 의식하는가? 나의 기도는 단순한 의무감과 반복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과의 친교를 향하고 있는가? 겉으로는 의로운 척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자랑이나 계산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모든 선행은 하느님께서 아시는 마음과 의도에 달려 있다. 참된 열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속에서 맺어진다. 우리가 수행하는 신앙의 행위, 즉 자선, 기도, 단식이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참된 가치가 있다. 겸손과 마음의 정직 속에서 행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영원한 상급을 쌓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어렸을 때 소원은 빛이 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존경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존경하던 사제가 되겠다는 꿈을 자연스럽게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학교 들어가면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길은 빛이 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끝없는 절제와 희생이 요구되었고,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기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제는 때로는 비난과 욕설을 들어야 했고, 사제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눈길도 받아야 했습니다.

 

사제가 됨이 그리 빛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의 능력과 믿음의 부족으로 인해 더 빛날 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런 고민을 선배에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빛나야 할 분은 주님뿐이야. 따라서 신부는 빛이 안 나도 괜찮아. 하지만 따뜻해야 해. 그래야 주님의 빛이 꺼지지 않아.”

 

이런 마음으로 28년째 신부로 살고 있습니다. 빛이 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을 들어도 ‘당연하지. 나는 빛이 나지 않는 존재니까.’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려 했고,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느님과 저와의 관계를 가깝게 하려 했습니다. 빛나지 않아도 이 길을 산다는 것 자체가 행복합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예수님께서는 종교적 행위 자체를 부정하시지 않습니다. 단, 신앙생활의 초점이 하느님의 시선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과 평판으로 향하는 것을 경계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선행은 하느님과 무관한 자기 과시에 불과함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선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단식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삶은 분명 그들 앞에 자기를 빛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빛날 수 없습니다. 대신 세상에 하느님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따뜻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시선을 따르는 삶이 되고, 이런 삶을 통해서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내가 ‘그런 척’하는 대로 된다. 그러니 ‘어떤 척’을 할지 신중해야 한다(커니 보니컷)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6.17.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 6,3)

이름 없이 피어나는
들꽃 하나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합니다.

참된 자선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마음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참된 사랑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성숙한 선행과
사랑의 참된 성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겸손한 사랑은
하느님과의 깊은 신뢰에서
나옵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사랑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오른손도 왼손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세상의 박수보다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행동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것이
참된 선행의 본질입니다.

은총을 아는 사람은
사랑을 베풀면서도
그 사랑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선행을 계속하는 것이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봉헌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은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善)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묵묵히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인격입니다.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드리는
오른손과 왼손의
참된 기쁨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참된 선행입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그분의 진리를 거부하고

복음을 팽개치는 병든 마음 밭,

높은 차단의 벽을

단단히 두르는 신자들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그분께서 주신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열어 놓고 아량을 넓혀서

상대를 받아들이려 애쓰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행복과 평화를 누리는 지름길입니다.

 

모두 그분께로 마음과 시선을 높여

하느님의 은혜를 담아내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6,1ㄱ) 
 
'생명운동에 동참하자!' 
 
오늘 복음(마태6,1-6.16-18)은 '올바른 자선'과 '올바른 기도'와 '올바른 단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요지는 지금 여기에서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나의 자선과 기도와 단식 행위를 감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네 자선(기도와 단식)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6,4) 
 
저는 지금 '전국 우리농 담당 사제들 모임'이 있어서 경남 산청 성심원 교육회관에 와 있습니다.
10년 만에 이곳에 왔는데, 고향에 온 기분입니다.
오늘까지 이곳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어제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지금 우리농의 현실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은 나눔을 했습니다. 
 
참으로 쉽지 않아 보이는 일이지만,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위기와 공동의 집인 지구가 처한 위기 앞에서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농'은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의 줄임말입니다.
흙과 땅과 물을 살리기 위해, 더 나아가 나와 지구를 살리기 위해 생명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민들이 많이지고, 이들이 창조해 낸 생명물품들을 잘 소비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 우리농입니다.
더 움직이고, 더 땀을 흘려야만 얻어지는 생명물품들이기에 가격 경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농은 흙사랑, 땅사랑, 물사랑, 생명운동입니다." 
 
제가 만들어 낸 문구입니다.
마음으로, 기도로, 그리고 구매와 후원(CMS)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생명 살리기 운동에 함께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농어민들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죽어가는 지구를 다시 살립시다! 
 
(~ 욥기39,30) 

 

 

복음말씀

1독서

<갑자기 불 병거가 나타나더니,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다.>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2,1.6-14

1 주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들어 올리실 때였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길갈을 떠나 걷다가, 예리코에 도착하자

6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너는 여기 남아 있어라. 주님께서 나를 요르단 강으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고 스승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저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함께 떠났다.

7 예언자들의 무리 가운데 쉰 명이 그들을 따라갔다.

두 사람이 요르단 강 가에 멈추어 서자, 그들도 멀찍이 떨어져 멈추어 섰다.

8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9 강을 건넌 다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너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을 청하여라.”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

10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어려운 청을 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11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12 엘리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

엘리사는 엘리야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자기 옷을 움켜쥐고 두 조각으로 찢었다.

13 엘리사는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을 집어 들고 되돌아와 요르단 강 가에 섰다.

14 그는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을 잡고 강물을 치면서,

주 엘리야의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하고 말하였다.

엘리사가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

이렇게 엘리사가 강을 건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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